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uk Kang
Kyung Hee University · Social Sciences
About the Lab
Professor Inuk Kang'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Northeast Asian archaeology, with a focus on the prehistoric and early historic periods of the Korean Peninsula, Manchuria, and the broader East Asian region. The lab investigates the formation and transformation of early state societies—particularly Gojoseon and Goguryeo—through interdisciplinary analysis of burial mounds, bronze technology, ritual practices, and long-distance cultural networks. Key research directions include the chronology and spatial dynamics of ancient cultural complexes, the role of metallurgy and ritual objects in social integration, and the impact of migration and political upheaval on regional identity formation.
Research Overview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Selected Papers
15고조선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위해서는 유라시아적 보편성과 한반도~만주의 지리적 특성에 근거한 고고학적 모델이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기존 문헌사의 연구에 경도되었던 고조선에 대한 연구를 고고학적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청동제련기술, 무기의 발달, 의례의 형성이라는 세 가지 예를 통하여 고조선의 성립과정을 고찰했다. 초기 고조선의 청동기는 이러한 발해만~한반도에 이르는 청동기문화에기반하여 하가점상층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발해만유역에서 형성되었다. 십이대영자유적 단계에는 그이북의 하가점상층문화가 약화됨에 따라, 무기 대신에 다뉴경과 다양한 의기의 제작으로 위신재를 만들고 지역 간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비교적 넓은 지역에 이루어진 이러한 네트워크는 청동기의 생산 및 이데올로기의 공유로 강하게 유지되었다. 다뉴경이라고 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의기를 사용하고재분배함으로써 이 네트워크를 유지했다. 기원전 7~4세기 중국의 선진기록에 기록된 고조선에 해당하는 집단은 요서지역-요동반도-한반도로
본 고에서는 기원전 2세기~서기 5세기의 삼강평원의 곤토령문화와 봉림문화의 고고학적 문화를 중심으로 그 계통을 살펴보고, 그들의 성립 및 소멸과정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필자는 이와 같이 사서에기록된 각 민족의 시공적인 범위를 선험적으로 규정하고 그에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을 맞추는 중국학계의 연역적인 접근을 통하여 삼강평원=읍루설은 실제 고고학자료와 배치됨을 밝히고, 삼강평원의 곤토령을 읍루, 봉림문화를 물길로 인식할 경우 이후에 발흥하는 말갈문화와 고고학적 문화에서 보이는차별성을 설명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본고에서는 삼강평원에 사람들이 집약적으로 거주하는 기원전 2세기~서기 6세기를 전기단계인 곤토령문화시기(기원전 2~서기 2세기), 발전기인 봉림문화시기(기원전 2~5세기), 그리고 말갈계문화로전환되는 물길-두막루단계(서기 6~7세기)로 나누었다. 전기의 곤토령문화의 고고학적 문화상은 목단강유역의 東興文化, 부여문화(포자연문화), 연해주의 團結문화(=올가문화) 등과 가까운 바, 옥저계
상림리 유적은 동아시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국 동주식검이 대량으로 매납된 유적으로 동검을 통한 세 형동검 시기 동북아 일대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하지만 그 의의에 대해서는 ‘도씨검’이라는 애매한 명칭의 사용과 함께 원론적인 논의만 진행되었을 뿐이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기원전 1천년기 동아시아 동검문화의 확산과 소멸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상림리 유적을 재해석하였다. 먼저 상림리 동검의 관찰결과 실용적인 의미 는 거의 없는 의례용이며 주조 직후 곧바로 매납되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동아시아 일대 청동장인 관련 유적과 마 찬가지로 청동기 장인에 의해 남겨진 것으로 보았다. 상림리 매납유구는 중국(아마 산동지역)에서 장인이 한반도 서남지역을 이동해서 지역사회에 동화되었고, 청동검의 주조와 관련한 의례를 하고 남긴 결과이다. 이러한 청동기 매납현상은 기원전 1천년기에 동아시아 일대에서 널리 보이는 것으로 장인들은 자신만의 제작기법에 대한 노하우 를 유지하며 제사와 매납행위
한국학계에서 리지린은 1980년대 촉발된 고조선의 영역문제로 회자되었지만, 사실 그의 연구는 북한은 물론 러시아의 연구가 유.엠.부찐에게도 결정적 영향을 주었던 바, 사회주의권을 대표하는 고조선의 연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영역과 관련된 소모적인 논쟁에만 그의 연구가 인용될 뿐, 그의 연구가 태동하게 된 배경 및 중국과 북한의 연구에서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가 되지 못했다. 본 고에서는 리지린의 의의는 단순하게 영역 논쟁으로 그칠 수 없으며, 1960년대에 지속되었던 북한 학계의 첨예한 학문적 갈등 속에서 만들어지고 등장한 인물임을 밝히고자 했다. 필자가 본 고에서 밝혀낸 바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로 고힐강의 일기와 북한의 자료들을 대조한 결과 리지린의 연구와 고조선의 강역을 둘러싼 논의가 사실상 이미 1950년대 말부터 북한 학계 내부적으로 치밀하게 준비되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고조선에 관한 과학토론회’는 사실상 이러한 북한학계
문헌사에서는 고구려 성립 초기부터 멸망 직전까지 책성을 중심으로 연변지역으로 경영했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실제 연해주와 연변 일대에서 전형적인 고구려의 흔적은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필자는 고고학적 자료에 기반하여 백산말갈의 형성과 고구려의 지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2세기경까지 북옥저는 읍루계통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올가문화로 존속했고, 관구검의 침략 이후 기존의 북옥저 계통의 문화가 와해되었다. 이후 4세기이후에 본격적으로 말갈문화가 등장했다. 관구검의 침략은 토착 사회에 큰 위기가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기존의 북옥저 계통의 문화(=크로우노프카문화)가 완전히 없어지고 고지의 방어성 취락과 철제 무기의 급증 등으로 대표되는 말갈문화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잡곡농경에 기반하여 평지에 마을을이루는 옥저계 주민들의 생계경제 대신에 수렵과 채집을 병행하는 말갈계통의문화가 연변과 연해주 전역에 확산되었다. 한편 고구려는 연변지역 진출 초기부터
무덤자료를 통해 살펴본 이 변동의 시기 만발발자 유적 특징을 보면 다음과 같다. 기원전 4세기경에 만발발자 집단은 토광묘를 축조하고 있었다(Ⅱ구역). 이들은 2단계가 되면서 모피무역으로 야기된 전염병으로 추정되는 큰 변화를 맞이하여 20, 21호의 집단토광묘의 예에서 보듯이 집단 내부의 인구가 급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무덤의 축조 입지는 유적의 서편에서 동편으로 옮겨졌고, 토광묘 집단 이외에 대석개묘로 대표되는 새로운 집단이 유입되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동화되었고, 입지를 달리하여 구릉의 정상에 대석개묘와 적석총을 축조하는 등 사회는 새롭게 전환되어 통합되어갔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와 묘제의 통합을 거시적으로 바라본다면, 그 이전까지 요서지역과도 연결되었던 만발발자의 네트워크가 해체되었고, 대석개묘 집단의 유입을 거쳐서 그 동쪽의 고구려로 대표되는 압록강 중상류지역 집단의 네트워크로 편입되었다. 통화 만발발자는 통화와 환인 일대가 후기 고조선의 영향을 벗어나
본 고에서는 러시아와 몽골의 국경지역인 사얀-알타이 산맥 일대에 기원전 5~3세기에 번성했던 파지릭문화에 대한 최근 20년간의 발굴성과를 1990년대와 2000년대를 대표하는 폴로스막의 『우코크의 기마인』과 몰로딘의 편저 『사일류겜의 얼음고분』을 통하여 그 성과를 살펴보았다. 『우코크의 기마인』은 영구동결층 속에서 발견된 파지릭고분의 다양한 유기물질에 대하여 19~20세기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의 민족지자료를 이용하여 2300년전 알타이 지역의 파지릭문화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할 수 있었다. 그녀의 연구는 역사-문화적 접근이라는 전통고고학적 방법으로 과거 사람들의 종교, 예술 등 정신문화까지도 상당히 체계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사일류겜의 얼음고분』은 러시아-몽골-독일의 3개국이 몽골 알타이지역의 파지릭고분을 조사하고 분석한 연구이다. 이 저서는 지난 20여년간 축척된 영구동결대에 대한 고고학적 방법의 개발에 기반한 다양한 학제간 통섭연구가 돋보인다. 또한
이 글에서는 남북한 고조선 연구 인식의 획기가 되는 1963~1965년의 ‘조중고고발굴대’의 전모를 새롭게 발간된 중국 측 담당자인 안지민의 일기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비록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공동조사였지만, 그 배경은 사회주의권의 정치적인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1950년대 소련의 『세계통사』에서 고조선 부분이 누락된 것에 불만을 가진 북한은 중국과 연결하여 리지린을 북경대에 유학을 보냈다. 그리고 리지린은 새로운 고조선 연구로 만주를 고조선의 영역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도유호로 대표되는 북한 고고학계의 헤게모니를 빼앗았다. 조중고고발굴대는 이러한 북한 학계의 고조선 연구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실제 조사에서는 의도한 결과가 나올 수 없었다. 만주국의 피해를 겪은 중국 측의 강한 반발과 명청대의 문헌을 근거로 고조선을 찾으려는 문헌사학자 리지린의 오판 때문이었다. 1차년도에 고조선의 중심지를 찾는 데 실패한 리지린은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신에 2차년도부터는 고고학
서로 떨어진 지역 간의 비교는 고대 유라시아 초원 지역을 중심으로 기존에 논의되어 온 고대의 상호교류에서 누차에 걸쳐 논의되어 왔다. 그런데 직접적인 상호작용권이 아니어도 하나의 커다란 체계 안에서 각 지역의 문화들이 발달했으며, 상호 유사성을 보여줄 가능성도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광역의 문화변동 흐름을 초원과 동북아시아로 확대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아르잔과 강상묘를 사례연구 삼아서 기원전 1천년 기 동검문화의 개시기에 동아시아 북방과 비파형동검문화권은 하나의 체계로 연동되어서 문화가 전개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먼저 Ⅱ, Ⅲ장에서 아르잔 고분 및 강상묘의 고분구조와 주요 특징을 외형, 내부구조, 묘장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Ⅳ장에서는 두 고분을 비교하고 그 의의를 고찰했다. 그 결과 두 지역은 서로 상호작용을 상정할 수 없는 원거리이지만, 기원전 9세기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전역의 문화가 재편되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는 유사한 무덤축조 현상으로 보았다. 본고에
In this study, author analyses Arzhan-1 kurgan, located in (=Tyva) republic of Russian Federation, Southern Siberia. Although it was excavated more than 40 years ago(1971~1974 years), many researchers still devote themselves to figure out the chronology of Arzhan and its significances as the indicator for the origin of Scytho-Siberian culture. Arzhan-1 Kurgan is located near village of same name, and Gryaznov M.P., who excavated and reported Arzhan-1, suggests that this kurgan is dated to 9-8th
In this study, author analysed steppe elements in archaeological cultures in the South-western part of China. The correlation with steppe culture could be explained in three ways of migration and trade. This correlation was based on the stock-breeding economy, adopted since 1700 BCE in Tibet Plateau. Since then, migration and interaction routes with steppe regions existed continuously. This correlation was magnified by the expansion of Xiongnu Empire and Wusun to southward and subsequent migrati
최근 고구려의 연구가 다양화되면서 그 북방 이웃지역과의 관련에 대한 관심이많아지고 있다. 특히 삼연(三燕) 문화로 대표되는 모용선비에 대하여 한·중·일여러 학자들의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고구려의 성장시기와 관련된 북방지역의 선비·유연·돌궐 등이 어떻게 유라시아 초원 일대의 유목국가형성에 이바지했는가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흉노의 발흥이후 선비와 유연 시기에 해당하는 서기 1~5세기의 남부 시베리아의 알타이· 몽골·프리바이칼·자바이칼 지역의 고고학적 문화를 살펴보고 그 특징과 유라시아 고고학에서의 의의를 다루었다. I장에서는 유라시아 동부의 초원지역에서선비 문화가 새롭게 인식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II장에서는 그간 공백으로만알려져 있던 서기 1~5세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줄 수 있는 최신 발굴자료들을 소개했다. 이후 III장에서는 각 지역의 선비·유연 시기의 시공적인 범위, 지역적인 차이 등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하여 고구려의 북방 이웃으로서
소설 『Dersu Uzala』는 연해주에서 만난 원주민 데르수와 러시아인 아르세니예프가 만나서 같이 연해주를 탐험했던 이야기를 주요한 테마로 한다. 아르세니예프는 자연과 함께 살던 데르수의 삶을 존중했지만 결국 러시아인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지역의 개발이었다. 그의 조사이후 연해주는 철도가 놓이고 급격히 개발되어갔다. 그 와중에 얼마나 많은 또 다른 ‘데르수’가 사라져갔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해양을 매개로 다른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다른 서양의 열강과 달리 러시아는 자국의 영토를 확장해가는 과정에서 거점위주로 시베리아와 극동을 개발했다. 이러한 다른 맥락에서 이루어진 러시아의 유라시아에 대한 관심과 지배의 맥락에서 한국과 주변을 인지했다. 『데르수 우잘라』는 러시아가 극동으로 진출했을 때에 원주민에 대한 회한과 애정이 담긴 탐험가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문학작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본 연구에서는 기원전 1천년기 요서지역 비파형동검문화와 이웃한 내몽골 동남부/발해만 이북지역의 유목계통 문화를 중국 사서의 기록과 비교하여 그 실체를 규명하고자 했다. 먼저 선진 사서에 반영된 다양한 주민집단의 기록이 다양한 맥락에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단편적인 증거로 무리하게 고고학적 문화에 대입함을 비판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일관되게 전쟁을 일으키는 집단의 경우 상당히 구체적인 정황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실체적인 접근이 가능한 예로 보았다. 전쟁을 통해서 얻어진 이방민족에 대한 자료가 제일 체계적이며, 전쟁을 통하여 상대방의 무기 및 마구가 유입되는 경우 고고학적 유물에도 잘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에 본 고에서는 구체적인 예로 하가점상층문화의 소흑석구 유적에서 발견된 허국산 청동기를 분석하였고, 이를 선진사서에 구체적이며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이방민족과의 충돌과 비교하였다. 그 결과 하가점상층문화에서 소흑석구/남산근 유적이 만들어진 기원전 8~7세기대는 산융에 비정됨을
이제까지 한반도 북방계 문화의 계통에 대한 연구는 구체적인 접근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북방 초원 지역과의 관계는 시기별로 지역과 공간을 달리해서 다양하게 전개되지만 그를 시공적인 맥락에 대한 이해가 없이 막연하게 북방계로 통칭했다는 데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본 고는 한반도 북방계 문물의 유입을 시간과 공간적인 맥락에 따라 정리하고 특히 한국의 초기 철기시대 북방계 문물의 흔적과 주요한 관련이 있는 기원전 4~2세기대의 교류상을 살펴보았다. 필자는 이 시기 중국 북 방 장성지대에 널리 확산되는 사카계통의 문화에 주목했다. 그들은 毛慶溝유형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오르도스 고원의 문화와는 이질적인 문화상으로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신장과 감숙회랑을 거쳐서 중국 북방으로 유입되었다. 이 세력은 사서에 따르면 서융, 북적, 적적, 정령, 임호, 누번, 동호 등으로 불리웠다. 특히 연나라 북쪽에 거주했던 사카계 주민인 동호는 연국과 대적했다. 연 신장두 30호묘에서 발견된 다양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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