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eong-Sook Kim
Seoul National University · Social Sciences
About the Lab
Professor Kyeong-Sook Kim's research focuses on the legal culture and social dynamics of the Joseon dynasty, particularly examining litigation practices, the role of evidence in judicial processes, and the agency of marginalized groups such as slaves and women. Her work explores how individuals—including nobi (slaves), women, and commoners—navigated the legal system through strategic use of documents, petitions, and collective action, revealing the complexity of legal subjectivity and social hierarchy in pre-modern Korea. She also investigates the procedural mechanisms of official documents and the interplay between law, power, and identity in local governance.
Research Overview
Research Output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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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Papers
15본 논문은 1635년 의령현 결송입안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노비의 소송 전략과 법적 주체성을 검토하였다. 본 소송의 원고는 손광후의 내외자손들로 피고들을 자신들의 도망 노비라고 주장하고, 피고인 비 은월 가족은 원고를 압공위천(壓公爲賤)이라 주장하며 대립하였다. 노비측에서는 장예원에 진고하고 국왕에게 상언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였으나, 소송 진행 과정에서 형추(刑推)까지 행해진 끝에 낙송(落訟)하고 반주(叛主)한 사천(私賤)으로 결론지어졌다. 소송 판결과는 별개로 피고측 노비 가족은 소송 당사자로서 여러 소송 전략을 동원하며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은월의 딸인 비 대춘은 관령을 거역하고 수개월 동안 심문에 응하지 않고 버티며 소송을 지연시켰고, 은월의 사위 강득신은 장예원에 청원서를 올렸고, 강애복은 은월의 일족이라고 칭하며 국왕에게 상언(上言 : 청원서)을 올렸다. 이러한 모습은 조선시대 향촌에서 노비들의 집단적 결속과 소송에서의 주체적인 모습을 잘
이 논문은 조선시대 사송(詞訟)에서 송관의 공문서 전송 방식과 송자(訟者)의역할을 검토하였다. 조선시대 고을 간의 공문서 전송은 공적 영역 내에서 운영되었고 민간 영역과는 구분되어 있었다. 그런데 사송 과정에서 다른 고을에 거주하는 소송상대자및 증인의 소환이나 진술 확보, 또는 타 고을 관청에 소재한 서증(書證)을 검토하기 위한송관의 공문서[移文]는 송자가 직접 전달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소송상대자를 소환하기 위한 이문은 1634~1635년 경상도 의령현 소송에서 거제도로이사한 피고 임환을 소환하고, 1685년 경상도 예천군 소송에서 영천에 사는 피고 이만생(李萬生)을 소환하는 과정에서 확인된다. 1701년(숙종 33)의 전라도 구례현 소송에서는 경기도 용인에 사는 윤성임을 증인으로 소환하기 위해 구례 현감이 용인 현감에 보내는 이문을 소송당사자인 정수명(鄭水命)이 직접 지니고 가서 전달하였다. 조선시대 소송은 소송상대자를 법정에 소환하는 책임이 소송당사자에게 주어졌으며 송관은 소
This article focuses on the reality of the caste system in the Chosŏn dynasty period by examining two litigation cases at Kyurye Hyŏn(1707) and Andong Pu(1722). The litigations processes were centered upon the (counter-)arguments made by plaintiffs and defendants, and the documentary evidences they produced respectively. Also, the officials in the charge of the lawsuits did their juridical judgements based upon the claims of those concerned and their evidential documents. For an example, Kim Pok
1663년 제주목 결송입안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소송의 특성을 검토하였다. 본 소송은 분재기에 奉祀條로 기록된 婢 多奇의 소생비 卜台를 두고 장남 후손과 차남 후손 사이에 발생한 분쟁이다. 송변 과정에서 장남 계파인 피고측은 원고에 대하여 재물 때문에 형제간의 돈목을 해치는 행위를 강조함으로써 소송의 명분을 강조한 반면 차남 계파인 원고측에서는 可考文記 즉 증거문서에 집중함으로써 소송 전략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에 대한 소송관의 판결은 양측의 진술보다는 그들이 제시한 증거문서에 근거하고, 판결에 이르는 논리적 추론 과정 또한 증거문서를 중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소송이 증거문서 중심으로 운영되었음을 의미하며, 증거문서에 집중한 원고측의 전략이 주효하였음을 보여준다. 송변 과정에서의 ‘文記 傳準’ 절차 또한 소송이 증거문서 중심으로 진행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본 소송에서 문기 전준은 원고와 피고가 각각 상대방이 제출한 증거문서의 違端을 검토하고 문서의 진정성 및 증거력 인정 여부를
이 논문은 서인 여성 정조이와 사대부가 여성 이씨의 정소 활동을 통해 조선후기 대표 소송인 산송에서 여성의 행위성이 가지는 특성을 검토하였다. 정조이는 남편의 소송이 체송(滯訟)되는 상황에서 남편을 대신하여 소송을 진행하며 고을 경계를 넘어 100여 리 길을 왕래하고 수십 일의 객지 생활을 감수하는 적극적인 행위성을 보여준다. 미망인 이씨는 시족의 소송이 격송(激訟)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참여하였다. 특히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되는 상한과의 산송에서 친소(親訴)의 행위성을 보여준다. 이들의 소송 참여 과정과 활동은 남편과 시족 산송이 체송, 격송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의도적 행위였음을 보여준다. 정소 문서의 의사 표현 방식 또한 정조이는 감성적 호소와 함께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효와 열의 실현을 위한 행위임을 강조하였다. 이씨는 위선지심(爲先之心)에서 정소했음을 내세움으로써 효의 실현을 위해 여성의 삼종지도를 포기했음을 강조하였다. 당대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대표적인 삼
본 논문은 문화 콘텐츠 산업의 성공적인 사례로 여겨지는 프랑스의 지방 축제 문화 콘텐츠에 대해 조사하 고 우리나라의 적용 가능성 및 관련 문제에 대해 진단하고자 한다. 또한 본 연구에서는 스토리텔링의 구조와 감성적 요인을 의사소통 및 역사적, 문화적 자원의 도구로서 문화 기호학 측면에서 분석한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과 역사, 문화, 예술, 양조장 체험을 기반으로 한 패키지 관광 상품같이 역사적 자원과 문화적 자원을 연결 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둘째, 스토리텔링 전략이 요구된다. 보르도 와인의 위상은 오랜 역사적 배경과 자연의 혜택에 서 시작된 유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셋째, 소통과 경험을 지향하는 전략에 관한 것이다. 넷째, 재미와 환상을 유도 하는 전략이다. 축제는 놀이의 한 형태이며 놀이는 문화 그 자체이다. 가장 개인적인 행복 지수의 증가를 허용하는 지역축제의 활성화는 가장 중요한 가치와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유럽 축제의 사례는 과거
이 논문은 16-17세기 유기아 정책의 방향과 민간 현장에서 유기아 수양의 사례를 검토함으로써 국가적차원의 惠恤 규범이 민간에서 轉用되는 양상을 검토하였다. 전통시대 동아시아 왕조에서는 ‘惠恤’의 차원에서 유기아 구제 정책을 시행하였다. 조선 왕조는 『경국대전』 예전 혜휼조에서 관련 규정을 마련하고 국가 주도의 정책을 지향했다. 개인의 수양과 사역은 10세 연한을 둠으로써 고려 이래 민간의 수양을 통한 사역을 제한하고 국가 기관에서 구제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국가 주도의 정책은 민간에서 유기아 구제를 기피하는 역현상을 불러왔다. 결국 1547년(명종 2) 수교를 통해 유기아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혜휼의 명분하에 연한 제한을 사실상 폐지하고 민간 수양을 전면적으로허용하는 정책적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민간에서는 개정된 유기아 수양법에 근거하여 유기아 수양을 통해 노비를 확보하였고, 국가의혜휼 규범은 민간의 수양이 행해지는 현장에서 노비를 확보하는 통로로 전용되었다. 여
본고에서는 구례현과 곡성현의 다섯 결송입안을 중심으로 갑술양안과 경자양안 사이에 민간의 전답 확보를 위한 이해 충돌의 현장과 소송 전략을 검토하였다. 분쟁은 갑술양안에 鄭君才의 奴 順方 名字로 현록되어 있는 菜字畓과 爲字畓을 대상으로 정군재의 후손들 간의 소송, 후손과 향촌민의 소송, 후손과 타지역민과의 소송 등이 서로 얽혀 중첩적인 갈등 구조를 형성하며 수십 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두 소송 모두 쟁점이 자식 없이 사망한 노비의 己物로 집중된 점은 주목되는 현상이다. 갑술양전과 경자양전 사이에 양안상의 전답주와 時執者가 분리된 상황에서 무후노비의 기물이 전답 확보를 위한 명분의 하나로 작용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구례현의 아전 鄭時泰는 두 소송의 중심에서 계속적으로 쟁단을 일으키며 소송이 장기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파악된다. 그는 관속으로서의 이점을 활용하면서 起訟 시점, 문서위조, 仍執 등 각종 방법들을 동원하며 소송을 이끌어갔다. 특히 소송
본 연구는 17-18세기초 영월신씨(寧越辛氏) 집안의 3대에 걸친 여성들의 청원・소송 활동의 특성을 검토하고, 신정수(辛鼎受) 처 서산유씨(瑞山柳 氏)의 사례를 중심으로 조선후기 사대부가 여성의 법적 행위와 의사 표현 방식을 검토하였다. 신정수 처 유씨는 사대부가의 여성들이 선호한 노비를 통한 대소(代訴)・대송(代訟)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친소(親訴)・친송(親訟) 활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남편의 족인 신성중과의 산송, 노비 추쇄 를 위한 상언・격쟁 추진, 입후 청원 등 가호 보존, 가계 계승 및 재산권 수호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전개되었다. 유씨의 친소・친송 활동에서 나타나는 특성은 첫째, 사대부가 여성으로서 유씨는 조선시대 법 규정에 근거하여 친소・친송의 법적 권한이 보장되어 있었고, 이러한 법적 권리를 행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노비 를 통한 대소・대송이 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친소・친송을 추진한 것은 선택의 결과로 이해된다. 둘째, 유씨는 법적 권리를 행사
이 논문은 17세기 신진 관료 박태보의 유배 생활을 일상의 단절과 소통이라는 두 측면에서 재구성하였다. 박태보는 유배지에서 이전의 일상과는 단절되어 고립된 일상을 새롭게 만들어 갔다. 선천 부사 및 승인 등 새로운 인물들과 교유 관계를 형성하여 대화 상대를 찾기 힘든 유배지에서 지적 욕구를 해소하고, 선천부 주변의 승경들을 유람하며 한인(閑人)의 여유로운 일상을 보냈다. 한편으로는 도성의 가족 친지들과 가서를 왕래하며 이전의 일상과 지속적으로 접속하고 소통하였다. 선천(宣川)이 의주대로 상에 위치하는 지리적 특성상 빈번하게 왕래하는 관의 파발 편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가서는 안부, 행실, 학문, 경조사 및 가사(家事) 등에 대한 주제에 집중되었다. 특히 부친과 외삼촌은 신진 관료인 그에게 유배 생활이 시련의 기간임을 강조하며 행실을 닦고 학문을 연마하여 성장의 기회로 삼기를 당부하고 있다. 박태보의 유배 생활은 유배지에서의 단절되고 고립된 일상뿐만 아니라 이전의 일상과의 자유로운
이 논문은 정묘호란 직후 조선과 후금 사이의 외교적 긴장 속에 회답사(回答使)로 활동한 이란(李灤)의 행적을 중심으로, 그를 둘러싼 기록의 다층성과 기억의 전승 양상을 검토하였다. 본고에서는 이란에 관한 기록을 국가 기록, 가전(家傳) 기록, 그리고 야사와 문집 등 개인기록의 세 층위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인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국가 기록은 그를 외교적 실책을 저지른 인물로 규정하며, 그의 처형을 후금과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정치적 조치이자 일벌백계의 사례로 재현하였다. 가전 기록에서는 역관과의 불화와 모함이라는 개인적서사를 도입하여 억울한 희생자로 재구성하였다. 『연려실기술』과 『조야집요』 등 사찬 역사서와 문집은 국가 기록의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세밀한 정황을 덧붙이거나, 지식인들 사이의 서로 다른 기억을 공유하며 전승하였다. 특히 18세기 『이재난고』에서는 서로 다른 층위로 전승되는 기억들을 종합하여 새로운 층위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란의 사례는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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