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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hoon Kang

Korea University

About the Lab

Professor Jehoon Kang'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the historical and philosophical analysis of Confucian ritual systems in Joseon Dynasty Korea, with a focus on the institutionalization of state rites, ancestral veneration, and the integration of Confucian ethics into political and funerary practices. The lab explores how ritual codes such as *Gugok Orye-ui* and *Sejong Sillok* were compiled to replace Buddhist traditions with Confucian orthodoxy, emphasizing the role of ritual in constructing social order, legitimacy, and state identity. Key research directions include the evolution of royal funerary rites, the distinction between official (jeong-sa) and popular (sok-je) rituals, and the influence of Neo-Confucian thought on geomancy (fengshui) in royal tomb construction. The lab also investigates the transmission and adaptation of Ming dynasty ritual models within Joseon’s unique political and cultural context.

Confucian ritualJoseon Dynastyancestral ritesstate ritual codesfengshui in royal tombs

Research Overview

Papers
27
Total Citations
189
Papers (5y)
6
Primary Field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Publications per year (5y)
6total
2022
2023
2024
2025
2026
Citations per year (5y)
11total
20222023202420252026

Selected Papers

15
1
Article|27 citations·2015
조선 초기 俗祭 祭祀床의 구성과 그 특징
강제훈

조선에서는 장기간에 걸쳐 유교적 조상 의례를 정비하였고, 『국조오례의』는 그러한 작업의 결과였다. 『국조오례의』에는 정식의 유교 제사인 종묘 외에도, 유교 제사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종묘와는 구분하여 俗祭로 분류한 제사가 있었다. 文昭殿과 眞殿, 山陵이 그것인데, 각각 位牌와 御眞, 體魄을 모신 공간이었고, 신주를 세워서 제사하는 종묘와는 구분되었다. 이들은 제사 의식이 종묘와 다르게 설정되었지만, 무엇보다 신과 소통하는 매개물인 제수에서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었다. 이 글은 속제의 제사상 구성을 분석하여 조선에서 시도된 유교적 의례 정비의 특색을 밝히고자 하였다. 종묘의 제사상이 일상적인 음식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규정된 제수를 사용한 반면, 속제의 제사상은 일상의 잔치나 외국 사신 접대 등에 동일하게 사용되는 것이었다. 속제의 제사상은 본래는 흉례의 혼전과 산릉에 사용되었던 것이 각각 길례의 원묘와 산릉으로 계승되어 사용되었다. 원묘에서는 生時와 같이 섬긴다는 원칙에 의해 평

2
Article|21 citations·2010
朝鮮初期 宗親職制의 정비와 운영
강제훈

The throne should succeed to the one of king's sons or the one of relatives men with the same family name according to Confucian rules. Relatives men with the same family name guaranteed to enjoy the exclusive possession of the king tittle by Yi family as well as threatened to usurp the throne against the ruling king. The need for controlling and doing them the honor due to their position as the king's relatives asked to make a few titles in the bureaucracy. Right after the foundation of the d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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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19 citations·2021
조선 세종조의 國家禮 정비와 五禮의 성립
강제훈

이글은 『세종실록』에 수록된 「오례」가 조선 최초의 국가례 편찬물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해당 편찬물이 작성될 수 있었던 배경과 특징에 대해 검토한 것이다. 이글에서는 유교적 의례의 정비는 오랜 관습이었던 불교적 생활 관습을 대체하는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恒産을 확보하여 恒心을 갖게 한다는 유교적 명제가 세종 시대에 의례의 정비를 통해서 시도되었음을 검토하였다. 민간례와 달리 국가례는 길・흉・군・빈・가례로 범주화된다. 『세종실록』에는 300여 개의 의주가 수록되어 있는데, 유교 의례를 시행하기 위해 이 정도로 많은 의식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세종실록』의 「오례」는 직접적으로는 세종 26년 국왕의 지시로 정리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저변에 세종 치세 전 기간에 걸친 다양한 의주의 작성과 의례에 대한 검토가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가례로서 오례가 정리될 수 있었다. 이글에서 주요 개념어로서 동시대의 명나라 예제를 時制, 당・송의 제도를 古制, 조선

4
Article|18 citations·2017
조선 초기 王室 祖上儀禮의 유교적 정비
강제훈

조선은 즉위교서에서 유교 의례의 실천을 선언하였다. 오랫동안 전통이었던 불교식 조상의례는 국왕과 왕비가 사망하고, 관련된 의례를 진행하게 되면서 유교적 의례로 대체되었다. 종묘 의례는 태조의 사망 후, 태조 神主를 종묘에 모시는 과정에서 조선식의 定形이 마련되었다. 이를 기준으로 山陵과 原廟, 眞殿 등의 의례가 정리되었다. 태종 때부터 종묘는 보편적 유교 의례로 설정되었다. 반면에 俗祭에는 揖, 俯伏 등 종묘 의례에 없는 동작을 사용하고 奠幣, 飮福 등의 절차를 종묘와 다른 패턴으로 시행하였다. 세종대를 거치면서 점차 조상의례는 유교 의례 기준에 없는 동작은 해소하고, 각각의 절차를 일관된 방식으로 통일하되, 의례 구성에서 어떤 절차를 넣거나 빼거나 하여 서로를 구분하였다. 처음에는 종묘 의례를 기준으로 속제를 정비하였으나, 나중에는 속제의례에서 정리된 패턴으로 종묘 의례를 수정하기도 하였다. 『국조오례의』 왕실 조상의례는 태종대 이래의 일관된 원칙에 따라 정비된 결과물이었다. 正祀

5
Article|15 citations·2012
조선 「世宗實錄」 「五禮」의 편찬 경위와 성격
강제훈

『세종실록』에는 다른 실록과는 달리 다양한 부록이 있다. 『세종실록』에 다양한 부록을 넣게 된 이유로 『고려사』를 기전체 편집했던 관원들이 대거 실록 작업에 투입된 점을 지적하였다. 『세종실록』의 편찬을 편년체로 결정하는 기록은 있지만, 부록을 편집하게 된 경위나 이유에 대해 언급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첫 번째 부록인 五禮에 대해서는 별도로 부록을 편집하지 않기로 했다는 기록이 두 번 나타난다. 이 글은 이 두 번의 언급을 검토하여 『세종실록』 오례를 편찬하게 된 경위를 살펴보았다. 첫 번째 논의는 세종 때 만들어진 의주를 별도의 부록으로 모을 것인지, 아니면 날짜별 편년 기사로 수록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둘째는 세종 26년 국왕의 지시로 변효문 등이 편찬한 五禮儀註를 『세종실록』에 편입하는 문제였다. 두 번 모두 부록으로 수록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럼에도 현재의 『세종실록』에는 첫 번째 부록으로 五禮를 싣고 있다. 번복의 과정은 알 수 없다. 가 글에서는 『세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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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15 citations·2014
조선 왕릉과 왕릉 의례의 특징
강제훈

It is said that each royal tomb in Joseon was made with great devotion in considering geomantic principles and strictly observing Confucian etiquette. This article pays attention to Neo-Confucian influences. Fengshui (geomantic idea) in Joseon was different from that of Goryeo. Whereas in Goryeo Fengshui was applied to choices of dwelling places and cities, it was applied to tombs in Joseon. Royal tombs in Joseon represent the beginning of the application of Fengshui to tombs and display th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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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11 citations·2012
조선전기 국왕 儀仗制度의 정비와 상징
강제훈
www.kuish2900.or.kr

Ceremonial objects symbolize kings apart from subjects. In the West a single symbolic icon was used, but in the East Asia more icons were used for higer-ranked figures. Ceremonial objects for queens and princes were only parts of the ceremonial objects used for kings. This article examines the ceremonial objects used in National ceremonies held at the courtyard of the palace. In accordance with the general rules in the Confucian countries, ceremonial objects used in the royal processions were 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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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10 citations·2009
조선 초기 正至會禮 의식의 정비와 운용
강제훈

In early Joseon they had a New year and the Winter Solstice’s feast with Confucian Style. The feast was called Jeong Ji Hoe-rye(正至會禮), Jeong means a New Year’s Day, Ji means The winter Solstice and Hoe-rye is the great feast for king and all kind of officers. The revision of the protocol for the feast reflected the result from the 100year’s long efforts to make the confucian style rites for the court rituals since founding the dynasty. The feast consists of two main procedures, the first is to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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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9 citations·2010
조선 초기 勳戚韓明澮의 관직 생활과 그 특징
강제훈

This study aims at understanding a common characteristic of the meritorious elites in early Joseon. The meritorious elites were thought to have been a ruling class for about 100 years since the foundation of Joseon dynasty. They were also thought to play a negative role during king Seongjong's era and have been removed from the ruling class and replaced by neo-confucian literati. Such a commonly accepted theory doesn't take concrete form on the detailed analysis. As a first step to review on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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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7 citations·2011
조선전기 墓誌銘에 나타난 宗親職制 운영
강제훈

본 논문은 『경국대전』의 종친 관련 규정이 법 규정이 만들어진 직후 시점인 16세기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는지 추적한 글이다. 『경국대전』의 종친직 규정은 당시의 사회 관행과는 달리 중국의 종법에 근거하여 부계 친족과 적장자의 지위를 강조하는 법이었다. 당시 종친의 혼인 형태와 가계 계승이 과연 법 규정이 의도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추적하였다. 조선 사회의 친족 구조는 결국 부계 중심으로 구성되게 되는데, 조선의 왕실은 그 선구적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본 연구는 그러한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추적하는 시도였다. 본 논문에서 채택한 방식은 16세기 묘지(명) 자료를 이용하여 관련 사실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국왕의 손자와 증손에 해당하는 2-3세대 종친은 연대기 자료에서 잘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마침 공개된 몇 편의 묘지(명) 자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종친의 종친 직 제수 상황과 자녀관계 및 그들의 혼인 대상을 검토할 수 있는 자료이다. 개별 묘지(명)에 개입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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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6 citations·1998
朝鮮初期 國庫穀의 還上 운용
강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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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4 citations·2014
조선 중엽 金萬鎰의 獻馬 업적과 관직 제수
강제훈

이 글은 임진왜란과 호란을 거치는 격변기에 살았던 제주 지역의관인 김만일에 대해 재검토한 것이다. 당시는 국내적으로도 반정을통해 인조가 즉위하고, 이괄의 난이 발생하는 등 혼란이 극에 달했던시기였다. 제주 지역의 正兵이었던 김만일은 말 수요가 절박해진 정부의 필요에 탁월하게 대응하여 유래없는 고위직을 제수 받은 인물이다. 선조 때의 그의 모습은 사료 상에서 확인되지 않지만, 광해군 대는 獻馬를 통해서 특별히 국왕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정권이 바뀐 인조 대에도 다급한 대륙의 정세로 인해 말 수요는 더욱 절실하였고, 인조정부는 김만일 외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만큼 그는 말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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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4 citations·2022
조선 초기 종묘 親享儀의 禮樂 구성
강제훈

이글에서는 종묘 親享儀를 중심으로 의례와 음악의 정비를 당시 사람의 시선에서 종합하여 이해할 수 있는가를 시험적으로 검토하였다. 종묘 의례를 유교적 본속이라는 시각에서 해석하기 위해서, 의례 절차와 용악의 구성을 함께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조선은 친왕 등급의 유교 국가례를 구축하려고 했기 때문에 고려의 제도를 승계할 수도, 중국의 황제 五禮를 그대로 수용할 수도 없었다. 명은 자신의 오례를 조선에 공개하지 않으면서 ‘조선의 本俗을 따르라’ 선언하였다. 조선은 친왕에 해당하는 유교 本俗을 사실상 창출해야 했고, 이로 인해 의례 정비에 긴 시간을 투입하였다. 세종은 조선적인 음악이 적용되는 종묘 친향의 의례를 추구하였다. 古制 혹은, 時制를 지향하면서, 수차례 의례 절차를 개정하였지만, 점차 이에 구애받지 않는 의례 형태를 구성하였다. 조선적 특색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음악적 중요성도 부각되었다. 세종 말년 新樂을 창제하였는데, 선왕의 덕과 업적을 칭송하는 신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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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3 citations·2015
朝鮮初期 國家儀禮 정비의 지향과 원칙 - 吉禮·凶禮의 상호 영향을 중심으로 -
강제훈

조선의 건국은 한국 역사에서 유교적 전환이 이루어진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조선의 유교 지향은 유교 의례의 실천을 통해서 나타났다. 의례의 실천에는 세 요소가 고려되었다. 첫째는 국가 차원의 유교 의례이다. 유교 의례는 국가 차원의 의례와 민간 차원의 의례가 구분되었다. 민간 차원의 의례는 송나라 『朱子家禮』를 실천하는 문제였다. 주자가례는 父系親族을 기반으로 시행하는 민간 의례였다. 조선은 부계 친족이 없었기 때문에, 지배층 내에서도 주자가례의 실천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조선에서는 일단 유교적 국가 의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에서는 지속적으로 국가례의 정비에 관심을 보이고 典禮書 편찬을 시도하였고, 이러한 노력은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둘째는 親王 등급의 원칙을 적용하고자 하였다. 유교적 국가 의례를 중국에서 정비한 것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었다. 중국의 禮制는 황제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황제의 아들 중, 황후에게서 출생한 아들이 친왕이 되었다. 조선은 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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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3 citations·2023
조선 초기의 禮樂 정비와 典禮書 간행: 『세종실록』「오례」를 중심으로
강제훈

조선은 불교에 기반을 둔 고려를 부정하면서 유교 이념에 입각한 유교 예치를 지향했다. 독자적인 예와 악을 갖추고자 했던 조선에서는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유교식 국가례인 오례를 정리하게 되었다. 이글에서는 『세종실록』에 부록으로 들어간 「오례」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검토하였다. 『세종실록』의 「오례」가 미완의 작업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진 바가 있다. 이글에서는 이 작업이 종료될 수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으로 「용비어천가」로 대표되는 신악의 창제를 지적하였다. 유교의 예를 정리하는 작업은 음악의 정비와 짝을 이루는 것이었다. 『세종실록』의 오례는 조선 최초의 오례 정리 작업이었는데, 이는 雅樂 정비와 대응이 되어 진행된 것이었다. 아악과 별도로 唐樂과 鄕樂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향악과 당악이 조선의 음악이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 중국을 기원으로 하는 아악 일색으로는 조선의 예악을 운용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용비어천가」를 비롯한 新樂이 창제되었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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