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신 교수
Dong-Sin Nam
서울대학교 · 인문학
연구실 소개
남동신 교수의 연구실은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의 문학과 사상, 특히 유교 지식인과 승려 간의 교류, 불교 문헌의 편찬 및 보존, 석판 및 비석 등 고문서의 복원과 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고전학적 연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삼국유사』를 비롯한 고대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찰과 불교 유물의 신화적·철학적 성격을 분석하며, 고문서 복원과 고전 텍스트의 재구성에 있어 정밀한 비석 편철과 고서 복원 기법을 응용합니다. 이와 함께 조선 중기 이전의 불교 사상사와 문화사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연구 현황
연구 성과 추이
표시된 성과는 수집된 데이터 기준으로 산출되며,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요 논문
15Mogeun Lee Saek(牧隱 李穡) and his association with Buddhist priests through literary works
Through this article, I made full scale investigation into three different, 4-volumed, 6-volumed, and 10-volumed, works of Geumseokcheong-wan(金石淸玩) which belonged to the oldest books of rubbings. In the first chapter, I addressed two backgrounds of the edition of Geumseokcheong-wan. One is the new trend of the middle Joseon, especilly for paintings and calligraphic works, and the other is Jo Sok(趙涑, 1595~1668) who edited the 4-volumed book in 1655. Next, in the second chapter, above all I just f
This study analyzes Lee Saek (1328-1396)’s printing of a copy of the entire Tripitaka Koreana housed at Haeinsa Temple and its subsequent enshrinement at Sillŭksa Temple in Yŏju from an internal perspective. Lee Saek was one of the prominent leaders of the new reforms group at the forefront of social change during the final period of Koryŏ and beginning of Chosŏn. In this regard, his publication of the Tripitaka Koreana created a stir among the new reforms group. The division of the new reforms
이 글은 석굴암이 지상의 인간이 아니라 천상의 초월적 존재를 위한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육하원칙에 따라 석굴암의 유일무이함을 분석하였다. 방법론상 석굴암에 대하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인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근거하여, 누가, 언제, 어디서, 왜, 그리고 무엇을 창건하고자 하였는가를 논증하며, 마지막으로 ‘천궁’을 중심 개념으로 삼아 석굴암의 성격과 몇 가지 특징을 새롭게 조명한다.
In this paper, I tried another to decipher and revise the inscription of National Preceptor Hyeso(慧炤國師) of Chiljang-sa temple(七長寺)(IHC), based on the oldest rubbing collected at Seoul National Univ. Library. IHC possesses great value as historical material for researching on the history and culture of Beobsang-jong(法相宗) sect of the early Goryeo dynasty. However, as about 20%, 550 characters of the inscription on the stone has been defaced, IHC could not be made full use for research. So I deciph
In this article, I attempted to investigate two issues in relation to Hyecho's Memoir which is a travelogue written by a Silla monk Hyecho. The first issue I intended to examine is how Paul Pelliot determined that this text was indeed the legitimate Hyecho's Memoir. This issue is important to understand, because Pelliot discovered only a handwritten copy, and the section containing the title of the text and the identity of the author was lost. Particularly, in relation to the discovery of Hyecho
In this article, five members of the Goryeo royal family who became National preceptors(國師) will be examined. They lived during the middle period of the dynasty, and served the Hwa'eom-jong/華嚴宗 order when they were appointed to the seat. Hopefully their lives will reveal the relationship that existed between the state and Buddhism during that time, and help us determine the nature of that relationship. The princes who became Buddhist priests, left the secular world to serve a religious mission t
본고는 고려 말에 성립한 僞經인 『現行西方經』을 분석함으로써, 여말선초 불교계의 현실 인식과 대응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現行西方經』은 公山 居祖社의 元 (참)이 1298년 정월 하룻밤 동안 神僧 樂西와 나눈 대화를 集錄한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을 보면 禪, 淨土, 密敎, 占卜, 심지어 민간요법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요소가 뒤섞여 있지만, 僞經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즉 末世의 중생은 신격화된 佛의 威神力에 도움 받아서[念佛, 誦呪, 擲 ] 자신의 罪過를 씻고[懺悔] 마침내 구원받을 수 있다[淨土往生]는 것이다. 여기에서 13세기 말 元 이 佛說의 권위를 부여하여 '經'을 僞撰까지 하기에 이른 강렬한 종교적 신념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末法時代를 살아가는 대다수 衆生들에게, 유일하지는 않지만 가장 뛰어난 구원의 방식은 他力信仰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現行西方經』은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그야말로 종교적 약자들을 위한 僞經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동아시아의 문인지식인’이라는 관점에서, 崔致遠(857~?)과 그가 남긴 桂苑筆耕集을 검토하였다. 먼저 제1장에서는 기왕의 연구성과를 간략히 검토하면서, 일국사적 관점이나 ‘육두품지식인론’의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신 ‘동아시아의 문인지식인’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연구할 것을 제언하였다. 제2장에서는 文章 立身이라는 관점에서, 최치원의 도당 유학과 과거 급제 및 高騈의 幕僚 생활을다각도로 살펴보았다. 제3장에서는 桂苑筆耕集과 東文選(1478년)에 수록된 桂苑筆耕集을 문체를 중심으로 비교 검토함으로써, 桂苑筆耕集으로 상징되는 당의 문장이 신라 사회로 확산되는 양상을 추적하였다. 또한桂苑筆耕集의 문장은 이념적으로 유교와 도교적 색채가 강한 데 반하여, 귀국 이후 최치원의 문장에서는 불교적 색채가 두드러졌음을 지적함으로써, 한문 문장의 신라적 수용의 특색을 추출하고자 하였다. 향후 이러한 결과를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한다면, 한국 사회가 한문 문장을 수용한 양상과 특징을드러낼 수 있을 것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佛國寺復役功德記」(1779년) 탁본 자료 이 글은 필자가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문헌실에서 최근 발굴한 탁본 자료를 학계에 소개하는 글이다. 이 자료는 ‘佛國寺重修記’(청구기호 枚4016 99)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었는데, 기존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扁額 「佛國寺復役功德記」(1779년)의 유일한 탁본으로서, 조선 후기 불국사의 重創과 변모를 연구하는데 기여하리라 기대된다. 우선 제 1장에서는 탁본의 서지사항과 도서관 입수 경위, 功德記의 찬자와 찬술 시기, 그리고 다른 扁額 자료와의 비교 등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이어서 제 2장에서는 향후 자료 이용상의 편의를 위하여 판독문과 역주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제 3장에서는 사료적 가치 및 연구 방향에 대하여 私見을 제출하면서, 현재까지 알려진 불국사 관련 문자자료의 목록을 덧붙였다. 「佛國寺復役功德記」 탁본 자료는, 20세기 정부 차원에서 단행된 두 차례의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선행하여, 이미 18세기
본고는 원각사탑에 대한 지난 백 년간의 근대 학설사를 층수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적으로 성찰하였다. 먼저 제Ⅱ장에서는 근대 개항기에 조선을 여행한 서양인들이 종래 한성의 ‘非美’내지는 흉물로간주되던 원각사탑을 한성의 ‘奇觀’내지 ‘偉觀’으로 재발견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추적하였다. 이들은 불탑에 관한 예비지식이 거의 없는 서양 출신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원각사탑에 대하여 객관적인 견문기를 남길 수 있었는바, 그들이 접촉한 조선 지식인들을 통하여 대체로 13층설을 받아들였다. 이어서 제Ⅲ장에서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일인 관변학자들이 원각사탑을 본격적으로 학술 조사하고, 일제식민기 동안 조선총독부가 원각사탑을 문화재로서 관리하는 과정 및 그 문제점을 언급하였다. 특히 지난 100여 년 동안 원각사탑 층수 문제에 관하여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세키노 타다시(關野 貞)의 학설이 10층설에서 13층설로, 다시 다층설로 변하는 문제를 집중 조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제Ⅳ장에서는 해방 이후부터 1
This paper provides an outline of research papers on pre-modern Korean history published in recent years (2017-2018) [and discusses some general lessons to be learned]. In the introductory section, the general problematic is outlined. In four subsections dedicated to the historical periods Ancient times, Koryŏ, Early Chosŏn and Late Chosŏn, section II provides a reevaluation of research in retrospect and prospect, reviewing the major achievements. Section III examines several points to be impr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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