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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Jeong

Hanyang University · Computer Science

About the Lab

Professor Min Jeong'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the cultural and intellectual history of Joseon Dynasty Korea, with a particular focus on literary practices, scholarly methodologies, and cross-cultural exchanges in the 17th to 19th centuries. The lab explores how intellectual elites engaged with texts, cultivated aesthetic and horticultural pursuits like flower gardening and *suh-ho* (West Lake) imagery, and developed systematic approaches to learning and writing. It also investigates institutionalized pedagogy, as seen in the case study of Sir Kim Jang-joon’s discipleship model, and the diplomatic and cultural implications of shipwrecked foreigners in Joseon’s southern maritime regions. The lab emphasizes the interplay between material culture, textual practice, and intellectual networks in shaping early modern Korean thought.

Joseon intellectual historytextual practicehorticultural culturescholarly pedagogycross-cultural exchange

Research Overview

Papers
57
Total Citations
366
Papers (5y)
10
Primary Field
Computer Science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Publications per year (5y)
10total
2017
2020
2021
2024
2025
Citations per year (5y)
14total
20172020202120242025

Selected Papers

15
1
Article|39 citations·2005
18, 19세기 문인지식인층의 원예 취미
정민

18세기 중반 이후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원예문화가 갑작스레 성행하였다. 화훼 재배와 정원 경영이 그 어느 때 보다 활발해지고, 이는 이 시기 문인지식인층의 취향을 특징지워 주는 일종의 문화현상이었다. 꽃에 미쳐 재배에 열을 올리고, 저마다 정원을 꾸미며, 관련 자료를 수집 정리하는 것이 이 시기 문인들의 일반화된 취미였다. 갑작스레 원예의 열풍이 불자, 화훼 유통이 활성화 되었고 분재로 생업을 삼는 전문 직업인이 출현하였다. 국화는 수많은 품종이 재배되었고, 수선화는 아예 중국에서 다투어 구근을 들여와 나중에는 국법으로 금지해야 할 정도였다. 원예기술이 확산되면서 화훼재배에 관한 저술도 활발히 창작되었고, 심지어 종이나 밀랍으로 꽃을 만드는 조화(造花)도 문인의 아취로 여겨졌다. 이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이러한 변화는 모두 18세기적 문화 패턴의 변화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는 사물에 대한 관심의 증대, 중국 일본과의 문화 교류 확대와 도시문화의 확산이 가져온 일종의 웰빙 현상이

2
Article|32 citations·2002
16·7세기 조선 문인지식인층의 江南熱과 西湖圖
정민

16th∼17th Century Chosun Literary Intellectual's Enthusiasm over 'Kang-nam' in China and Its Relation with Chosun Painting 'Suh-ho'西湖

5
Article|21 citations·2003
『東?餘談』에 실린 李彦?의 필담 자료와 그 의미
정민

About the written materials of Lee, Eon-Jin in Dongsa Yeudam(東 餘談)

6
Article|19 citations·2005
고전 독서방법론의 양상과 층위
정민

이 논문은 조선시대 지식인의 여러 글을 통해 독서방법론의 여러 양상과 층위를 검토한 것이다. 고전 독서방법론에는 매우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 우리가 생각하듯 맹목적으로 다독만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소리를 내서 읽는 다독만 하더라도 이 책 저 책 마구잡이로 읽는 다독이 아니라 기본 경전에 대한 반복적 독서를 통해 그 내용을 완전히 자기화 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또한 소리를 통해 원전의 문장이 지닌 기운을 그대로 흡수하고자 했다.여기서 좀더 진전되어, 독서 행위의 과정에서 정보를 계열화하는 독서가 적극 권장되었다. 잡다한 정보 속에서 가치의 우열을 판단하고, 이를 체계화 하는 공부가 그것인데, 이 경우는 읽기와 쓰기가 연속선상에서 이루어진다는 이점이 있다.의문을 품는 독서는 토론과 논쟁 방식의 독서방법론이다.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끊임없이 메모하고, 그 의문이 해결될 때까지 질문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지식을 투철하게 하는 방식이다. 문제의식을 심화시켜주고, 문제 해결 능력을 향상시

7
Article|18 citations·2011
다산의 강진 강학과 제자 교학방식
정민

다산은 1801년 강진으로 유배와서 1818년 두릉으로 돌아갈 때까지 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또한 이들을 훈련시켜 500권이 넘는 엄청난 저작들을 쏟아냈다. 다산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학문의 불모지였던 강진의 제자들을 최고의 학술집단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을까 다산은 다양한 방식과 효율적인 프로그램으로 제자들을 훈련시켰다. 본고에서는 다산의 제자 교학방식을 단계별 전공별 맞춤형 실전형 토론형 집체형 등 여섯 범주로 나누어 살폈다. 다산은 제자들의 단계와 수준에 따라 효과적인 학습의 로드맵을 제시하고 제자의 개성을 고려하여 문예와 학술로 구분하여 전공을 정해주었다. 또한 성격이나 신분을 따져 각자에게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이와 아울러 구체적인 작업 매뉴얼을 제시하여 실전을 연습하게 하고 성취는 고무시키고 태만은 매섭게 야단쳤다. 일상적인 토론을 통해 문제의식을 예각화하고 작업의 핵심가치를 장악하게 했다. 그리고는 조직적인 시스템을 갖추어 집체 작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가지

8
Article|16 citations·2009
다산의 「해방고(海防考)」에 나타난 중국 표선(漂船) 처리문제
정민
동아시아문화연구

다산 정약용의『사대고례(事大考例)』중 「해방고(海防考)」는 18, 19세기 조선 서남 해안에 표착한 중국 표류선의 처리 절차와 처리 방식의 변화 과정을 사례별로 정리한 저술이다. 당시 서남해의 도서 지역에 빈번하게 출몰한 중국 표류선의 표류민은 여러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들 표류민은 시기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지만, 대개는 일정한 매뉴얼에 따라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예전에는 표류민을 북경까지 압송하였으나, 중국 정부의 해금(海禁) 정책이 풀리면서 배가 온전할 경우 수로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표류선의 물품이나 철물(鐵物) 등은 가격으로 쳐서 은으로 배상해 주었다. 표류민의 인도도 뒤로 오면서 봉성(鳳城)까지만 압부(押付)하는 것으로 바뀌는 등 조금씩 완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워낙 표류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밖에 일본을 제외한 유구(琉球)나 기타 외국인의 경우도 특별한 예외가 없는 한 육로를 통해 북경으로 압송되는 절차를 밟았다. 이렇듯 당시 조선과 중국

9
Article|14 citations·2009
표류선, 청하지 않은 손님 -외국 선박의 조선 표류 관련기록 探討-
정민

본 논문은 조선 후기 제주도와 서남해 연안에 표착한 외국 표류선에 대한 기록을 살펴본 것이다. 중국 상선에 관한 기록이 가장 많고, 드물게 일본과 외국 선박에 관한 기록도 있다. 이들 자료는 여러 문집에 산재해 있어, 종합하여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자료 검토 결과 모두 17건의 기록을 수습했고, 이를 통해 표류와 관련한 처리 절차 및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산 정약용은 「海防考」과 「漂船問情」이란 글을 통해 조선 정부의 표류선 처리에 관한 매뉴얼을 남겼다. 그의 기록 속에도 모두 21건에 달하는 표류 관련 내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이들 기록들은 당시 중국배의 표류가 서남해 연안에서 얼마나 빈번하게 발생하였으며, 이 문제의 처리를 당시 연해지역 지방민과 관리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했는 지를 잘 보여준다. 이들 외국선박 표류관련 기록들은 초기에는 단순한 외국인에 대한 호기심과 과시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점차 외국에 대한 정보수집과 해당 지역 정치 동

10
Article|14 citations·2012
19세기 동아시아의 慕蘇 열풍
정민

이 글은 19세기 한중 문화교류 과정에서 발생한 한중 지식인의 慕蘇 열풍를 검토하고, 20세기 초 일본으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을 소개한 내용이다. 어째서 동아시아에 갑자기 소동파 열풍이 불게 되었을까? 동아시아 지식인 사회에 불어닥친 소동파 열풍이란 특이 현상을 당대 지식인의 내면 의식과 관련지어 살펴 보았다. 청나라 옹방강에게서 시작된 소동파 열풍이 조선의 김정희와 신위를 통해 조선으로전해지면서 소동파의 생일인 12월 19일에 한 자리에 모여 제사를 지내는 동파제 또는배소회 모임이 이루어졌다. 이 흐름은 20세기 초 일본으로까지 확산되어 범 아시아적현상이 되었다. 옹방강은 몇 차례 우연히 소동파 친필과 송나라 판본의 소동파 시 주석집의 구득을계기로 둘 사이에 前定의 인연이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후 옹방강은 자신의 동료와제자들에게 소동파의 생일날 제사를 함께 올리는 동파제를 해마다 개최하여 연경학계에서 소동파 붐을 일으켰다. 이러한 소동파 열풍은 청조 학계의 한학 송학 절충론과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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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13 citations·2005
새 발굴 의 자료적 가치-附: 원문 및 역주-
정민

연암집을 간행했던 박영철이 기증한 서울대 박물관 소장의 연암선생서간첩(燕巖先生書簡帖)에는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편지 30통이 실려 있다. 60세와 61세 때 안의와 면천에서 벼슬 살면서 집으로 보낸 편지가 대부분이다. 이 편지 글 속에는 문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연암의 인간적 면모가 두드러진다. 직접 고추장을 담가 집에 보내기도 하고, 자식의 잘못을 나무라거나 손주의 출생을 기뻐하는 소탈한 모습이 담겨 있다. 이밖에 지방관의 고충, 질병의 고통을 호소하거나, 집안의 대소사에 대한 염려도 보인다. 이밖에 왕명에 따라 <서이방익사(書李邦翼事)>와 <형암행장(炯菴行狀)> 등의 글을 짓던 전후의 정황도 자세히 살펴볼 수가 있다. 아동기년(我東紀秊) 2권과 박씨가훈(朴氏家訓) 1권을 저술한 내용도 있다. 또 박제가 유득공 등에 대한 인물평과 연암 주변 인물에 대한 이런 저런 정보와도 접할 수 있다. 서간문이 보여주는 문예미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자료가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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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12 citations·2008
尤庵 先生 134수 管窺
정민

본 논문은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선생의 <수미음(首尾吟)> 134수 연작 속에 담긴 우암의 학문 태도와 의리 정신을 살피는 데 목적이 있다. <수미음>은 분량만으로도 우암 전체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명실공히 우암 한시의 대표작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도학시의 새로운 기축(機軸)을 열어 보여 이후 제가들의 차운작을 낳았다. 134수 연작은 우암 사유의 전체상을 한번에 드러내는 총체성을 갖추고 있다. 우암은 음풍영월류의 시심을 혐오했다. 정서를 위주로 하는 시학관점에서 보면 시심이 틈입할 여지 없는 몰취미에 가깝다. 그렇다고 그가 시 창작에 등한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특별히 소옹의 시를 차운한 것도 흥미롭다. 그는 소옹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만년에 유배지에서 그의 시와 새롭게 만나 몰입하였다. 이 작품 외에도 소옹의 시를 차운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소옹이 처음 선보인 수미음체는 도학에 바탕을 둔 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적 이상을 드러내려는 목적에서 자주 창

13
Article|12 citations·2002
沆瀣 洪吉周의 독서론과 문장론
정민
14
Article|11 citations·2012
다산 逸文을 통해본 승려와의 교유와 강학
정민

다산이 강진 유배 기간 중 승려들을 위해 써준 문집에 빠진 글의 목록을 제시하고, 이 가운데 서간문을 중심으로 다산과 승려들과의 교유 및 강학의 내용을 살핀 논문이다. 문집에는 승려와 관련된 글이 5편 뿐인데, 실제로 각종 기록에 실린 것을 확인하면 58편에 100수가 넘는 많은 글이 남아 있다. 이 글에서는 그 자세한 목록과 출전을 상세하게 제시했다. 이는 다산과 불승과의 교유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범위가 넓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들 자료는 유배 기간 중 다산과 불교와의 관련 양상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다산이 승려들에게 준 글은 교유와 교육의 두 갈래로 대별된다. 완호 윤우, 은봉 두운, 아암 혜장 등은 벗으로 교유를 나눈 상대다. 제자로는 수룡 색성, 기어 자굉, 철경 응언, 침교 법훈, 호의 시오, 초의 의순, 철선 혜즙, 풍계 현정 등의 존재가 확인된다. 다산은 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가의 경전으로 이들을 강학하는 한편,

15
Article|11 citations·2011
이언진과 일본문사의 왕세정 관련 필담
정민
동아시아문화연구

이 논문은 1763년 일본 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갔던 이언진(1740-1766)이 일본 문사들과 나눈 필담을 분석한 것이다. 특별히 명대의 문인인 왕세정과 관련된 문답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1763년 통신사로 일본에 가기 전 이언진의 위상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지은 시와 일본 문사와의 필담을 통해 통신사 일행 중 그의 위상은 뒤로 갈수록 돋보이게 되었다. 일본 문사들은 이언진 보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여타 문인보다 그를 더 높게 평가했다.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필담 자료 중 이언진과 주고 받은 대화가 기록된 것은 모두 6종이 남아 있다. 구정남명의 『앙앙여향』, 오전상재의 『양호여화』, 궁뢰용문의 『동사여담』, 금정송암의 『송암필담, 내산속재의 『속재탐승초』, 남천금계의 『금계잡화』 등이 그것이다. 이들의 대화 속에 거의 예외 없이 나타나는 왕세정을 둘러싼 논의가 흥미롭다. 왕세정은 당시 조선 문인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데 반해, 일본에서 그에 대한

Research Areas

Information SystemsSociology and Political SciencePhilosophyCultural StudiesSafety ResearchPathology and Forensic Medicine

Dive deeper into Min Jeong's research on Nub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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