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mook Lee
Seoul National University · Social Sciences
About the Lab
Professor Jongmook Lee'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Korean literary and cultural history, with a primary focus on the development of Joseon-era literature, particularly Hansi (Korean classical poetry in Chinese script), translation practices, and the role of gender and education in early modern Korea. The lab investigates the transmission and reception of literary texts, including the evolution of multilingual and multilayered textual traditions involving Hanmun (Classical Chinese), Hangul (Korean script), and vernacular translation. It also explores the cultural and intellectual history of Confucian elites, especially the scholarly lineages and literary networks in late Joseon Korea, as well as the material and spatial dimensions of literary production such as gardens, pavilions, and manuscript collections.
Research Overview
Research Output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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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Papers
15한글이 창제된 초기에 여성과 아동을 위한 번역서는 한문이 중심이고 한글이 보조적인 역할을 하였다. 조선 초기에 나온 아동을 위한 한시 번역서 역시 한문이 우선이고 한글이 부차적인 지위를 차지하였다. 16세기 이래 일반 대중의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교화서를 중심으로, 한문 원문 자체의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번역문의 한글 전용이 서서히 이루어졌다. 또 한글이 왕실에서 여성들의 공식적인 문자로 자리하면서, 조선 후기에는 왕실 여성의 교화나 교양을 위한 번역이 대규모로 이루어졌고, 이러한 번역서는 철저하게 한글만으로 표기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여성이 한문으로 문자생활을 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사회분위기에서는, 한문을 알면서도 한글로 된 책을 읽어야 했고 또 한글로 글을 적어야 했다. 한글이 여성의 공식어로 자리하였기에, 상대가 여성일 때에는 남성 지식층도 그들의 공식어인 한문이 아니라 한글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한문으로 지은 한시도 번역문뿐만 아니라 원문까지 한글
조선시대 문인들은 인공의 산을 만들거나 산수 유람의 글을 읽고 산수화를 걸어두는 등의 방법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자연을 감상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臥遊'라는 용어로 규정하였다. 고려 및 조선시대 문헌에서 사용된 '臥遊'는 크게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첫째 宗炳이 처음 이 말을 사용한 대로의 회화, 둘째 인공의 산인 假山, 셋째 산수 유람의 기록이 그것이다. 본고에서는 우리 문화사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臥遊의 세 양상을 살폈다. 조선전기 이래 원림의 경영과 함께 유행한 것이 石假山이다. 조선시대 가산의 조성은 기본적으로 臥遊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직접 체험할 수 없는 자연을 즐기는 방법으로 가산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산수화 역시 臥遊의 수단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산수화를 걸어두는 것과 가산을 만들어 세우는 것은 체험이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림으로 진짜 산수를 대신하기는 어렵다. 그림보다 생동하고 핍진한 것이 바로 假山이다. 그러나 가산은 가짜 산이다. 가산은 진짜
근대 학문이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20세기 전후한 시기며,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인 학술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는데, 주로 전통적인 한학자에 의하여 한문학 유산을 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1927년 鄭萬朝가 <朝鮮詩文變遷>, 洪熹의 <朝鮮文學源流略論>, 李昇圭의 《東洋詩學源流》, 金瑗根의 朝鮮古今詩話 등이 일제강점기 한문학 유산을 정리한 성과로 꼽을 수 있다. 근대학문을 경험한 학자들의 한문학 연구는 金台俊이 1931년 발표한 《朝鮮漢文學史》가 대표적인 성과다. 이 무렵 일본 학자들은 중국과 만주, 한국 등을 잇는 동아시아의 틀 속에 보편적인 문화, 곧 한문학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졌다. 조선총독부에서 간행한 종합잡지 《朝鮮》와 1930년 창립된 靑丘學會의 《靑丘學叢》 등에 일본 학자의 조선한문학 연구논문과 해제가 수록되었는데 특히 多田正知는 고려 한문학과 조선 전기 한시, 조선중기 古文에 대한 연구논문을 내어놓아 조선 한문학 연구를 선도하였다. 이에 비하여 일제강
It is from ImJinWeiLan that Joseon's Hansi was introduced to China. Some Ming literary men who were followed the Ming troop started to compile the anthology of Joseon Hansi. Some anthologies such ans OMyeongJe(吳明濟)’s JoseonSiSeon(朝鮮詩選), NamBangWi(藍方威)’s JoseonSiSeonJeonJib were appeared and later JeonGyeomIG(錢謙益) reprinted O’s work in his YeolJoSiJib(列朝詩集). From then Joseon’s Hansi was spread out. Also there are SonCiMi’s JoseonCaePongLog(朝鮮採風錄) which Joseon literary man helped to compile. These
본고는 18세기의 이름난 학자 鄭東愈와 그 一門의 저술에 대한 개괄적 보고를 목적으로 한다. 鄭東愈의 학문은 일제강점기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문집이 국내에 전하지 않아 『晝永編』을 중심으로 한 단편적인 연구에 머물렀으며, 소론의 명문가였던 그 一門의 저술 역시 거의 연구되지 못하였다. 이에 본고에서는 본고에서는 미국 버클리대학에 소장되어 있는 『玄同室遺稿』, 『閒古董』 등을 통하여 정동유의 생애와 학문, 문학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하였으며, 또 정동유의 막내 아들 鄭友容의 문집 『密巖遺稿』, 정동유의 당질 鄭耆容의 문집 『蓼庵遺稿』, 그리고 鄭覺先의 『杜陵漫筆』, 鄭克淳의 『淵雷遺稿』 등 그간 우리 학술사에서 조명되지 못한 일련의 저술을 통하여 정동유 집안의 학문적 경향을 조명하였다. 이를 통하여 조선 후기 소론의 명문가였던 정동유 집안의 학문적 경향을 조망하고자 하였다.
본고는 기묘사림의 일원인 김세필, 이자, 이연경 등이 충주 일원에 물러나 살면서 박상, 김정국, 신광한 등 또다른 기묘사림들과 충주와 여주 등 남한강 일대에서 벌였던 문학 활동에 대한 연구다. 지비천 가의 말마리에 있던 김세필의 공자당, 음애와 토계에 있던 이자의 과정과 몽암, 탄금대에서 남한강 상류 쪽에 있던 이연경의 용탄 등에 대해서는 문화지리학의 시각에서 자세히 살폈다. 이러한 학문과 문학의 공간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충주 일원의 문화콘텐츠를 확보하는데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조선시대 뛰어난 문학 작품의 생산을 위한 浩然之氣의 배양이 산수 유람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자연은 심성 수양의 도구로 인식되었는데, 자연을 통하여 窮理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居敬에 이르러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자연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였다. 이와 함께 조선시대 문인들은 자신이 노닌 자연을 자신의 소유로 하기 위하여 자연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을 지었지만, 역으로 이름 없는 자연이 아름다운 문학 작품으로 이름이 날 수 있다는 논리를 개진하였다. 이러한 논리의 결과를 확충할 때 인간이 이제 산수를 이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산수를 위하여 인간이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연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은 파괴되기 이전 자연의 아름다움을 기록으로 전할 수 있고, 이를 통하여 자연을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태주의적 사고를 확충시켜 나갈 수 있으며, 또 파괴된 생태의 복원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의미가 크다. 이러한 점에
전통시대 한시는 생활의 일부였기에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꽃이나 채소 등의 소재를 즐겨 다루었다. 특히 시에서 일상을 다루는 것이 宋詩의 한 특질이었기 때문에 한 시대를 풍미하였던 唐風이 쇠퇴하던 18세기 무렵 많은 작가들이 꽃이나 채소 등의 일상적인 소재를 적극적으로 한시에 담았다. 특히 金昌業은 이러한 흐름을 선도하여 자신이 살던 생활공간 주변의 화훼와 채소 등을 소재로 한 대량의 연작시로 제작하는데, 단순한 정감을 넘어서 재배와 식용에 필요한 정보를 담아내었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그 후 許穆, 李萬敷, 愼後聃, 申景濬 등 실용적인 학문에 관심이 있던 일련의 학자풍 문인들이 이러한 연작시를 즐겨 제작하였으며, 19세기 무렵에는 沈象奎와 같은 서울의 상류층뿐만 아니라, 金鑢, 李學逵, 朴允默 등 다양한 인물들이 다투어 채소나 화훼 연작시를 생산하였다. 생활의 일부로서 꽃과 채소를 재배하고 다시 생활의 일부로 이를 시로 제작한 것이 조선 후기 문화사의 한 단면이요 한시사의 한 흐름
In the seventeenth century, the encyclopedic writing was introduced from China and the description of all things classified by a type was prevailing. It is notable that Yi Eung-hee, one common noble man whose anthology, Okdamyugo had not known to the world wrote the Poetic Encyclopedia, Manmulpyeon, based on this stream. Manmulpyeon followed the refined style as a poem, but the information about things the poem contains beats Jibongyuseol or Domundaejak, which were the similar kind of works, in
花林洞, 尋眞洞, 猿鶴洞 등 安義三洞은 예로부터 그 풍광이 아름다운 데다 뛰어난 문인들의 자취가 서린 곳이기에 그 이름이 높았다. 심진동의 長水寺에는 노진이 젊은 시절 독서를 하였고 특히 <遊長水寺記>를 남겨 심진동의 이름을 후대에 길이 전해지게 하였다. 이 논문은 盧禛의 <遊長水寺記>를 중심으로 하되, 杜慧의 <安陰長水寺與龍湫菴創修源流興廢錄>, 明察의 <安陰縣德裕山長水寺大雄殿重營記>, 應允의 <德裕山尋眞洞記> 등의 새로운 자료를 통하여 장수사의 역사를 밝혔다. 장수사는 나말여초 覺然이 창건하여 여말선초 無學이 중창하였으며, 그 후 조선 초기 다시 朴習에 의하여 중창되어 그 집안의 원찰이 되었다. 그 후 1680년 화재로 장수사는 전소되고, 지금의 장수사 일주문이 있는 곳으로 옮겨지었다. 1721년까지 건물이 하나씩 복원되어 大雄殿 외에, 八相殿, 斗月寮, 滿月堂, 明鏡堂, 曺溪門, 天王門 등이 차례로 조성되었다. 또 1725년 원래 장수사가 있던 자리에 용추암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조선 시대 문인들은 계절 따라 피는 꽃을 완상하면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었다. 조선 초기 校書館, 藝文館, 成均館 등에서 봄이면 살구꽃을 구경하면서 술을 마시는 紅桃宴이 있었고 초여름 장미가 피면 그 아래 술을 마시는 薔薇飮을 베풀었으며 한여름에는 푸른 소나무 아래 피서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碧松飮을 열었다. 이와 같은 국가적인 宴會 외에도 조선 시대 문인들은 동료나 벗과 서로 어우러져 꽃구경과 함께 詩를 짓는 모임을 가지는 것이 관례였다. 봄날 진달래나 살구꽃이 피면 꽃구경을 위한 賞花會를 열고 꽃지짐을 만들어 안주로 삼아 술을 마셨다. 여름에는 避暑를 위한 술자리를 열고 연꽃을 완상하였는데, 연꽃의 잎과 줄기를 이용한 술잔을 만들어 술을 마셨다. 또 국화의 계절인 가을에는 9월 9일 重陽節의 풍류를 즐기기 위하여 국화를 감상하는 모임인 賞菊會를 가졌는데 이때에는 菊花煎과 菊花酒가 어우러졌다. 섣달이면 화분에 키운 매화가 피면 벗들을 불러 그 아래에서 술을 마시는 모임을 가졌다.
한국 한문학 연구의 가장 큰 비극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일제강점기라는 특수상황에서 조선후기 학술전통이 왜곡되면서 단절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전통시대 한문학자로부터 대학 강단에서 한문학 전통을 전수받아, 이를 근대적 학문으로 탈바꿈할 시기를 갖지 못하였고, 이후 한문학의 전통이 단절된 이후, 전통시대 문학의 중심이던 한문학은 방기된 채 국문학의 주변에 맴돌았다. 이 때문에 한자가 공용어로서의 자격을 잃은 지 100년이 지난 현재, 연구자들은 한문학의 전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한시 유산 자체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한시 연구는, 한편으로 한문학 전통을 회복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하며, 이를 위해서 '실사구시'의 학문 방법론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현재나 미래를 위하여 한시 유산을 학술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한 연구 방향의 모색이 요구된다. 70년대 이래 민중, 근대, 민족 등의 화두를 중심으로 한 연구 방향에서, 최근 여성, 생태, 대중 등으로
The Chinese literature in a traditional period has a synthetic characteristic covering literature, history, philosophy, and art. The human studies in crisis today need to be developed in association with actual problems through the use of this characteristic. Most of all, the heritage of Chinese literature should not be confined to the literature genre but extend to the various genres in human studies. Secondly, microscopic approach is useful when the history of everyday life is restored through
이 글은 조선시대 한시 번역의 전통을 통하여 새로운 한시 번역의 모델을 탐색하기 위한 한 시도다. 조선시대 한시 번역은 조선 초기 『杜詩諺解』처럼 한시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 있었고, 조선 후기 한글로만 표기된 한시 번역처럼 여성을 중심으로 한 독자들이 감상하기 위한 것이 있었다. 전자는 학자를 대상으로 한 전문 번역의 전형으로 삼을 만하고 후자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번역의 전형으로 삼을 만하다. 학자를 대상으로 한 전문 번역은 정확한 문장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직역을 중심으로 하되, 정확한 의미 전달을 위하여 『두시언해』처럼 단순히 典故를 제시하는 데서 나아가 전고를 구사하여 드러내고자 한 의미를 설명해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이와 함께 작품 전체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풀이해주는 해설을 붙여야 한다. 이렇게 하여야 한시 번역의 결과가 축적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송강 정철은 오언절구를 즐겨 창작하였으며, 그의 오언절구는 역대 비평가들에 의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점에 착안하여 본고에서는 정철 오언절구의 창작방법과 문예미학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정철은 오언절구라는 짧은 형식에 웅혼한 기상을 담아내는 한편, 소탈한 성품을 바탕으로, 소박한 표현으로 주제를 드러내는 古絶句의 전형을 배워 질박하면서도 운치가 있는 작품을 창작하였다. 특히 짧은 오언절구의 틀 안에서 ‘대화’를 수용하여 한시의 새로운 미적 경계를 개척한 공로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이와 더불어 정철은 오언절구의 형식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있고 맑은 소리가 풍기는 당시풍의 수준 높은 작품을 생산하였다는 점에서 조선중기 당시풍의 유행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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