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kwon Choi
Seoul National University · Social Sciences
About the Lab
Professor Sokwon Choi'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Chinese and Korean literary and artistic traditions of the late imperial period, with a focus on classical literary criticism, portrait painting, and the cultural history of literary and artistic self-representation. The lab investigates how literary figures and artists such as Jin Shengtan, Dong Qichang, and Kang Sehong shaped and expressed identity, legitimacy, and intellectual values through works like commentaries, portraits, and autobiographical art. Key research directions include the evolution of literary criticism (e.g., 'close reading' in Jin Shengtan’s *Du Shi Jie*), the symbolic language of Ming-Qing portraits (e.g., Zeng Jing’s depictions of recluses), and the interplay between Confucian, Buddhist, and Daoist ideals in visual and textual culture. The lab also explores the reception and transmission of historical narratives, particularly the shifting legitimization of the Three Kingdoms in Song and later dynasties, and the role of art in constructing political and personal identity in East Asian intellectual history.
Research Overview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Selected Papers
13金聖叹在中国文学史上的主要贡献是雙中: 第一, 他是最有影响的通俗文学提倡者之一; 第二, 他开创了中国式‘细读’的文学批评方法。因此, 最近对金圣叹的文学成果研究是注重于其通俗文学上的成果以及贡献。金聖叹的‘六才子书’不仅仅包括如≪莊子≫、≪离骚≫、≪史记≫等的正统文学作品, 也有如≪杜诗解≫的诗歌批评书。本文以≪杜诗解≫为研究对象进行分析金聖叹的杜诗批评方法和杜诗解释。其实, 金聖叹很爱好杜甫的诗歌作品, 因此他在实际诗歌创作过程中采用了與杜诗同样的试题或风格等, 可见在≪沈吟楼诗选≫中“拟杜少陵”、“拟杜”、“借杜”等作品。而且在≪清诗记事初编≫和≪清诗别裁集≫中说明了金聖叹的作品和杜甫的风格很相似的。虽然金聖叹尊重杜诗, 但他的≪杜诗解≫不能受到很多文人的欢迎。特别在≪四库全书总目提要≫中批判金聖叹用分解来分析律诗的方式。本搞摆脱如此的评價, 进行分析金圣叹对杜诗的批评中所见的文学观。金聖叹的≪杜诗解≫提出了对杜诗的读法, 第一是诗题與作品内容之间的關係。具有很长诗题的作品中他按照诗题與内容之间的關係来分析作品。第二是用分解的方法来分析杜诗。他在≪北征≫批评时, 先分开三十五段
This article is to confirm various discourses of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 from authentic history, Records of the Three Kingdoms up to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and to investigate the historical view on three kingdoms of the scholars in South Song dynasty as a kind of investigation on the cultural meanings. As Song dynasty showed the obvious difference on the historical view for Three Kingdoms between North and South Song, it was the period to shift from legitimism of Cao Wei in North So
강세황(1713-1791)은 <70세 자화상>에서 관모와 야복을 병치한 유례없는 도상(圖像)으로 오랜 야인(野人) 생활과 만년의 출사(出仕)로 집약되는 자신의 삶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정작 강세황은 <70세 자화상>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듬해인 1783년 정조(正祖, 재위 1776-1800)는 화원(畫員)인 이명기(李命基, 1756-1802 이후)로 하여금 강세황에게 <71세 초상>을 그려주도록 명하였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야인의 자존(自尊)을 수차례의 자화상 제작으로 승화시킨 바 있는 강세황은 전통적인 ‘관복본’ 초상의 형식을 따른 <71세 초상>을 받고 나서야 자신의 초상이 완성되었다고 여겼다. 관료로서의 공적(公的) 이미지가 투영된 <71세 초상>은 강세황뿐만 아니라 진주(晉州) 강씨(姜氏) 가문의 정치적 복권을 상징하는 기념물로서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71세 초상>에서 강세황은 오른손을 옷 밖으로 내밀고 있는데, 유독 이명기가 그린 초상화 중에는 당시로서는 예외적인
증경(曾鯨, 1564-1647)이 그린 초상화는 명말(明末) 강남(江南) 지식층을 일관되게 은자(隱者)로 형상화하고 있다. 명청(明淸)대의 비평가들은 안면 묘사의 사실성에 집중하여 증경의 초상화를 비평했지만, 정작 증경이 초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강남 지식층의 은일은 얼굴이 아닌 배경, 복식, 자세 등을 통해 파악된다. 요컨대 증경의 초상화는 강남 지식층의 은일을 자연 속에서의 ‘행락(行樂)’으로 표상하고 있으며, 강남의 은자들이 내면화했던 ‘삼교합일(三敎合一)’적 성향을형상화하기도 했다. 산수 배경을 포함하고 있는 〈오몽양(吴夢暘)초상〉과 〈옹덕홍(翁德洪)초상〉 은 증경이 표현해 낸 강남 지식층의 은일이 자연 속에서의 ‘행락’에 다름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증경이 금릉(金陵)에서 그렸던 〈오몽양초상〉은 당시에 ‘행락도’로인식되기도 했다. 금릉 현지의 산수화가인 호종신(胡宗信)이 그린 〈오몽양초상〉 의 산수 배경은 이 작품의 제작지로 명기된 청계수각(青溪水閣)의 풍광을 묘사한것
본 연구는 북송 시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蘇軾의 삼국 역사와 관련된 글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그의 삼국 역사 인식을 고찰하였다. 소식은 비록 대다수의 북송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위나라에 정통성을 부여하기는 했지만, 이와 동시에 실질적 관점에서 魏 정권과 曹操에 대한 일정한 비판의식도 표출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이러한 삼국 역사 인식이 남송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尊劉貶曹’의 경향에 상당히 접근하는 과도기적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것의 문화사적인 의의를 논의하였다.
심경자(1944~ )와 송수련(1945~ )은 1970년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동양화 비구상 부문에 출품해 주목받은 작가들로, 이들의 추상회화는 자연에서 유래하고 자연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상호 연관성을 지닌다. 본 논문은 심경자와 송수련이 자연에 기반한 추상을 제작하게 된 미술사적 맥락을 고찰하고, 두 작가의1970년대 회화를 ‘자연 추상’으로 규정하여 그들이 자연을 추상화한 방식을 논의한다. 앵포르멜의 유행이 지나간 1960년대의 화단에서는 추상의 한국적 토착화가 본격적으로 모색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 ‘민족’, ‘우리’를 강조하는 이른바 ‘한국적 추상’이 대두되었다. ‘자연’은 70년대에 한국적 추상을 탐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었다. 김환기와 유영국 등의 작업이 ‘자연주의적 추상’으로 명명되었고, 단색조 회화는 도가적 ‘자연주의’와 관련되어 비평되었다. 그런데 심경자와 송수련은 자연의 형상을 추상화하거나 태도로서의 자연주의를 표방하기보다는 자연의 구체
명말(明末) 강남(江南)에서 문인 문예의 부흥을 주도했던 동기창(董其昌, 1555-1636)과 진계유(陳繼儒, 1558-1635)는 초상화가 개인은 물론 집단의 정체성을 표상하는 데 중요한 상징물임을 잘 알고 있었다. 본인이 주창한 이론대로 남종화(南宗畵)적 산수화를 주로 그렸던 동기창이나 화가보다는 저술가에 가까웠던 진계유는 자신들의 초상화 제작을 당시 초상화의 명수(名手)였던 증경(曾鯨, 1564-1647)에게 일임했다. 증경은 1620년대를 전후하여 강남 예술계를 이끌던 두 거목인 동기창과 진계유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면서 초상화가로서의 전성기를맞게 된다. 동기창의 《추흥팔경도책(秋興八景圖冊)》에 권두 초상화로 삽입된 〈동기창초상〉은 증경이 초상을 그리고 항성모(項聖謨, 1597-1658)가 산수 배경을 그려 넣은 합작 초상화이다. 동기창의 망년우(忘年友)였던 항성모는 자신이 애호했던 소나무를 배경의 주요 수종으로 그려 넣어 동기창이 은일 기간에 유지했던 지조와 예술혼을 상징적으
본 논문은 근대 전환기 지식인 양주동의 『詩經』 번역에 나타나는 특징과 『詩經』 해석과 수용의 경향성을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에 본고는 1944년 출간된 『支那名詩選』과 1948년 출간된 『詩經抄』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양주동의 『詩經』 번역과 해석의 특징을 고찰하였는바, 양주동의 『詩經』 해석은 朱熹의 『詩集傳』을 적극 수용하고 있으면서도, 朱熹가 제시한 ‘以詩解詩’의 방법론을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전통적 교화론을 해체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번역의 형식적인 측면에서 양주동은 4.4조 등의 운율을 운용함과 함께 구술성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詩經』이 지닌 민요적 측면을 복원하고자 했음도 규명할 수 있었다. 결국 양주동의 번역은 『詩經』을 유교적 경전의 지위에서 탈피시켜 국문화된 민요로 편입시키는 과정이자, 중국 고전문학 번역을 통한 脫中華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겠다.
This study examines the evolution of discourse on ‘Southern and Northern schools’ within the Korean painting community from 1945 to the 1960s, focusing on how this dualistic framework became intertwined with debates over stylistic preferences between ink and color painting, ultimately reshaping the structural configuration of the Korean art scene.First, the research examines how post-liberation studies of Chosŏn painting history were constructed around the dichotomy of the Southern and Northern
심경자(1944~ )와 송수련(1945~ )은 1970년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동양화 비구상 부문에 출품해 주목받은 작가들로, 이들의 추상회화는 자연에서 유래하고 자연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상호 연관성을 지닌다. 본 논문은 심경자와 송수련이 자연에 기반한 추상을 제작하게 된 미술사적 맥락을 고찰하고, 두 작가의 1970년대 회화를 ‘자연 추상’으로 규정하여 그들이 자연을 추상화한 방식을 논의한다. 앵포르멜의 유행이 지나간 1960년대의 화단에서는 추상의 한국적 토착화가 본격적으로 모색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 ‘민족’, ‘우리’를 강조하는 이른바 ‘한국적 추상’이 대두되었다. ‘자연’은 70년대에 한국적 추상을 탐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었다. 김환기와 유영국 등의 작업이 ‘자연주의적 추상’으로 명명되었고, 단색조 회화는 도가적 ‘자연주의’와 관련되어 비평되었다. 그런데 심경자와 송수련은 자연의 형상을 추상화하거나 태도로서의 자연주의를 표방하기보다는 자연의 구
杜詩學可以分爲四个段階. 其中, 淸朝是杜詩學的總結期. 其實淸代以前的杜詩學, 特別是宋代較多關注杜詩的社會公能. 這就是對杜詩意識與當時理學的出現有關係. 宋代理學成爲當時主流的學術思潮, 杜詩學也處於這種學術思潮影向下, 幷且它的社會公能被强調了. 然而比較淸代與宋代的杜詩觀, 不儘儘維持傳統的觀念, 而且開拓革新的解釋方法. 淸代對杜詩評價仍然重視杜詩‘溫柔敦厚’的思想, 進一步表面在杜詩解釋的方面. 就是, 開始淸初文人金聖嘆, 用八股文法解釋律詩. 金聖嘆認爲詩與文同樣具有起承轉結法則, 强調作品整體的梳理. 仇兆鰲不止于金聖嘆的解杜方式, 除了解釋律詩以外, 還進一步在長篇作品上把起承轉結方法分析杜詩. 淸朝代表杜詩註釋家浦起龍和楊倫亦把篇章的內在的合理性作爲解杜的重要方法. 一連的解釋方式說明, 當代文人對杜詩超過儒家的文學解釋方式, 摸索杜詩解釋評價的新標準. 綜上所述, 淸代文人重視杜詩內在的‘溫柔敦厚’的思想. 然而不儘儘局限如此, 他們還進一步提出對杜詩文學藝術的評價標準. 淸代仇兆鰲 『杜詩詳註』,浦起龍 『讀杜深解』 及楊倫 『杜臆』 等借鑒杜詩解釋方式,
정재호는 도시의 노후 건축물을 화면 전면에 내세운 ‘건축물 회화’를 중심으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이다. 그는 1960, 70년대에 세워진 특정 건축물들을 개발독재 시대의 표상으로 보고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며 정확하게 그려 왔다. 그는 신세대 동양화가로서 동양화의 소재와 기법의 확장을 시도한 서울 야경 그림을 선보이며 데뷔했다. 2000년대 초중반 그는 도시 문제에 실천적으로 개입했던 현대미술의 흐름과 도시 건축물에 관한 사회학 연구 등에 영향을 받아 건축물 회화에 천착하게 된다. 도시 건축물을 분석적으로 파악하여 재현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는 파사드 중심의 구도, 사실적 묘사, 인위적 구성 등의 조형적 특징으로 귀결되었다. 2010년을 전후하여 정재호는 건축물 회화와 병행하여 ‘아카이브 회화’라고 부르는 작품군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아카이브 회화는 60, 70년대의 기록물에서 수집한 시각 자료를 회화로 옮긴 연작 성격의 작품이다. 그는 아카이브 회화를 통해 현대사의 파편적 이미
이응노(1904-1989)는 현대화와 국제화가 요청되던 1950년대 한국 미술계의 흐름속에서, 동양화가 세계 현대미술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추상의 수용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였다. 그는 1950년대를 거치며 점차 추상성을 심화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전개하였으며, 1958년에는 추상의 본산으로 인식되던 파리로 이주하여 본격적으로 추상 작업에 매진하였다. 유럽에서 도큐멘타 II의 전시 등을 관람하며 현대 추상과 전통 서예의 결합 가능성을 확인한 그는, 1960년대 초부터 전통 서화의 재료와 기법을 활용한 콜라주 작업을 선보였다. 1960년대 중반, 이응노는 서예와 한자의 조형성, 동양화의 조형 원리를 현대적 추상 개념과 결합하여 독자적인 문자 추상 양식을 확립하였다. 논문의 후반부에서는 작가가 직접 언급한 ‘패턴(pattern)’과 ‘컴포지션(composition)’ 개념에 주목하여, 이응노 문자 추상의 핵심 원리가 조형 단위의 반복적 배치를 통한 화면 구성에 있음을 논의한다.
Research Areas
Dive deeper into Sokwon Choi's research on Nubint
Open this lab's papers in the app to read with AI, summarize, and cite in your 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