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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ae Kwon

Korea University

About the Lab

Professor Bodae Kwon'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modern Korean intellectual and cultural history, with a focus on the evolution of political ideologies such as neutrality, democracy, and nationalism in the 20th century. The lab explores the interplay between individual subjectivity, social movements, and state formation, particularly in the contexts of post-liberation Korea, the Korean War, and the 1960s democratization movements. It also investigates literary and philosophical discourses as sites of ideological contestation, especially how concepts like 'freedom,' 'the people,' and 'the nation' were reimagined in literature and public discourse. The lab emphasizes interdisciplinary approaches, combining historical analysis with literary criticism and cultural theory to uncover the unconscious structures shaping Korea’s political imagination.

Korean intellectual historyneutrality4.19 movementfreedomnationalism

Research Overview

Papers
36
Total Citations
479
Papers (5y)
7
Primary Field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Publications per year (5y)
7total
2021
2022
2023
2025
2026
Citations per year (5y)
8total
20212022202320252026

Selected Pa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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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60 citations·2012
중립의 꿈 1945~1968 ― 냉전 너머의 아시아, 혹은 최인훈론을 위한 시론
권보드래

중립화론 혹은 중립화통일론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를 가로지르고 있는 중요한 의제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는 1960년 4월 항쟁 직후에 집중되어 있고, 그 밖에 해방기나 한국전쟁 직후, 1960년대 중반에 있었던 중립화론에 대한 고찰은 영성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이 세 시기, 즉 1945~48년, 1953~54년, 1964~66년을 중심으로 각 시기 중립화론을 검토하면서, 그것을 미·소 중심 냉전 체제에 저항하는 가운데 ‘제 3세계적 연대’를 통해 새로운 세계 질서를 창출하고자 한 시도로서, 한반도와 세계의 다른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읽어보고자 했다. 중립화론의 논리 자체를 추적하기보다 그 사회·문화적 함의를 재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해방기를 통해서는 이른바 ‘중간파’ 노선이 국제적 현실성을 갖고 있었음을, 한국전쟁 직후를 통해서는 무장 대립의 상황에서도 미·소 중심 체제에 대한 비판이 살아 있었음을, 1960년대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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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51 citations·2007
근대 초기 '민족' 개념의 변화-1905~1910년 대한매일신보를 중심으로
권보드래

근대 들어 등장한 각종 신조어 중에서도 ‘민족’은 비교적 출현이 늦었던 개념이다. 한국어 텍스트에서 처음 ‘민족’이라는 표현이 보인 것은 1898년의 일이지만, 비슷‘국가’‘국민’ 등이 곧 왕성하게 쓰이기 시작한 데 비해 , 1905년경까지 ‘민족’은 거의 쓰이지 않았다 . 1894~1910년을 1894~1898년, 1899~1904년, 1905~1910년의 세 시기로 나누고 각각의 시기에 독립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를 대응시킨다고 할 때 , 독립신문 발간 시기에는 ‘민족’의 용례가 단 한 차례도 목격되지 않을 정도이다 . 황성신문 으로 대표되는 1900년대 초기에는 몇 차례 ‘민족’이라는 말이 보이지만 그 용법은 오늘날의 ‘민족’과 크게 다르다 . ‘민족’이 오늘날의 의미에 접근한 것은 대한매일신보 발간 시기에 와서의 일인데 , 이때도 ‘민족’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혼재되어 있었다 . 첫 번째는 단순히 인간 집단 일반을 가리키는 의미였으며, 두 번째는 부족 같은 소규모 인종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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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44 citations·2010
4·19와 5·16, 자유와 빵의 토포스
권보드래

1960년의 4·19와 1961년의 5·16-지금껏 이 두 사건 사이의 관련은 4·19로 집결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자주와 통일에 대한 모색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을 무렵 5·16 쿠데타가 그런 다중의 노력을 압살시켜 버렸다는 서사로 이해되어 왔다. ‘혁명’ 대 ‘반혁명’이라는 수사가 적절하게 대응될 법 관계였다고 하겠다. 1960~70년대의 역사 전반을 평가할 때라면 이런 평가는 대체로 수긍할 법하다. 그러나 당대, 4·19와 5·16을 눈앞의 사건으로 맞이했던 1960년대 초반의 감각을 직접 상대한다면 어떠할까?4·19라는 사건의 실제부터 문제될 법하다. 4·19의 주역은 대학생-지식인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 신화이지만, ‘다비데’요 ‘젊은 사자들’로 불린 이들은 실상 사건의 마지막 국면에서야 등장했다. 사건 초기의 주역은 고등학생이었고, 폭력적 진압에 맞서 4·19의 열기를 지속시킨 이들은 넝마주이·구두닦이나 기능직 노동자 등 도시의 하위주체들이었으며, 대학생 집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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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35 citations·2010
4월의 문학혁명, 근대화론과의 대결 -이청준과 방영웅, 『산문시대』에서『창작과비평』까지
권보드래

196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서 ‘4․19세대’라는 담론이 번성했던 데 비해 4월항쟁에 대한 직접 발언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금껏 이 불균형을 메우기 위해 구사된 전략은 ‘소시민문학’론이 표명했듯, 4․19 세대의 작가들이 개인과 개인주의를 문학적으로 형상하는 데 진력한바 그것이 한국에서 근대적 시민의 형성과 일치한다는 것이거나, 혹은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의 논의가 보여주듯 ‘민족’․‘민중’의 발견에 이르는 도정이 곧 4월항쟁의 정신이 실현되는 과정으로서 4․19 세대의 개인주의는 그 과정에서 부정적 매개로 현현했다는 것이었다. 각각 『문학과지성』과 『창작과비평』으로 연결되는 이 두 가지 설명방법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또한 4월항쟁의 개인․자유와 민중․민주주의를 분리시키는 효과를 발휘해 왔다고 생각된다. 「4월의 문학혁명, 근대화론과의 대결」에서는 이러한 분리를 넘어 4월항쟁의 자장 속에서 『산문시대』에서 『창작과비평』까지에 이르는 문학적 흐름을 해명함으로써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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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30 citations·2008
1910년대의 새로운 주체와 문화-『매일신보』가 만든, 『매일신보』에 나타난 대중
권보드래

개인-사회-국가 관계의 상상을 재편하는 데 있어 대중적 존재의 근간이 되었던 것은 고립된 개인 , 사사화(私事化)되고 가정화된 개인이라는 존재 형식이다 . 여성적 주체의 경우 이혼과 본부 살해라는 사건을 통해 , 남성적 주체의 경우 신사 -모델의 제시를 통해 극화된 이 고립된 개인은 사적 영역을 경과해서만 공적 영역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론의 산물이었으며 , 그 단계의 도약에서 ‘동정’과 ‘공익심’, ‘자선심’ 등의 심리적 전략을 탄생케 한 존재론적 기반이었다 . 과 쾌락의 분리를 실천한 이들 주체는 근대적 여가문화를 개발하려 한 매일신보사의 기획에 적극적으로 호응했으며 , 연극과 활동사진을 즐기는 것은 물론 그 능동적 생산 주체로 변모할 가능성마저 보였다 . 정치적ㆍ이념적인 수준에서라면 ‘암흑기’라 불려 마땅한 1910년대에 대중적 활력을 형성한 것은 이런 문화적 경험이었으며 , 대중은 이를 통해 1910년대 후반부터 심각해진 사회 문제를 표현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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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28 citations·2008
실존, 자유부인, 프래그머티즘 ― 1950년대의 두 가지 ‘자유’ 개념과 문화
권보드래

해방기에 새로 등장해 1950년대까지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자유’는, 그 합법적(legitimate) 원천을 따지자면 프랑스 실존주의와 미국 사회과학이라는 두 가지 지적 조류에서 유래되었다. 실존주의를 통해 ‘자유’와 함께 ‘실존’이, 미국 사회과학을 통해 ‘자유’와 함께 ‘민주주의’가 들어오고 정련되는 과정에서, 그러나 두 가지 ‘자유’ 개념은 판연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존재의 부조리와 공포를 자각하는 데서 출발한 실존주의의 ‘자유’는 개인성의 수준에서 한국 전쟁의 충격을 명명하는 데 기여했고, 전체주의와의 대결 의식을 내재한 미국 사회과학의 ‘자유’는 사회체의 수준에서 자본주의와 보통 선거와 정당 정치 등 새로운 정치·경제적 조건을 수용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전자는 작가를 중심으로 문학과 철학·예술 분야에 깊은 영향력을 끼쳤고 후자는 대학 중심의 아카데미에 압도적 위세를 떨쳤다. 문제적인 사회 현상을 스펙트럼화하는 다소 무리한 작업을 시도해 볼 수 있다면, 1950년대에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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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28 citations·2009
진화론의 갱생, 인류의 탄생 ―1910년대의 인식론적 전환과 3․1 운동
권보드래

이 논문은 ‘암흑기’로 통칭되어 온 1910년대의 다양한 사상적 모색을 개관하고, 나아가 3․1 운동이 그러한 모색 위에서 자라난 사건이었음을 논증하고자 한다. 1910년대의 인식과 사상에 있어 특징적인 변화, 즉 ‘자아’와 ‘인격’에 대한 논의나 ‘개조’에 대한 희망, ‘동정’과 ‘사랑’에 대한 관심 등은 모두 1900년대식 진화론의 패러다임이 부정되고 진보-역사의 서사가 새로이 구축되는 과정이었다. 1910년대를 거치면서 학생과 지식인 사이에서는 자아․인격․개조․동정․사랑 등의 새로운 개념을 두고 니체와 쇼펜하우어, 베르그송과 에머슨, 크로포트킨과 마르크스 등이 광범하게 참조되기 시작했으며, 롱펠로우나 보들레르․베를렌느, 그리고 투르게네프와 소로굽 등의 문학이 유행하였고, 밀레의 그림을 걸어두고 구노의 가곡을 듣는 취향이 형성되어 나갔다. 이들 사상과 1910년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이 만난 결과 형성된 특징은 (1) 약육강식․우승열패로 요약되는 진화론적 세계에서 민족의 생존과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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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24 citations·2010
민족문학과 한국문학
권보드래

근대 한국의 역사를 통해 ‘민족’은 국가체제에 맞서는 원심적이고 저항적인 효과를 내장해 왔다. ‘민족’과 ‘국가’의 가치가 선전되는 한편 그 사이가 변별되기 시작한 것은1900년대였는데, 바로 이어 식민지화된 까닭에 식민지시기 내내 ‘민족’은 일본제국이라는국가의 호명에 대항하는 준거점이 되었고, 해방기에는 남한과 북한이 각각 ‘국민’과 ‘인민’이라는 배제의 정체성을 가동시키는 가운데 ‘민족’은 통합의 가능성을 지시하는 이름으로 남았다. 1950년대에 개인주의가 약진하는 와중에 ‘민족’이 낡은 언어처럼 취급되었던 막간기를 지나, 4월항쟁 후 1960년대에 ‘민족’은 다시 핵심어로 도약한다. 민족사론과 민족경제론이 이론적 체계를 이루었던 이 시기를 지나 1970년대에는 민족문학론도 체계화되고 대중화된다. 최일수·정태용 등이 간헐적 문제제기를 이어갔던 1950~60년대를 거친 후, 김지하·황석영·신경림 등의 창작적 성과에 힘입어 민족·민중의 현실을 다루고 미래를 선도하는것이 문학의 본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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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24 citations·2013
저개발의 멜로, 저개발의 숭고-이광수, 『흙』과 『사랑』의 1960년대
권보드래

이광수는 식민지시기의 인기 작가였을 뿐 아니라 1960년대에도 널리 소비된 당대적 작가였다. 1950년대 말 민족 지도자로 복권된 이래 친일 문제가 다시 제기된 1960년대 말까지, 이광수는 어떤 당대 작가보다 널리 읽혔으며 어떤 동시대 소설보다 강력하게 대중의 의식과 감성에 호소했다. 이 논문에서는 1960년대 이광수 인기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판단되는 『흙』과 『사랑』을 중심으로, 텍스트의 감성적 질을 파악하는 한편 그것을 1960년대의 대중 정서와 관련시켜 해명할 것을 시도했다. 이광수 장편소설을 통해 주체의 욕망 및 그 실현, 억제와 관련된 윤리가 형성되어 온 과정에 주목하고, 『흙』과 『사랑』을 그 정점에 위치시키며, 또 그 감성과 정서의 핵심으로 '금욕과 '숭고'를 제시했다. 이 '금욕'과 '숭고'란 자신의 무죄와 원죄를 동시에 수락하는 태도에서 온 것인 동시, 타자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는 의식에서 연원한 것이지만, 그 근저에는 주체가 점점 유아론적으로 서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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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21 citations·2011
『사상계』와 세계문화자유회의 1950-1960년대 냉전 이데올로기의 세계적 연쇄와 한국
권보드래
아세아연구

By examining Sasanggye, one of the most important journals throughout the 1950s and 1960s, I tries to grasp the mode and degree of influence from global circulation of the cold war ideology. Towards such goal, a comprehensive list of translated articles was created and the task of tracing the original author, source and initial date of publication was attempted. The most popular names and titles from the list of source authors and magazines(books and newspapers are excluded here) are as foll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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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21 citations·2020
내 안의 일본-해방세대 작가의 식민지 기억과 ‘친일’ 문제
권보드래

이 글은 1950∼70년대 소설을 대상으로 ‘일본’과 ‘식민지’가 기억되고 재현된 방식을 추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늘날 식민지시기 기억에 있어 핵심적인 ‘친일(파)’ 문제가 공론장에 자리잡은 것은 박정희 정권 후기, 즉 10월 유신 전후부터이며, 그 이전에는 식민지시기의 역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다양한 모색이 이루어진바, 지금 그 모색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글의 문제의식이다. ‘학병세대’와 ‘4・19세대’ 사이 세대로서 1930년 전후 출생한 해방세대는 10대 초・중반에 해방을 맞았고, 이후 조선과 조선어를 새로이 발견하면서 민족적 주체로서 거듭나야 했다. 이들 세대는 곧이어 닥친 한국전쟁이라는 압도적 경험 속에서 식민지시기―유년보다 전쟁기―청년으로 스스로를 규정해 가지만, 1965년 한일협정 국면에서 본격적으로 식민지시기의 기억을 심문하기 시작한다. 이 경향을 통해 주체의 민족적 순수성은 회의되고 심문된다. 1960년대에 점차 늘어나던 반일의 서사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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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20 citations·2015
3․1운동과 ‘개조’의 후예들 - 식민지시기 후일담 소설의 계보
권보드래

이 논문은 3․1운동이라는 모티프를 중요하게 수용한 식민지시기 소설 전반을고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울러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둘러싼 논쟁에 있어 3․1운동에 대한 평가가 주된 고리였음을 밝히고 「민족개조론」에서 제기한 3․1운동 비판이 이후소설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주 검토 대상은 3․1운동을 숭고로 형상화한 「피눈물」, 감옥에서의 환멸을 그린 「태형」, 숭고와 환멸 사이 경계를 탐문한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후일담으로서 연애 서사를 섞은 읍혈조 재생 적도, 그리고 영원의 미소 등이다. 3․1운동을 세세히 신문하고 재현할 수 없었던 식민지시기에 있어 운동은주로 후일담이라는 형식으로 재현된다. 「피눈물」이나 「찬미가에 싸인 원혼」 등 3․1운동당시에 집중한 소설이 숭고의 정조로 기울어 있는 반면 장편 형식의 후일담 소설은 타락의서사로 기울어 있다. 특히 후자의 소설에 있어 타락의 주체는 여성으로, 여성은 남성의 정치․사회적 알리바이를 해체시키고 사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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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14 citations·2008
신소설의 성(性)ㆍ계급ㆍ국가 - 여성 주인공에 있어 젠더와 정치성의 문제 -
권보드래

신소설은 여성 주인공의 압도가 두드러진 양식이다. 비슷한 시기 창작된 역사ㆍ전기물이 남성 주인공을 내세워 민족적 서사를 창조해 간 반면, 신소설은 성적 수난을 거쳐 가정으로 귀환하는 여성의 서사를 핵심으로 한다. 사적 영역에 국한된 듯 보이는 이 서사는, 그러나 여성의 사회적 존재양상의 변화, 중인 및 평민층이라는 계급의 부상, 망명객을 중심으로 한 국가 구상이라는 다양한 층위를 함축하고 있다. 신소설의 여성 주인공은 자기 의사로 가출, 집밖의 세계에서 성적 위협에 시달리면서 서사를 추동해 가는데, 이는 조선 후기 소설에서 여성들이 ‘여화위남(女化爲男)’이라는 장치를 통해서나 외부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역사와 대비된다. 이렇듯 홀로 집 밖에서의 수난을 감당해야 한다는 설정은 중인 및 평민층의 신분 감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비(侍婢) 없이 단독적인 존재로 세계 속에 던져진 여성 주인공들은 실제 신분 설정에 있어서도 서리(胥吏)의 딸로 전형화되어 있다. 신소설에서 몇 편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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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11 citations·2015
‘만세’의 유토피아-3․1 운동에 있어 복국(復國)과 신세계-
권보드래

이 글은 민족주의적 해석 일변도로 이해되어 온 3․1 운동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려는 시도의 일부다. ‘깃발’과 ‘만세’라는, 3․1 운동을 통해 가장 두드러진 시위 양식에 대한 검토를 구체적 방법으로 삼았다. 먼저 깃발에 대해서는 3월 1일과 5일 등 서울의 주요 시위에 태극기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해당 시위에서는 오히려 독립만세기와 적기(赤旗) 등이 주였던 것이, 운동이 전국화되고 자율화되면서 태극기가 대세가 되기 시작하지만, 이 때도 ‘독립만세’ 등을 적어 넣음으로써 태극기를 보충․수정하려는 시도는 광범하게 존재했다. 태극기가 옛 대한제국의 국기라고 할 때, 단순히 옛 나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 나라를 기대하는 심리가 그렇게 표현됐다고 하겠다. ‘만세’라는 구호 역시 마찬가지다. ‘만세’는 ‘대한독립만세’ 혹은 ‘조선독립만세’의 줄임말인 동시 민족적․정치적 차원 외 각종 차원에서의 불만과 희망 또한 표시했다. 3․1 운동기에 깃발이나 구호를 통해 표현된 불만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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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9 citations·2011
영혼, 생명, 우주 - 1910년대, 제1차 세계대전의 충격과 '죽음'의 극복 -
권보드래

이 논문의 관심사는 문명론적 위계와 국가 지상주의가 함께 붕괴했던 1910년 이후, 조선과 조선인이 민족과 개인의 수준에서 새로운 존재 근거를 모색했던 과정이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이 준 충격을 통해 '죽음'을 꼭짓점으로 하는 개체적 실존이 자각되고, 그 거주의 환경으로서 무한한 우주와 반복되는 시간이 의식된 과정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영혼'과 '생명'과 '우주'를 핵심 개념으로 하는 이 변화의 과정은 한국 근대문학의 기원이라 할 만한 장면에 잇닿아 있지만, 보다 넓게는 3·1운동의 정신사적 배경과 연관되어 있다. 시·공간의 무한한 팽창, 그 안에서 이루어진 주체의 위치 조정이 1910년대 말~1920년대 초에 있어 문화와 정치의 기본 틀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3·1운동의 시발에 중요한 자극이 되었으며, 아직까지 꾸준한 영향력을 미치공 ㅣㅆ다는 것이 대략의 논지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단일한 주체로서의 '인류'와 그 서사로서의 '역사'를 발견하는 데서 일단락되는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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