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eonbok Lee
Hanyang University
About the Lab
Professor Hyeonbok Lee'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early modern philosophy, with a primary focus on Spinoza’s metaphysics, epistemology, and ethics. The lab explores central themes such as the nature of knowledge—particularly the distinction between intellectual intuition (third kind of knowledge), reason (second kind), and imagination (first kind)—and their implications for human freedom, happiness,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mind and body. It also investigates Spinoza’s concept of God/nature and its relevance to contemporary ecological and existential thought, especially in challenging anthropocentric worldviews. The lab critically examines classical philosophical texts, especially Spinoza’s *Ethics* and *On the Improvement of the Understanding*, in dialogue with major interpreters like Maimonides and Caius. The research emphasizes the philosophical foundations of rationality, the role of divine knowledge in human flourishing, and the critique of superstition and irrationality as obstacles to true freedom and intellectual virtue.
Research Overview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Selected Papers
15이 글은 스피노자가 말한 “영원의 관점 아래에서” (sub specie aeternitatis)의 의미를 해명한 것이다. 스피노자에 있어 자유인의 조건이 지혜인이고, 지혜인이 곧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 즉 영원의 관점 아래에서 인식하는 자라면, 이 용어는 스피노자 철학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용어는 ꡔ에티카ꡕ 5부, 그것도 그 둘째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아가 그 첫째 부분이 소멸하는 정신을, 둘째 부분이 영원한 정신을 다루고 있다면, “영원의 관점 아래에서”의 인식 주체는 당연히 영원한 정신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가 영원한 정신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인식, 즉 2종지 혹은 이성지도 “영원의 관점 아래에서”의 인식으로 부르고 있다고 할지라도, 직관지 혹은 3종지의 영원한 관점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영원한 지성에 의한 영원의 관점 아래에서의 인식, 즉 직관지는 자기 신체 본질의 인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스피노자의 유력 연구
안 네스는 자연을 인간 욕망의 충족 수단으로 간주하는 인간중심적인 세계관에 생태위기의 근원이 있다고 보고, 생태중심적인 세계관을 형성하자고 하면서 심층 생태학을 제창한다. 생태철학자들은 인간을 자연의 주인을 본, 그래서 인간중심주의를 강조한 데카트르보다, 일원론, 범신론 및 자연에서 덕과 힘의 민주성을 역설한 스피노자를 주목한다. 단적으로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부이며, 그래서 인간은 결코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인간의 에티카일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는 인간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 “인간에게는 인간이 신이다”라는 등속의 스피노자 발언은 생태철학자들의 주장에 힘을 떨어뜨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스피노자는 『지성개선론』, 『신, 인간 및 인간의 행복에 관한 소론』 및 『에티카』에서 인식의 종류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1종의 인식 혹은 상상, 2종의 인식 혹은 이성 그리고 3종의 인식 혹은 직관지가 그것이다. 전문과 기호 및 막연한 경험을 통한 상상에 의한 인식은 타당하지 않은 인식인 반면에, 공통개념들에 근거한 이성적 인식 및 신의 인식에 기초한 직관지는 타당한 인식이다. 그렇지만 인간 정신은 이성을 통해 개별적 사물들의 상호 연관성만을 파악할 뿐 그것들의 본질 인식은 직관지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직관지가 최선의 인식 방식이고, 직관지에 의해 신에 대한 지적인 사랑과 지복에 도달할 수 있는 한에서 3종의 인식이 최선의 인식 방식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신이 3종의 인식에 따라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토대인 신에 대한 타당한 인식을 형성해야 하는데, 이 인식은 2종의 인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정신은 "공통 개념들"을 통해 처음으로 사물에 대한 타당한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인간의 자유와 지복 구원이 어떻게 실현 가능한가를 보여준다. 인간은 올바른 이성을 통해 영혼의 참된 만족인 지복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것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신이었다. 스피노자는미신을 인식의 결여, 무지의 산물로 간주했다. 그래서 인식의 수준이 높아질수록미신은 사라지고 낮아질수록 다가온다. 1종지의 인간은 미신의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다. 2종지의 자유인은 미신의 힘겨운 적이다. 자유인은 이성의 명령에 따라 살고자 노력한다. 이성은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않는다. 신의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신을 지적으로 사랑하는 3종지의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와 미신은 태양의 이슬로 사라지고 영원한 삶을 누린다.
데카르트는 성찰의 헌사에서 성찰의 대상은 신의 현존과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두 가지를 증명하는 것은 전통적 형이상학의 과제였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의 형이상학도 역시 그 전통을 따르고 있는가. 본 논문의 주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 즉 인간 영혼의 불멸성 증명은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에서 비본질적인 부분임을, 또 신의 현존 증명 역시 인식론적 관심에서 수행되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데에 있다. 그래서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은 인간 인식의 원리와 다름 아닌 바, 이것은 그저 “신과 정신에 대해서만 특별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순서에 따라 철학을 하면서 인식할 수 있는 모든 제일의 것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다. 데카르트는 이런 형이상학을 보편학으로서 철학의 토대 혹은 으뜸이라는 의미에서 제일철학으로 명명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제일철학으로서의 형이상학은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로서 사유하는 정신, 올바른 인식능력을 정신에게 부여해준, 그
스피노자는 『에티카』의 1부 부록이 주로 신의 목적성을 다루었다면, 4부 서문은 자연의 목적성을 고찰한다. 신은 목적을 위해 행하지 않는다는 것, 자연은 목적원인 없이 행한다는 것을 각각 보여준다. 4부 서문에서는 주로 인식론적 관점에서 자연(물)의 불완전성을 검토하면서 자연 혹은 자연물이 불완전할 수 있다는 목적론적 편견을 단호히 거부한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신 즉 자연 이론을 적극 내세우고, 이것과 목적론적 자연 혹은 신 이론과의 차이를 강조한다. 나아가 목적론적 통념들의 재활용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현실적인 인간이 추구하고 모방해야 할 완전한 인간의 이념을 상정한다. 이 인간본성의 전형의 접근에 도움이 되는 것을 선으로, 방해하는 것을 악으로 규정한다. 나아가 인간본성의 전형에 더 접근할수록 더 완전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인간 본성의 전형에 관한 이론은 일견 목적론의 한 유형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피노자에게 이 목적과 수단은 그
스피노자 에티카 1부 부록은 다른 부록이나 서문들과 그 위상이 다르다. 선행적 역사를 소개하거나 내용을 요약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만물은 신적 본성의 필연적 법칙에 따라 존재하고 작용하며, 신 역시 자기 본성의 법칙에 따라 존재하고 작용한다. 그래서 신 즉 자연 안에는 어떠한 우연적인 것도, 목적도 없다는 1부의 신론, 나아가 자신의 필연성의 철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래서 목적론을 제거하는 작업은 그에게 그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필연성의 철학을 위해 그는 “모든 자연물은 목적을 위해 행한다”, “신 역시도 어떤 특정한 목적에 따라 자연물을 이끈다”는 것을 근원적인 목적론적 편견으로 규정한다. 이 편견이 인간의 무지와 탐욕적인 맹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밝힌다. 이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편견들, 선악 및 질서와 혼돈 등과 같은 통념들은 사물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한갓 상상력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나는 이 논문에서 데카르트의 의식 개념의 의미를 해명함과 동시에, 그것이 그의 인식론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찰했다. 사유와 의식의 관계에 대한 몇몇 학자들의 주장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을 데카르트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개진하면서, 데카르트의 의식은 정신의 반성적 작용 혹은 정신의 내적 경험이고, 이것은 개개의 사유작용들뿐만 아니라 자신 안에서 발견하는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그리고 긴밀하게 인식하는 작용임을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작용은 그 대상과의 직접성으로 인해, 의식적 앎은 원칙적으로 오류 불가능하며, 이 때문에 그 앎은 데카르트적 인식론의 토대를 이룬다는 사실을 제시했고, 이러한 데카르트의 의식은 스피노자, 로크 그리고 라이프니츠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데카르트 철학에 있어 인간의 행복한 삶은 만족스런 삶에, 만족스런 삶은확신에 찬 삶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 글은..방법서설.., ..성찰.., ..철학의원리.. 그리고 ..정념론..까지 데카르트가 줄기차게 다루고 있는 확신 개념을 중심으로 그의 철학이 종국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다룬다. 데카트트에게 확신은 이론적 확신과 실천적 확신이 있을 것이다. 전자는 지식의확실성에, 후자는 행동의 확실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전자에 반대는 의심이고, 후자는 반대는 우유부단이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명시적으로 강조하듯이, “올바로행동하기 위해서는 잘 판단하면 족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라면, 잘 판단한다는것은 명석 판명하게 인식한다는 것이고, 또한 그에게 명석 판명한 인식이 의심할수 없는 인식이라면 의심의 근거들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달리 말해 인식과 행동의 확실성 혹은 확신의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그래서데카르트는 의심에서 출발하여, 확실한 지식의 가능성을
스피노자는 의지의 절대성, 임의성, 자의성 그래서 자유의지 이론을 전통으로부터 결코 받을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자유원인과 필연성의 이론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만물은 종국적으로 신적 본성의 필연성에서 필연적으로 비롯된다. 신은 만물을 예외 없이 필연적으로 산출했다. 신 역시도 자신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 존재하고, 자기 본성의 법칙에 따라 작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신, 실체 그리고 능산적 자연만이 자유원인이고, 사물, 양태 그리고 소산적 자연은 강제 혹은 필연 원인일 뿐, 전 자연은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작용한다. 그래서 자연 안에는 어떤 우연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스피노자가 <<에티카>> 1부 정리16 그리고 정리17과 보충1 및 2에서 끌어낸 결론이다. 정리17주석에서 스피노자는 자유원인과 자유의지를 주제로 전통과 대결한다. 전통에 따르면, 절대완전자인 신은 만물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절대의지에 따라 창조하려고 결의한 것만을 창조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은 자기 본성의 필
모리스는 그의 논문 “Descartes’ Natural Light”에서, 지성을 ‘power of conceiving’ 과 ‘power of cognition’((vis cognoscens 혹은 puissance de connaitre)으로 구분하고, 후자만을 데카르트의 자연의 빛으로 간주한다. 그는 그 근거로 철학의 원리 1부 30 항, 정신지도규칙 의 제12규칙 그리고 성찰 의 제3성찰의 몇몇 문장들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렇게 규정된 자연의 빛에 의해 인식되는 공통개념의 진리성은 애당초 데카르트적의심에서 배제되어 있고, 그는 이러한 의미에서 데카르트가 악순환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데카르트적 악순환에 관한 그의 주장을 긍정한다. 그러나 모리스와는달리, 나는 제3성찰에서 공통개념(notiones communes)과 관련된 자연의 빛은 인식력(vis cognoscendi) 혹은 이해력(vis intelligendi)이 아니라 자연적 충동(impetus naturales
본 논문은 스피노자에 있어서 “신의 사랑”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이 주제는 스피노자의 자유의 윤리학이 마침표를 찍는 곳이다. 예속인에서 자유인으로, 수동인에서 능동인으로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결국 신을 사랑함으로써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영혼의 평정에 이룰 수 있다는 것에 도달한다. 스피노자에 있어 사랑은 그 대상에 따라 구별된다. 소멸되는 사물에 대한 사랑과 불멸의 사물에 대한 사랑이다. 사랑이 사랑하는 주체와 사랑되는 대상과의 합일이라면, 전자의 사랑은 무상하고 부질없는 것인 반면, 후자의 사랑은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이다. 바로 영원하고 불변한 대상, 즉 신에 대한 사랑이야 말로 스피노자에 있어서 최상의 행복일 수 있다. 신의 사랑을 스피노자는 두 가지로 나누어 고찰한다. 신에 대한 사랑과 신의 지적 사랑이 그것이다. 신에 대한 사랑은 직관지에 이르지 못한 정신이 정서의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임시적 방편이다. 신체의 변용에 대한 명석 판명한 관
컬리는 『회의주의자에 대항한 데카르트』(Descartes against the Skeptics)에서 데카르트의 코키토 명제에 대해 매우 논쟁적인 주장을 제시한다. 그의 논제는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의 반론과 답변에서 메르센과 데카르트가 주고받은 반론과 답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범위는 데카르트의 형이상학 전반에 미치고 있다. 그는 메르센의 반론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해석을, 데카르트의 답변에는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나는 이 논문에서 그의 해석과 비판이 과연 타당한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려고 한다. 우선, 메르센에 대한 컬리의 독해는“quod sis”를 잘못 이해하고, 이와 아울려 “quod sis res cogitans”를 컬리가 데카르트 코키토 논증의 소전제로 간주한 “I think”와 동일시한 것이 그의 결정적인 오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데카르트에 대한 컬리의 비판은 관점의 편협성과 데카르트의 코키토 명제에 대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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