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성 교수
Jongsung Choi
서울대학교 · 사회과학
연구실 소개
최종성 교수의 연구실은 조선 후기의 위기 담론, 무속 신앙과 예언 문헌, 그리고 조상 숭배의 종교적·윤리적 의미를 중심으로 한국 전통 종교와 민속 사상의 복합적 구조를 탐구합니다. 특히 정감록, 처경사건, 감인록 등 역사적 텍스트와 현장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비결서와 대중 신앙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며, 유교적 의례와 무속적 실천의 경계를 탐색합니다. 기독교적 반대 논리와 대비되는 조상의 구원적 역할과 생불 신앙의 정치적 성격에도 깊이 관심을 기울입니다.
연구 현황
연구 성과 추이
표시된 성과는 수집된 데이터 기준으로 산출되며,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요 논문
15한국의 예언ㆍ비결 문헌을 대표하는 정감록은 조선후기의 위기론을 반영하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부추겨온 기록물이다. 본고는 현존하는 정감록 문헌에 반영된 조선후기의 위기론을 발굴ㆍ정리하고, 그것이 당대의 사회로 발산된 역사적 흔적들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조선후기 위기설은 소위 백년왕국론(centennialism)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백년 단위로 생성되었고 백년 단위로 연장되었다. 정감록 문헌 속에서 추출된 3백년설(+α), 4백년설(+α), 5백년설은 조선후기의 위기담론이 백년마다 반복ㆍ조정되었음을 보여준다. 둘째, 정감록 백년왕국론은 비결서 텍스트 내에 갇혀 있지 않고 사회적 담론과 운동으로 발산되었다. 왕실이 3백년 종사니 4백년 종사니 5백년 종사니 하면서 왕실의 내력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고 있을 때, 민중들은 3백년설(17세기), 4백년설(18세기), 5백년설(19세기)이 제공하는 예언의 긴박성에 기대 반왕조적 실천을 전개하였다. 셋째, 3백년(+α)설은 《감인록》(
17세기 서울 경기 일대의 신도들 사이에서 생불(生佛)로 추앙받던 불승(佛僧) 처경(處瓊, 1652~1676)이 소현세자의 유복자를 자처하며 왕실 및 고위관료들에게 이를 공지할 생각으로 접촉을 시도하다 결국 관에 고변되어 구금되기에 이르렀다. 처경은 종교적 영험성에서 비롯된 생불의 이미지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적인 권위(소현세자의 유복자)마저 확보하려다 끝내 심문을 받고 죽음에 이른 비운의 승려였다. 처경사건은 숙종 2년(1676) 11월 1일부터 16일까지 약 보름간 진행되었으며, 이에 대한 과정과 시종이 『요승처경추안(妖僧處瓊推案)』(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그대로 실려 있다. 우리는 본 추안자료를 통해 당시 추국관들의 손을 거쳐 기록된 민중들의 육성을 들을 수 있으며, 그 속에서 민중의 신앙적 열망과 욕구는 물론, 저항 및 반란의 담론과 실천을 읽어낼 수 있다. 1676년 11월 16일 처경은 요망한 글과 말을 지어내 대중을 미혹시켰다는 죄를 받고 용산 당고개에서 처형되었
이 논문은 조상에 대한 의례학적 쟁점들을 검토하되, 한국인의 조상의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기복성, 윤리성, 구원성 등에 집중할 것이다. 먼저, 조상은 흔히 발복의 원천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 발복은 혈연적 계통과 가족의 범위 내에서 작동된다. 망자가 살아생전에 지니고 있던 권위, 부, 생명성 등은 죽음을 계기로 후손에게 인계될 잠재적 복의 원천이 된다. 그러한 복의 원천이 원활하게 전수될 수 있도록 다양한 의례적⋅풍수적 조처가강구되기도 하였다. 둘째, 조상은 후손에게 복을 베푸는 주체일 뿐만 아니라 후손에게 윤리적인 공경을 요구하는 영적 가족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조상의례는 살아 있는 부모에게 공경과 효를 실현하였던 것처럼 사후에도 그것을 연장하는 윤리행위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유교문화의 이해와는 달리, 생자에게 효도할 수는 있어도 사자에게까지 그런 효 의식을 연장하는 것은 우상숭배일 뿐이라며 조상숭배를 거부한 종교전통도 있었다. 양자 간의 갈등은 불가피했고, 종종 피로 얼룩
This article aims to understand the folk religion of Gamak mountain as a sacred place based on historical texts and field survey data. Gamak mountain has been a ritualistic hub, which transcended era, class, and religious tradition: from ancient times to the present day, from royal family to common people, from institutional religion to noninstitutional belief. The religiosity of Gamak mountain was concentrated on Gamaksa shrine(紺岳祠), Seolingui shrine(薛仁貴堂), and the Gamak Monument(紺岳山碑), which w
The critical study on gongbu(工夫) is steadily increasing. Gongbu is mainly defined as a serious practice for self-fulfillment in many religious traditions: Confucianism, Buddhism, Taoism and new religions. But gongbu has various meanings and contexts, so it is no longer the exclusive discipline of a religion. Technically, gongbu, previously regarded as an exclusive way of practice to eastern world religions, is becoming popular and available to popular religious traditions. This paper pays attent
Gi-chung-je(祈晴祭, Ritual for Fine Weather) as well as Gi-u-je(祈雨祭, Ritual for Rain) was representative of Korean climatic rituals. This article aims to understand the history and characteristics of Korean ritual for fine weather. Korean people performed rituals for fine weather not only to escape from floods but also to ensure fine weather conditions in order to hold great religious events. This article tries to answer three questions. First, what is the origin and history of Korean ritual for f
송징, 송장군, 송대장군 등의 담론과 실천은 전남 완도에 집중되고 있으며, 자료상 탈-완도의 가능성도 높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조 7년(1629) 소위 이충경 옥사를 기록하고 있는 의금부의 재판기록인『역적이충경문서(逆賊李忠慶文書)』(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자료)를 통해, 황해도, 강원도, 함경도 등 한반도 중북부에서 의례화되었던 송대장군을 만나게된다. 이충경을 비롯한 해서 및 관서 지역 출신의 하층민들은 상경거사(上京擧事)를 실행에 옮기기 전에 최영 및 남이와 더불어 송대를 모시는 장군제를 비밀리에 거행하였다. 『 역적이충경문서 』에자주 등장하는 최영, 남이, 송대 등 3장군의 의례야말로 그간 송징 자료의 공백기로 남아 있는 17세기의 틈을 메워줄 뿐만 아니라 완도 중심의 편중성을 덜어주는 좋은 소재가 아닐 수 없다. 15세기 『 동국여지승람 』의 기록에서 송징은 호국신사의 신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16세기『 석천집』에서는 지역의 민중영웅으로서 송대장군이
이글은 가사를 통해 1930년대 중후반의 식민지 상황에 놓였던 소수 교단인 태극교의 종교적 행적을 간추려 본다. 교단 스스로가 남긴 자료가 아닌, 사법당국의 조사기록(검사국문서), 특히 그들의 해석이 가미된 문서를 통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간 가려져 있던 가사 자료는 물론 교주 및 교단의 흔적을 엿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본 연구에서 다룬 태극교 가사 7편은 일제의 손에 의해 가공된 자료라는 점에서 가사 본유의 형식적 특성을 복원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이들 가사는 문학성과 교술성을 갖춘 비결가사의 특성을 갖추고 있을뿐더러 ‘교주-교의-신도’를 교차하는 주제로 체계화돼 있어 당대의 종교사 이해를 위한 자료로서의 활용성이 크다고 하겠다. 일제 사법당국은 태극교 가사가 조선의 독립과 국권의 회복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고, 비결 및 비유적 언어에서 계룡-정왕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읽어냈다. 계룡-정왕론은 정감록의 문자적 전승을 보다 강화했다는 점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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