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e-Keong Lee
Yonsei University · Arts and Humanities
About the Lab
Professor Jae-Keong Lee'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medieval and Renaissance philosophy, with a particular focus on the intersections of Aristotelian thought, Christian theology, and philosophical hermeneutics. The lab explores key debates surrounding the eternity of the world, the immortality of the soul,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faith and reason in thinkers such as Averroes, Thomas Aquinas, and Pietro Pomponazzi. Central to the lab’s work is the critical examination of dual-truth theories and the philosophical foundations of religious doctrine in the context of scholastic thought.
Research Overview
Research Output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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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Papers
1513-4세기 파리 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난 논쟁거리 가운데 세계의 영원성 문제는 운동의 절대적인 시작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는 시작이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 대한 해석에서 생겨났다. 만일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들을 받아들인다면 세계가 영원하다는 결론이 철학적으로 타당하게 도출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무로부터의 창조’를 의심할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이는 한, 세계의 영원성을 부정해야 한다. 이 글은 13세기 대표적인 라틴 아베로에스주의자로 분류되는 보에티우스 다치아가 자신의 저서『세계의 영원성에 대하여』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에 주목한다. 기실 그 입장을 두고서 신앙의 영역과 철학의 영역 각각에서 서로 모순되는 결론을 모두 참이라고 주장하는 이중진리론의 옹호자로 보는 해석과 그렇지 않다고 보는 해석이 대립한다. 두 가지 해석은 서로 상반되지만 이중진리론을 이해하는 방식은 동일하다. 필자는 그 방식과는 다른 이해방식을 토대로 제 삼의
아베로에스가 철학적 저술들에서 내세의 부정을 결론으로 도출하는데 반해 종교적 저술들에서는 내세의 존재를 긍정함으로 인해 생기는 입장의 모호성에 주안점을 두는 이 글은 내세의 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이 종교의 진리와 철학의 진리가 서로 모순되지 않고 동시에 타당할 수 있다는 이중진리론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여부와 그의 진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검토한다. 내세에 대한 아베로에스의 논의를 분석해 보면, 인간의 개별적 영혼이 죽음 이후에도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다는 근거가 확보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내세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영혼의 종적 보존 또는 인간의 종적 보존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더욱이, 아베로에스에게 내세의 교리는 인류로 하여금 덕스러운 행위를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므로 덕스러운 사회를 만들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정치적 기술로서의 종교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이런 종교관에 비추어 볼 때, 아베로에스가 내세의 존재를 인정한 것을 두고 그를 이중진리론
아베로에스는 내세의 행복에 대한 종교적 교의를 등한시한 채로 철학적⋅이론적 관상을 통한 현세의 행복에만 초점을 맞추는 철학자로 해석되어 왔다. 이런 평가와 달리 본 논문에서는 아베로에스로부터 철학적⋅이론적 관상을 통해 인간이 궁극적 행복을 얻을 가능성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복 추구와 연관된 종교적 교의를 정당화하고자 면모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런 목적을 위해 본 논문에서는 아베로에스 철학적 인간학과 행복론의 근간인 능동 지성과 인간의 연합과 관련한 이론을 검토하면서 철학적⋅이론적 관상을 통한 행복의 획득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종교와 그것의 철학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행복 추구와 관련한 아베로에스의 이해가 종교가 내세에서의 행복은 물론 현세에서의 행복 추구와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이런 의도가 성공적이라면 아베로에스의 종교와 철학에 대한 접근방식은 오늘날에도 철학과 종교에서 논하는 행복 추구와 관련하
거의 모든 종교에서 죽음이 삶의 끝은 아니라는 종교적 믿음을 받아들인다. 이런 내세의 삶에 대한 종교적 믿음은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답변을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에 적용해 찾고자 한다. 죽음을 기점으로 해서 내세를 육체의 부활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는 토마스에 따르면, 현세에서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소크라테스’라는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것이므로 육체가 죽고 부패하더라도 분리된 영혼은 죽지 않고 존속하며, 그리고 언젠가는 육체가 부활해서 존속하는 영혼과 재결합된다. 이 과정을 추적하면서 토마스의 논변이 죽은 소크라테스와 부활한 소크라테스가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정확히 동일한 사람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토마스의 해결방식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드러내고자 하는 필자는 내세에서 분리된 영혼의 상태가 수적 동일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음을 논증할 것이다. 나아가 현세에서 육체와 결합된 영혼의
서양철학사의 연구자들 가운데 중세와 근대를 단절로만 보고 각 시대 사이에 놓인 연속성에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최근까지 남아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 글은 두 시대 사이에 놓인 실마리를 14세기 사상가 윌리엄 오캄에서 찾는다. 필자는 신학과 철학의 관계설정에 대한 오캄의 문제의식이 중세를 벗어나 있다는 기존의 해석에 반대하여 철저히 중세적인 동시에 근대를 잇는 가교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개진한다. 이런 작업은 오캄 사상을 대변하는 유명론, 경험론에 대한 설명을 통해 회의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내고, 그의 사상에 담긴 근대성을 타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오캄을 부각시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근대성을 예견하는 그의 작업들이 철학과 신학을 분리시키고자 했던 중세의 전통들 가운데 하나를 계승한 것임을 밝힐 것이다.
It is widely acknowledged that Averroes and Pomponazzi each were one of the most important Aristotelian philosophers in the Middle ages and Renaissance respectively, and their views were both equally a menace to Christianity. This paper aims to show the continuity between medieval and Renaissance philosophy by focusing on Pomponazzi's critique of Averroes. Pomponazzi argues that Averroes’s so-called monopsychism is not a correct interpretation of Aristotle’s De anima by appealing to the Aristote
이 글은 14세기 파리 대학에서 활동했던 인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철학자라고 평가되는 뷰리당에게서 물리주의의 단초를 찾고자 한다. 뷰리당은 『영혼에 관한 토론문제』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을 둘러싼 세 가지 경쟁이론, 즉 알렉산더 아프로디시아스, 아베로에스, 그리고 가톨릭 신앙의 견해를 구별하는 과정에서 알렉산더의 입장을 따라 인간 영혼이 질료에 내재하고, 질료의 가능태에서 도출되며, 물질적으로 연장되어 있으며, 여럿이 되고 생성·소멸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뷰리당은 인간 영혼이 동물의 영혼처럼 물질적이라는 주장이 자연 이성을 따라 논증적 추론을 통해 도출될 수 있는 철학적 결론으로 간주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그리스도교 신앙에 위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 결론과 정반대되는 신앙의 견해를 참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점에서 뷰리당의 물리주의는 ‘철학적 물리주의’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이 글은 아비첸나의 이론체계에서 인간 영혼의 불멸성과 개체성이 양립될 수 있는지에 주목한다. 이 작업을 위해 먼저 아비첸나가 영혼을 포함한 존재자 일반에 대한 개체성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편자 문제의 맥락에서 살펴보겠다. 둘째, 영혼에 초점을 맞추어 개체성 문제를 다룰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이승에서 신체와 결합된 영혼과 신체에서 분리된 영혼의 개체성을 각각 어떻게 설명하는지 비교․분석함으로써 아비첸나의 입장이 지니는 문제점을 드러낼 것이다.
이 글은 고대와 근대 의학을 연결 짓는 고리역할을 하는 아랍사상가 아비첸나의 『의학규범』에 초점을 맞추어 건강이 무엇인지, 또 질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그의 답변을 분석함으로써 현대 의학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아비첸나는 그리스 의학의 체액이론과 체질이론에 바탕을 두어 건강을 완벽한 균형 상태로 설명한다. 인체는 네 가지 체액으로 구성되는데, 건강한 상태는 체액들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정상이고 잘 배합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체액이 우세해 균형이 깨지고 배합에 문제가 생기면 병들게 된다. 체질이론에 따르면, 질병은 사람 안에 있는 체질의 균형이 깨어질 때 일어난다. 체질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것이 의사의 임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아비첸나는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으로 신체 상태뿐만 아니라 심리상태의 균형과 조화도 주장한다. 필자는 이런 주장을 분석함으로써 현대 심신의학 또는 전인의학의 단초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 글의 목표는 서양철학사에서 아베로에스라는 라틴어 이름으로 알려진 아랍철학자 이븐 루슈드에 대한 반(反)종교적인 인물이라는 평가가 옳은지 따져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투영된 ‘아베로에스’가 아니라 이슬람 세계의 맥락에서 ‘이븐 루슈드’의 실상을 밝히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 작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필자는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통용되던 신학과 철학의 관계가 아니라 이슬람 세계에 고유한 율법과 철학의 관계의 틀을 통해 본다면 이븐 루슈드가 종교에 비판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종교에 친화적인 생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을 드러낼 것이다. 둘째, 이븐 루슈드의 엘리트주의에서 그의 ‘숨겨진’ 반종교적 태도를 입장을 찾으려는 해석에 반대하여 그의 종교관은 종교적 박해를 피하기 위한 가장(假裝)된 것이 아니라 진정성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최근 들어 환자의 권리와 의사의 의무 사이의 갈등은 의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점점 더 첨예화되고 있다. 과거에 병원을 찾아가는 이유는 건강한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심각한 질병에서 건강한 삶을 되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첨단 의료장비의 개발로 인해 건강한 삶을 회복하지는 못해도 지속적으로 생명을 유지 또는 연장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고통스러운 삶을 연장하거나 식물인간의 상태로 살 수 있는 상황이 생겨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의 유지가 최선의 선택인지 삶의 질을 우선시할 것인지를 두고 의사와 환자 사이의 논란이 생기게 되었다. 정신적 또는 신체적인 장애로 인해 환자가 의사에게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치료방법에 대해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여 환자 자신이 선택한 치료 방법에 대해 사전에 서면이나 구두로 의사에게 알리기 위한 진술서인 '사전의료지시서'는 의사의 의무보다 환자의 권
이 글은 이슬람철학자 아베로에스가 서양의 기독교 문명과 동양의 이슬람 문명 사이의 만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들에 대한 주해서를 집필함으로써 중세의 공인된 ‘주석가’라는 명칭으로 회자되기도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해석이 상당부분 종교의 교의와 충돌을 일으킴으로써 이슬람 세계는 물론 기독교 세계에까지 불온한 사상가라는 오명을 입기도 했다. 아베로에스는 이슬람적인 ‘자기’와 철학적인 ‘타자’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종교의 진리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근간을 두는 철학의 진리 사이에 괴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런 주장에 주목함으로써 서로 이질적인 문명들 간의 만남이 ‘차이의 권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아베로에 스의 논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 글은 오캄의 논리학에서 중요한 위상을 지니는 절대명사와 내포명사의 구분에 초점을 맞춘다. 절대명사는 ‘개’와 ‘꽃’처럼 세계의 대상을 직접적으로 의미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의미 대상을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의미하고, 명제 안에서 저마다를 무차별적으로 나타낸다. 예컨대, ‘개’의 경우 그것은 단지 개들만을 의미하고, 모든 개를 동동하게 의미한다. 반면, ‘부모’나 ‘마부’와 같은 내포명사는 두 가지 대상을 의미한다. 즉, 부모는 일차적으로 부모를 의미하지만, 이차적으로 자식을 내포하며, 마부는 일차적으로 마부 당사자를 의미하지만, 이차적으로 말을 내포한다. 이런 명사의 구분에는 보편자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이들은 내포 명사를 절대 명사로 오인했다는 오캄의 비판이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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