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숙인 교수
Sookin Kwon
서울대학교 · 사회과학
연구실 소개
권숙인 교수의 연구실은 식민지 시대 한반도에 정착한 일본인 커뮤니티의 일상과 정체성, 특히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상호작용, 교육제도, 성별과 계층이 형성한 사회적 차이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재일한인의 귀속의식과 정체성, 여성노동, 화류계 여성의 삶 등 다층적 억압 구조 속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불균형을 다각도로 고찰하며, 근대화와 식민지배의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사회의 정체성과 사회구조를 재조명한다. 특히 회고록, 생애사 자료, 문화연구적 접근을 통해 제도적 구조와 개인의 실천이 얽히는 지점에서 역사적 경험을 해석한다.
연구 현황
연구 성과 추이
표시된 성과는 수집된 데이터 기준으로 산출되며,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요 논문
15본 연구에서는 식민지배기에 한반도에 형성되었던 일본인 커뮤니티의 일상과 의식을 통해 식민자로서 일본인과 현지 조선인의 만남, 그리고 이를 통해 형성·유지된 식민의식을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지배와 피지배, 식민과 피식민의 접점과 역학을 드러내고 일본의 식민지배, 일본인의 이주사, 나아가 한국의 근대에 대한 이해를 다각화하는데 기여하고자 하고자 하였다. 식민지기 한반도로 이주·정착한 일본인들은 전반적으로 현지사회와 분리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식민지배 집단의 일부인 일본인과 피식민자로서의 조선(인)의 만남과 상호작용은 당시의 식민지배 상황에 의해 굴절되거나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양자의 만남은 대개 지배와 피지배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졌고, 식민의식과 식민주의적 편견이 종종 재조일본인과 조선인의 상호작용을 지배하였다. 현지 조선인과의 관계나 접촉은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와 노동을 값싸게 활용하는 데에 주로 국한되거나, 조선인 집단 중에서 ‘대표성’이 적은 특수한
이 연구에서는 ‘조국’으로 ‘귀환’(return)한 재일한인(在日韓人)의 경험과 이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수용과 인식을 고찰한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란 재일한인 젊은이들이 한국행을 선택하게 되는 배경과 목적, 한국에서의 경험,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그들의 귀속의식과 정체성에 끼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다른 디아스포라 귀환 사례들과의 비교분석을 통해 재일한인의 사례가 갖는 독특한 이론적 함의에도 주목한다. 해외 거주 디아스포라 한인 중 재일한인이 갖는 특수성은 그 역사가 식민지배에 기원을 두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과 태도가 식민지배의 역사와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적지 않은 한국인들은 일본, 일본인, 일본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런 감정은 종종 귀환한 재일한인에게 투사된다. 국민국가 속에 살아가는 소수 민족집단으로서 재일한인의 또 다른 특징은 이들이 문화적으로는 현지사회에 높은 동화양상을 보이
이 논문에서는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학교의 일상과 학교문화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식민지배기 동안 형성되었던 재조(在朝)일본인 커뮤니티의 생활세계를 조명해 보고자 하였다. 주요 분석 방법으로는 패전 이후 본국으로 철수한 일본인들이 써낸 회고록과 회고담에 대한 텍스트 분석이 활용되었다.식민지 조선 내 일본인 학교의 교육과 학교생활에서 두드러진 특징으로 입시경쟁과 학교 간 서열화, 위계사회의 축소판으로서의 학교, 국가주의적 의례문화, 여성 학교교육의 특징 등이 부각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일정정도 근대 일본의 교육제도 및 학교교육이 갖는 특징을 반영하는 동시에, 정착식민자(colonial settlers)로서 재조일본인 사회가 갖는 특수성 속에서 분석되어야 할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 교육사는 수입된 학교교육이 급속히 국가주의화/민족주의화 하는 과정이었다. 다른 한편 근대적 학교교육은 이전의 신분제를 대신하여 사회적 이동의 주요 통로가 되었고, 입신출세에 대한 강
이 글에서는 노무라 다키(野村たき)라는 한 게이샤 여성의 사례를 통해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여성, 보다 구체적으로는 일본 식민자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었던 ‘화류계’(花柳界) 여성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를 기초로 식민자 사회 내부의 차이, 특히 젠더와 계층에 의해 초래된 차이와 다양성을 고찰한다. 다키는 메이지 중기 가난한 농가의 딸로 태어나 열한 살 나이에 ‘가족을 위해’ 게이샤 집에 팔려가 화류계에 입문한다. 이후 어린 딸을 데리고 식민지배 하의 조선으로 건너와 역시 게이샤로 전전하다가 일본의 패전 후 귀환하였다. 다키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팽창이 식민지 조선을 비롯해 제국의 여러 변경으로 이식시켰던 일군의 불우한 여성 중 한 명이었다. 서구의 제국들과 비교해 일본은 식민지에 ‘명예롭지 못한’ 일본 여성이 존재하는 것을 일종의 ‘필요 악’으로 생각했고 이들의 이주를 오히려 지원하기도 했다. 일본의 정책담당자들이나 식민자 사회에 팽배한 것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남성중심적이고 도구주
이 연구는 재일한인 1세 여성의 삶과 경험을 일과 노동에 초점을 맞추어 조망해 본다. 최근 학계에서 재일한인에 대한 연구관심이 급증했음에도 ‘여성’ 혹은 ‘젠더’에 초점을 맞춘 연구는 매우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재일한인 여성들은 다중적 억압을 받은 희생자이거나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가족과 자식을 지켜낸 숭고한 어머니로 찬양되거나 재일한인 공동체의 문화적 기표처럼 재현되곤 한다. 이 연구에서는 일차적으로 ‘일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이라는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재일 1세 여성들의 노동 양상을 드러내 보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나아가 재일여성의 일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여성노동의 성격과 관련해 제기하는 이론적 함의도 살펴본다. 이를 통해 민족차별과 가부장제에 의한 이중차별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재일여성들의 삶을 좀 더 다각도에서 검토할 수 있는 시각을 모색한다. 이 연구에서 활용한 주요 자료는 43건의 재일여성 생애사 자료로, 이 자료의 분석을 통해서 도출된 재일한인 1세 여성의
이 논문은 루스 베네딕트, 나카네 지에, 노마 필드의 일본문화연구를 비교 검토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시기에 활동하면서 일본연구에 어느 다른 학자들 이상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인식론·방법론적으로 매우 상이하여 일본문화를 보는 ‘세 개의 다른 눈(관점)’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분석한 텍스트는 베네딕트의『국화와 칼』, 나카네의『일본사회의 인간관계』, 필드의『죽어 가는 천황의 나라에서』이다. 분석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식론·방법론적 차이와 관련해, 베네딕트는 미국 문화인류학 전통, 특히 ‘문화와 인성’ 학파을 이끌었던 학자로 주로 일본인들의 행위를 특징짓는 심리적 동인에 관심을 가졌다. 반면 나카네는 영국 사회인류학 전통에서 훈련받았으며, 보다 사회학적인 ‘구조’와 ‘관계망’을 주요 개념틀로 사용하고 있다. 필드는 문학에서 출발하여 ‘문화연구’로 관심이 확대된 경우로, 개인사나 소수의 심층적 사례로 전체 사회를 조망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둘째, 베네딕트와 나카네의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민족의상인 화려한 기모노와 일본사회 속에 차별받는 소수자로 존재해 온 재일조선인 사이의 연관관계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재일조선인은 이미 1910년대부터 교토 니시진의 직조공으로 혹은 교토 전통염색제품의 생산과정에서 찌기와 헹구기 공정을 담당하면서 교토의 전통섬유산업을 저변에서 뒷받침 해 왔다. 교토 섬유산업은 이들 조선인 노동자들을 때로는 값싼 노동력으로, 때로는 경기 부침을 타개할 범퍼 노동력으로 활용해 왔고, 특히 패전 직후의 혼란기 동안은 그 산업 자체가 재일조선인의 주도적 역할 하에 부활·유지되기도 하였다. 한편 재일조선인에게 교토의 전통섬유산업은 중요한 생존수단이 되었고, 이차대전 이후에는 민족자본이 형성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사회 일반에서나 학계에서도 일본의 전통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교토의 섬유산업에 대한 재일조선인의 기여는 거의 가시화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이 논문은 교토 섬유산업에 대한 재
From 'Monuments' to 'Living Cultures': Tranformation of Cultural Tourism in Modern Japan Sug-In Kweon(Sookmyung Women's University) This paper explores recent changes in cultural tourism in Japanese society. Many observers and researchers of Japan have suggested that cultural tourism is undergoing a meaningful shift which can be summarized into such related phrases and campaigns as "From Monuments to Living Cultures", "From Dots to Lines", or "From Sightseeing to Experiencing". In this
이 연구에서는 1980년대 이후 진행된 일본사회의 변화가 민족문제를 둘러싼 일본인들의 관념과 실천에 어떤 영향을 가져오고 있는지 고찰한다. 민족적 동질성은 전후 오랫동안 일본의 공식적인 이념이자 널리 공유된 신화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진행되어 온 일본사회의 변화는 민족적 정체성과 관련된 그동안의 믿음을 도전하며 심각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가속화된 국제화의 결과, 일본사회 내부에 여러 이질적인 집단의 규모와 가시성이 크게 증가했으며, “일본인”과 “외국인” 사이의 분명한 범주화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이 민족문제를 둘러싼 기존의 관념과 관행에 가져온 영향을 고찰하기 위해 이 연구에선 닛케(日系)브라질인의 경우를 하나의 사례로 분석한다. 혈연적 동일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닛케브라질인들이 보여주는 문화적 이질성은 그동안 인종, 문화, 언어의 동일성에 기초해 온 ‘일본인됨’의 관념을 도전하며, 향후 보다 국제화되어 갈 일본사회에 중요한
이 글에서는 『조선공론』 기사의 텍스트 분석을 통해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형성되었던 일본인 사회의 젠더 담론을 분석했다. 특히 일본인 커뮤니티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던 이주 초기단계부터 전시 상황이 심화되는 1930년대 후반 이후까지의 담론적 흐름을 통시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당대 일본인 사회의 상황과 연결시켜보고자 했다.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1910년대 식민사회가 형성되던 초기의 지배적 논조는 여성의 성적 방종에 대한 강한 경계와 제국의 기획에 헌신하는 남성을 내조하는 좋은 아내(“良妻”)의 역할을 고취시키는 것이었다. 이 시기는 식민자 사회의 규모가 급팽창하면서 여성에 대한 통제와 규율이 식민통치의 안정화 과제와 맞물려 매우 중요하게 부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식민사회가 안정화 단계로 들어간 1920년대에는 여성 관련 쟁점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무관심했고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여성참정권과 같이 여성 관련 주요 쟁점을 다룰 경우에도 주로 본국에서 전개되는 논쟁들을 전달해주
이 연구는 1910~20년대 임금노동을 위해 도일했던 조선 여성의 존재와 그들의 노동경험이 갖는 의미를 탐구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방직공장으로 일하러 갔던 여성들, 당시“조선여공”으로 칭해졌던 이들에 초점을 맞추되, 다음과 같은 지점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첫째, 조선여공의 역사를 ‘여공애사’의 또 다른 판본으로 다루기보다는 해당 여성들의 주체성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본다. 둘째, 조선여공의 존재가 재일한인 1세, 특히 1세 여성에 대한 역사쓰기에 갖는 함의에 주목한다. 셋째, 에스닉 비즈니스(ethnic business)가 아닌 일본 핵심산업에 종사한 재일한인 노동자라는 점에 주목하여 재일한인의 경제활동과 가시성(visibility)의문제를 검토한다. 주요 분석 자료는 생애사, 문헌자료, 신문기사 등이다. 1910년대부터 일본의 방직여공을 대체하기 시작한 조선여공은 1930년 무렵에는 1만여 명을 상회하는 규모가 되었다. 이들은 한국근현대사에서 여성 해외노동이주의 선구자이자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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