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g, Minho
Seoul National University
About the Lab
Professor Kang Minho'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classical Chinese literature, with a focus on poetic forms, literary aesthetics, and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Chinese verse. The lab explores key themes such as the canonization of Du Fu’s poetry, the artistry and structural complexity of regulated verse (lüshi), the role of rhetorical devices like antithetical couplets, and the cultural significance of poetic forms like heishou (regulated verse) and xiyun (palm-verse) poetry. The lab also investigates pedagogical approaches in classical Chinese language education, particularly in curriculum design and textbook development for modern learners.
Research Overview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Selected Papers
15杜詩的典範化包含肯定的效果和否定的側面, 本稿注目于其否定的側面. 杜詩的多樣性和創新性很大, 因而杜甫生存的時候沒有人注意或理解他的詩歌. 到了中晩唐, 人們才開始理解⋅肯定杜詩的成就和優點, 其過程中詩史說和集大成說出現了. 到了宋代, 杜詩受到人們的極度推崇, 杜甫被尊爲詩聖, 杜詩被視同六經. 這樣的推崇主要發現於詩聖說和一飯未嘗忘君說. 其後對杜甫的推崇幾乎沒有變化. 詩聖說的核心是把杜甫看做儒家人格的昇華, 詩史說看重杜詩的社會的價値, 集大成說注視杜詩的高度藝術性. 這樣的認識不能說是不對, 可是杜詩的理解上常常産生很多偏見和否定的影響. 例如, 詩聖說的否定的影響發現于過分强調寄託性, 以致雖然可堅持杜甫有溫柔敦厚的人格的主張, 可是常常歪曲杜詩的本意. 重視詩史說的現實主義論者一直否定杜詩的諧謔風趣. 由于集大成說的影響强調杜詩藝術性的人對于比較拙的杜詩常常表現出過敏的反應.
本研究摆脱对次韵诗的偏见與否定性的认识而把次韵诗看作积极追求押韵美感的一個形态考察其美学與缺點。 本研究的概要如此:‘次韵’即按照原诗的韵和用韵的次序来和诗次韵, 就是和诗的一種方式, 也是和韵的最积極而有难度的一個形态。 次韵诗是从中唐开始正式制作, 宋代以後盛行, 至今作汉诗的人常常相互交换的诗體。 可是评者对次韵诗的态度一直是褒贬不一, 历来否定性的评價占其主流。 因此, 对于次韵诗, 没有作深入细致的研究。 对于次韵诗的诞生, 有注重科举制與诗歌的唐代风尚的影响, 特别是对‘韵’的美学性的认识起了極大的作用。 换言之, 次韵诗是中国古典诗歌押韵的美学被扩大的一種形态, 还表现出古代人对押韵的美感與尊重精神。 次韵诗的淵源追溯到魏晋南北朝时期诗歌, 可以说次韵诗被中唐元稹⋅白居易正式发展。 元白的长篇排律, 特别是百韵排律次韵诗即元和体的重要成分, 是在次韵诗的发展上独特而独步性的成就。 其才能虽然是天才性的, 可因誇示其才能而缺點增加, 从而受到不少否定性的评價。 虽然如此, 元白的长篇排律是对後代的次韵诗盛行引起了很大的影响。 次韵诗被晚唐皮日休與陆九蒙繼承。 宋初没有活泼性
對仗, 在中國古典文學當中, 可以說是運用最廣泛的修辭方式之一, 特別是在古典詩歌中運用最精巧的. 所以爲了正確地理解中國古典詩歌, 理解對仗是一定需要的. 可是至今關于對仗的硏究有點兒偏向性, 只集中在硏究律詩的工對, 再說只不過詳細地分類對仗的種類而已. 古代熟練的詩人不僅追求精緻的工對, 另一方面, 在寬對的範圍內還破壞對仗, 他們積極活用這樣的寬對以同時追求對仗的遵守和自然的詩想. 這樣的寬對往往放在詩想轉換的部分, 以使它在整个詩的流向中起着章法上的作用. 所以在律詩・排律中應該注意運用寬對的部分. 絶句字句雖少, 含蘊更深. 其運用對仗方式或對起, 或對收, 或兩對, 其情況和法度都是不一樣. 對起者, 主要追求氣勢與詩想的興起. 對收者, 常常使用流水對, 更深化詩的意境. 兩對者, 後二句常用流水對, 亦有板對四句者, 此應該考慮章法上和諧與一氣呵成的氣勢. 而且一般地說, “古詩雖不拘對仗,却也不避對仗.”這樣的說法裏面也有對于對仗的消極的認識. 雖然古詩的對仗和律詩的對仗不一樣,可是古詩還常常積極運用對仗以表示重要的感情和思想, 這點也是應該要注意的.
Classical Chinese education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SNU) is also experiencing the decrease of student enrollments and the number of classes. Among various possible reasons, the discrepancy between program curricula and student needs has worsened the problem. SNU, therefore, reorganized its curriculum offering ‘Elementary Classical Chinese 1’ and ‘Elementary Classical Chinese 2’ in place of ‘Classical Chinese 1.’ This change helped students to select the right level of classes and instructo
李嶠的《杂咏诗》由120首单题形式的咏物五言律诗组成,这些诗的作诗意图和风格與一般的咏物诗有所不同,其文学價值常遭贬低。李嶠曾多次擔任初唐时期的宰相职务,也是當时的文坛领袖,为了启发引导初学者、推廣五言律诗,李嶠创作了这些具有启蒙教材性质的《杂咏诗》。《杂咏诗》将120個主要物象分作10类,如同一部简缩的类书。这些诗展示了如何将與某一物象相关的代表性典故运用到五言律诗中,因此幾乎每句都罗列有典故,且大部分以表达一般的感懷或启蒙性主旨为主,而非具有個人特性的感懷,也正式因此,这些诗给人以将以前的长篇咏物赋缩略为五言律诗的感觉。虽然从整体看来其结構比较简单,但其使用的语言和表达方式却较为华丽、并具有神秘感,其中不少诗句往往令人联想到楚辞风格。《杂咏诗》120首大部分都遵守近体诗格律。在五言律诗尚未完全成形之际,这样大量创作的高合律度、以教材形式出现的诗作具有十分重要的意义。《杂咏诗》不仅展示了五言律诗的声律,而且也出现了後来允许使用的拗、拗救和平仄的特殊形式的用例。这使得律诗格律具有了融通性,使得以後的律诗创作路子更为宽廣。此外,这些诗不仅严格遵守对仗的规则,而且首联和尾联中时常运用程式化
이 글은 정지용이 제주 기행 문학인 <다도해기>와 <백록담>에서 방언 답사자의 시선으로 제주 방언을 채록하는 방식이 나타남을 밝히고 그 의미를고찰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1938년에 이루어진 제주 기행은 단순한 관광이아니라 문우 박용철에 대한 추모 여행으로서 계획되었다. 따라서 제주도는정지용이 박용철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릴 뿐만 아니라 그와 공유했던 사상과 언어관을 재확인하는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박용철은 생전에 민족 언어의 완성을 시문학파의 기치로 내걸었고 ‘토착어’가 지닌 순수한매체로서의 가치를 고평가했다. 정지용은 이에 조응하여 <다도해기>를 통해 해녀들의 삶을 생생히 나타내는 다양한 제주 방언을 조사하고 옮겨적었다. 여기서 제주 방언은 주로 해녀들의 풍습이나 말씨에서 드러난 것이 많다. <백록담>은 방언형이 그다지 많이 출현하지 않지만, 정지용의 제주 답사를 ‘순례’라는 정신적 차원으로 고양했다는 의의를 지닌 작품이다. 이러한 양상들은 방언 구사자로서의 작가를 전
七言排律이 하나의 詩體로 성행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는 五言律詩의 格律美를 종횡으로확장함으로써 그 폐해도 극대화되었기 때문이다. 짝수 리듬으로 자족성을 가지는 7언구가 對 仗을 이루면서 길게 이어지다 보니 칠언배율은 쉽게 단조로워지고 기력을 상실하게 된다. 칠언배율은 이러한 시체 상의 한계로 인해 흥행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칠언배율의 창작은 杜甫 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두보의 8수 칠언배율은 合律과 拗體의 작품이 각각 절반이며 나름의 특징이 있다. 합률 칠언배율은 격률을 엄정하게 준수하고 있으나 칠언배율의 한계와 단점이 두드러져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두보 칠언배율의 특성은 古體와 近體의 면모가 결합된 요체 칠언배율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平仄의 격률 등이 어긋나는 古體風의 구절을 적절히 혼합하여 칠언배율의 단조로움과 한계를 극복하고 시에 생기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요체 구절을 안배함에 前古後律의 현상을 보이는 작품들이 주목할 만하다.
전후 비평가이자 시인인 고석규의 초기 비평에서는 '여백'이나 '부재' 등 부정성을 띤 표현이 자주 출현한다. 이러한 표현은 전쟁(죽음)에 대한 공포와 관련하여 설명해 온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고석규가 이들 개념을 의미화하고 1930년대 시 담론을 환기하는 글쓰기 방식을 고려해본다면, 고석규 초기 비평은 전후 트라우마에 대한 응전 혹은 극복의 서사가 아니라 오히려 망각된 전쟁 이전의 시대를 향한 애도의 양식을 취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고석규는 대상의 '상실'을 애도한다기보다 기록과 아카이브의 바깥에 놓여서 애도가 불가능한 대상의 '망각'을 애도한다. 이는 데리다의 애도 개념과 유사한 것으로, 애도의 실패 혹은 애도의 불가능성을 통해 타자와 대화적 관계를 구축하는 역설적 애도에 해당한다. 고석규는 전쟁 이전과 이후를 단절적으로 인식하지 않으면서 애도 불가능성의 시대인 1930년대의 시 담론을 대화적 관계 속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현대시의 심연」이란 글은 1930년대를 대표하
시와 해학은 원초적 관련성이 있지만 자칫 해학의 추구가 시의 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 소식은 풍부한 학식과 유머감각을 바탕으로 眞情과 철학이 담긴 고품격 해학을 자연스럽게 구사하여 그의 시에 호방하고 달관적인 면모를 띄게 하여 흥취를 높였다. 이를 통해 시에서 해학과 기품이라는 병존하기 쉽지 않은 요소를 묘하게 섞음으로서 독특한 자신의 시풍을 이루었다. 소식은 희제시가 많지만 해학의 측면에서 한계도 있으며, 각종 건축물 등의 명칭에서 위트를 발휘하여 해학적인 시를 쓰기도 했고, 특히 일상생활의 다양한 상황에서 반전의 해학이 돋보이는 시를 많이 썼다. 소식이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자신이 부딪친 온갖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유머를 통해 늘 웃음을 잃지 않았던 것이 하나의 중요한 이유인데 그런 면모가 시에서도 잘 발현되어 있다.
김영랑의 시는 초기에 철저히 내면적인 순수서정시의 전형을 띠다가 중후기를 거치면서 점차 현실참여적 경향으로 나아간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영랑 시편에 자주 등장하는 시어 ‘마음’은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아 왔으나, 김영랑이 ‘마음’을 이완과 긴장 운동을 반복하는 실[絲]의 이미지로 조형하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지적되지 않았다. 김영랑의 초기 시편은 ‘유선화(流線化)의 상상력’이라 명명할 만한 ‘마음실’ 이미지의 유동성을 전반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끗업는 강물이 흐르네」나 「가늘한 내음」 등의 작품에서 ‘마음실’은 항상 느슨하게 흐르는 상태에 있으면서 부드럽고 유려한 분위기를 환기한다. 그러나 ‘마음실’ 이미지가 배경화되어 있을 때가 아니라 「四行小曲-‘뵈지도 안는 입김의 가는 실마리’」, 「연 1」 등과 같이 시의 전면으로 대두될 때는 위태롭고 연약한 실오라기의 상태로서 서정 주체에게 불안을 촉발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즉 ‘마음실’ 이미지는 자아와 세계의 내면적 합
Dive deeper into Kang, Minho's research on Nubint
Open this lab's papers in the app to read with AI, summarize, and cite in your 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