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Gihun Lee

Yonsei University · Arts and Humanities

About the Lab

Professor Gihun Lee'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the intersection of cultural history, media studies, and collective memory in modern Korea, with a particular focus on how nationalist movements and historical narratives were constructed and disseminated through print media, education, and symbolic practices. The lab explores the role of mass media—especially children's magazines and revolutionary texts— in shaping modern subjectivity, civic consciousness, and national identity during the colonial and post-colonial periods. Key research directions include the formation of national myths (such as the 'submarine turtle ship'), the role of youth and education in nationalist mobilization, and the material and symbolic dimensions of social movements like the 1919 March 1st Movement.

national memorycolonial Koreamedia and nationalismhistorical mythmakingyouth and education

Research Overview

Papers
26
Total Citations
202
Papers (5y)
7
Primary Field
Arts and Humanities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Publications per year (5y)
7total
2021
2022
2023
2024
2026
Citations per year (5y)
12total
20212022202320242026

Selected Papers

15
1
Article|104 citations·2017
Pseudomonas aeruginosa Biofilm, a Programmed Bacterial Life for Fitness
이기훈, 윤상선

A biofilm is a community of microbes that typically inhabit on surfaces and are encased in an extracellular matrix. Biofilms display very dissimilar characteristics to their planktonic counterparts. Biofilms are ubiquitous in the environment and influence our lives tremendously in both positive and negative ways. Pseudomonas aeruginosa is a bacterium known to produce robust biofilms. P. aeruginosa biofilms cause severe problems in immunocompromised patients, including those with cystic fibrosis

2
Article|27 citations·2014
Protective Role of Gut Commensal Microbes against Intestinal Infections
윤미영, 이기훈, 윤상선

The human gastrointestinal tract is colonized by multitudesof microorganisms that exert beneficial effects on humanhealth. Mounting evidence suggests that intestinal microbiotacontributes to host resistance against enteropathogenicbacterial infection. However, molecular details that accountfor such an important role has just begun to be understood. The commensal microbes in the intestine regulate gut homeostasisthrough activating the development of host innateimmunity and producing molecules wit

3
Article|14 citations·2019
3·1운동과 공화주의―중첩, 응축, 비약
이기훈

1919년 3월을 전후한 시기에 조선인들이 겪은 것은 엄청난 시간들의 응축과 중첩, 그리고 사회의 비약적인 변화였다. 거대하고 단일한 한 사건이 이후의 100년을 결정했다기보다는, 100년의 시간을 압축한 듯한 변화와 도약이 이 시기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3․1 운동 시기 자체가 고도의 중첩과 응축이 진행된 시간이며, 이 응축을 가능하게 하고 사회를 비약시킨 것은 운동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압축된 시간들은 이질적인 모습들을 드러내고 교차하면서도 공동의 행동, 즉 만세 시위를 통해 폭발적인 속도로 한 방향을 향해 진행되었다. 압축을 수행했던 것은 ‘만세’의 경험이었으니, 만세는 ‘민족’이라는 정치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하는 수단이었다. 33인이나 학생지도부를 비롯한 3․1 운동 초기 주도층은 대중의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을 만들어놓지는 않았다. “만세”는 자율적으로 확산되었으며, 그 속에서 정치적 단위로서 민족이 독립해야 한다는 의식은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만

4
Article|10 citations·2017
발명왕 이순신과 잠수함이 된 거북선 ―민족주의 신화의 형성과 확산
이기훈

기억의 독점은 과장과 왜곡을 낳는다. 특히 ‘민족’ 이야기라는 거대서사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이를 주도하는 권력과 지식인들은 ‘민족’ 혹은 ‘국가’의식의 창출을 위해 구미에 맞도록‘역사’를 활용한다. 거북선이 잠수함이라는 신화는 3.1 운동 직후 한국의 민족주의가 한국인들의 문화적 역량을 입증해 보이려는 과정에서 창출되었다. 최초의 시작은 ‘철갑선’이라고 해야 할 것을 ‘철갑잠항정’이라고 몇 글자 더해 번역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매체와 매체를 건너 전하면서, 오역은 확신에 찬 민족주의적 감성과 결합했다. 학술적인 검증은 물론이고 상식적인 의문조차 거치지 않은 채, 거북선-잠수함론은 의심할 수 없는 ‘역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제 잠수함 거북선의 ‘역사’가 생생하게 날조되었다. 자연스럽게 이순신은 위대한 과학 영웅으로 재조명되었고, 발명 천재 이순신의 일화들이 스스럼없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창조된 신화는 매체와 지식인들의 상호 인용을 통해 확산되었다. 『동아일보』를 필두로 한

5
Article|7 citations·2018
3‧1 운동과 깃발
이기훈

사회운동의 경험은 다양한 미디어와 결합하여 상징체계를 구성하고 대중들에게 새로운 시대와 주체의 감각을 부여한다. 3‧1 운동은 근대 한국의 미디어 체계에 중대한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었다. 3‧1 운동 기간 동안 다양한 미디어들이 근대성과 전근대성, 개인과 공동체를 매개하는 중층적인 미디어로 기능했다. 운동의 대표적인 미디어는 독립선언서와 깃발이었다. 그런데 이 두 미디어의 제작과 배포는 일부 겹치지만 분명히 다른 네트워크 속에서 작동했다. 독립선언서 배포의 네트워크는 기독교, 천도교 혹은 학생들의 연계처럼 근대적인 정치 이념과 균일한 특징으로 한다. 이들 사이에서 유포되는 매체들도 「독립선언서」나 『독립신문』처럼 동질적이고 근대화된 인쇄출판물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실제 시위 운동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네트워크가 작동해야 한다. 깃발과 격문은 이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등장하는 매체들이다. 깃발들은 지역의 구체적인 상황과 민중의 현실을 반영한 시위의 도구였다. 만세가 지역

6
Article|7 citations·2016
1920년대 『어린이』지 독자 공동체의 형성과 변화
이기훈

신문․잡지의 독자참여는 근대 지식과 감성이 실제 대중들 사이에서 어떻게 확산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다. 이 글은 『어린이』지의 독자참여 양상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분석함으로써 소년들이 근대적, 민족(주의)적 지식과 감성을 어떻게 수용하고 공감하는지, 또 그 생각이 성장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했다. 잡지 『어린이』는 1920년대 10만 이상의 가장 충성도 높고 열렬한 독자층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은 강력한 독자공동체를 형성했다. 독자들은 『어린이』지면을 통해 민족적 공동체 의식을 확인했고, 근대적 개인으로서의 규율을 습득했다. 이런 면에서는 방정환을 중심으로 한 『어린이』 편집진들의 계몽적 기획은 일단 성공을 거두었지만, 소년독자들은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재구성하면서 ‘선생님’층, 즉 편집진들의 의도와 다른 관계망의 구축을 모색했다. 교육기회와 사회적 소통이 부족했던 식민지 소년들에게, 소년문예활동은 새로운 세대적 도전의 기회였다. 1920~30년대 열렬한 소년문예

7
Article|7 citations·2018
근대 신화의 역설―고산자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의 경우
이기훈

대동여지도는 19세기 조선의 지리학과 지도 제작 기술이 나은 훌륭한 문화유산이고, 이를 만든 김정호는 뛰어난 지리학자요 지도 제작자다. 그러나 그가 전국을 몇 번씩 직접 답사했고 백두산에 세 번 올랐다는 답사설, 대원군이 탄압해 목숨을 잃었다는 옥사설은 모두 근거 없는 신화일 뿐이다. 이 논문에서는 이런 신화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확장되었으며, 지금까지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지 추적했다. 최남선이 단초를 제공한 김정호 신화는, 신영철과 최진순이 소년 잡지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로 만들었다. 최남선은 김정호는 일본의 이노우 타다타카와 비견할 만한, 아니 더 나은 인물로 만들었고, 이후 신영철과 최진순이 소녀 잡지에서 구체적인 이야기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부정확한 정보와 과장, 날조가 뒤섞이며 ‘위인’으로서 일대기가 창작되었다. 시대의 문화적 소산인 대동여지도는 부정되고, ‘위인’ 김정호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적 문화유산 대동여지도를 만든다는 신화가 등장했다. 이 신화 속에서 조선은

8
Article|6 citations·2022
능력주의의 식민지적 기원―조선일보 독자란에 나타난 입신주의
이기훈

이 글은 오늘날 만연한 능력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식민지 시기 대중의 의식 속에서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1936년 『조선일보』에서 개설한 <독자 사교실>의 사연들을 여러 항목으로 분류하고 직업과 진로, 학력, 수험, 진로 등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당대 독자 대중의 의식을 분석했다. 사회의 변화에 대한 진보적 희망이 좌절된 상황에서 권력과 자본이 제시한 성공의 길에 엘리트가 되기를 열망하는 청년들이 몰려 들었다. 그러나 실제 성공의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조선인들이 바늘구멍 같은 자격시험들을 통과하기는 극히 어려웠다. 이들은 의식적으로 차별의 현실을 외면하고, <노력-성공-입신출세>의 길을 고집했지만, 실제로는 고립된 청년들이 꿈꾸던 현실의 탈출구는 없었다. 이 시기 다른 청년들이 보여주는 무모할 정도로 집요한 ‘문예’에 대한 열망 또한 이 고립된 욕망과 동전의 반대면 같은 것이었다. 학력과 시험 제도로 포장하여 제시된 성공의 사례들은 실제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었다

9
Article|5 citations·2017
1920년대 『동아일보』의 중국 인식 – 계몽과 혁명,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 시각의 부침과 교차
이기훈

1920년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중국의 혁명은 제국주의 인식 체계가 구축한 식민주의적 세계관을 일거에 전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중국은 현재의 동아시아 정치 지형을 결정할 분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따라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사태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설과 연재 기사들이 신문의 지면을 차지했다. 당시 가장 유력한 매체였던 『동아일보』에는 사회주의 혁명의 관점에서 일제가 창출한 식민주의적 중국관까지, 중국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중국과 조선을 바로 동일시하는 시각이었다. 1920년대 초반 동아일보의 사설들은 중국과 조선이 거의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해결책도 같다고 파악했다. 중국의 인민과 청년들을 훈계하는 듯 계몽적인 태도는 이런 직접적인 동일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20년대 중반 중국의 혁명이 진전되고 여기에 대한 인식의 폭이 확대되면서, 중국과 조선의

10
Article|5 citations·2022
‘언니’의 곡절―한국의 근대 가족과 여자 어린이 노동
이기훈

일제하에서 1970년대까지 한국의 어린이들의 모습을 포착한 수많은 사진과 그림 속에서 유독 동생을 돌보고 있는 '언니'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 이미지들은 여자 어린이, 특히 ‘언니’들이 가족의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맡아 급격히 자본주의화되는 근대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생존과 성장을 감당하는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이 논문에서는 1930년대 현지 조사를 분석하여, 여자 어린이들에게 실질적으로 육아와 가사 노동이 집중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어머니들이 직접 생산노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 1960년대 농촌 조사를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이런 현상이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었으며, 여자 어린이 노동을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가족 기억의 기제가 존재했음을 보였다. 큰 아들을 비롯한 남아들에게 교육을 집중하고, 반면 이를 위해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언니와 여아들에게 노동을 집중시켜 확보하는 것이 근대 한국의 가족전략이었던 것이다. 이 가족전략은 언니의 헌신을 당연한 의무로 여기

11
Article|4 citations·2018
1920년대 『어린이』지의 민족공간 인식 - ‘조선’의 재발견과 민족 정체성 -
이기훈
https://hanguksa.org/front/hanguksa/original

1920년대 『어린이』 지에는 민족 공간으로서 '조선’에 대한 많은 지식과 감성적 정보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과 공감의 감각을 형성하기 위한 기획의 일환이었다. ‘조선’이라는 공간에 대한 지식과 감각은, 단순히 ‘조선인’들의 삶의 조건을 이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공간의 특성이 조선민족의 민족성 자체라고 해석하게 되자, 조선을 ‘낙토’로 묘사하거나 맹호와 같은 적극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시도들이 늘어났다. 조선은 단순히 생활 공간이 아니라 조국, 혹은 모국으로서 정체성과 소속감을 부여하는 공간이어야 했다. 근대 잡지로서 『어린이』는 다양한 지면의 배치와 독자와 상호관계를 통해 또 직접 연결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공간으로서 조선과 나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장치들이 동원되었고, 민족적 정체성과 공감의 폭이 확장되기도 했다. 특히 사투리나 지역적 특징을 그대로 살리면서 동일한 지면에 배치하여 다양성을 민족적 정체성과 연결시키

12
Article|3 citations·2019
만세 현장의 미디어와 상징체계, 3․1운동의 깃발과 선언서 - 판결문 자료를 중심으로
이기훈
역사문제연구

이 연구는 3.1 운동 만세 시위 현장에서 미디어와 상징의 체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유형화하고 그 변화의 추이를 계량화하여 파악하였다. 선언서와 깃발을 주요한 미디어로 보고 그 다소를 기준으로 선언서 주도(근대매체)형, 깃발 주도(동원-참여)형, 미디어소수(상징)형, 미디어 부재형으로 시위를 구분했다. 각 유형별 시위의 추세는 도시 중심의 근대적 시위에서 농촌의 공동체적이고 공세적인 시위로 변화해 간다는 우리의 일반적인 견해와 달리, 모든 유형의 만세 시위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3.1운동의 시위가 우리가 관행적으로 상상하던 것보다는 덜 근대적이지만, 전통적 공동체 시위로만 규정할 수 없다는 복합적 성격을 보여준다. 3.1운동에서 미디어 양상의 복합성은, 지식인과 민중들이 함께 투쟁하는 경험을 통해 이전의 분리를 벗어나 새로운 계몽과 대중적 운동으로 결합할 수 있는 근거를 보여준다. 1920년대 연설회나 강연회는 만세 시위의 연장된 공간이었으며, 청년 지식인

13
Article|1 citations·2019
연희전문학교의 3・1운동
이기훈
연세의사학

In 1918 and 1919, the Yonhee district of Goyang County, on the outskirts of Kyeongseong (Joseon’s capital) was an ideal “new Hawaii.” The place was the site of rebellious resistance toward imperialism. It was also where the young intellectuals of the Joseon Dynasty learned of the changing outside worlds and gained knowledge and ideologies that connected the situation on the peninsula to the historic transition on a global scale. The knowledge of change and the principles of national self-determi

15
Article|1 citations·2021
1970년대 전반 연세대학교 학생운동의 전개와 성격
이기훈

3선 개헌 이후 박정희 정권은 영구집권을 모색하며 사회적 저항을 약화시키는 것에 주력하고 있었다. 대학과 학생운동을 통제하기 위해 정권은 군사교육인 교련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현역 군인을 교관으로 배치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학생운동은 민주화의 보루로서 학원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교련반대 투쟁을 맹렬히 전개했다. 1970년 말부터 1971년 연세대 학생운동도 다른 대학 운동과 연대하여 대규모 집회와 시위, 단식농성을 전개하며 교련반대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정권이 위수령을 발동하여 대학을 휴교시키고 학생운동 주도자들을 강제 입영시키며 저항을 무산시켰다. 이후 1972년 10월 유신체제가 성립하자 학생운동은 각 대학을 연대하여 조직적인 반유신 운동을 시도하였는데, 1974년 민청학련이 대표적인 사례다. 연세대 학생들도 민청학련의 조직과 활동에 참여하다 구속되었다. 연세대학은 1974년 하반기부터 교수, 학생과 대학 당국이 모두 참여하는 대학 행정 개혁을 추진하여 성과를 거두었다.

Research Areas

History and Philosophy of ScienceSociology and Political Science

Dive deeper into Gihun Lee's research on Nubint

Open this lab's papers in the app to read with AI, summarize, and cite in your 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