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승 교수
Yenseung Lee
서울대학교 · 사회과학
연구실 소개
이연승 교수의 연구실은 한대 사상사와 유교 경학의 정치적·철학적 의미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공양학을 중심으로 한기의 『춘추』 해석과 획린 사건의 상징성, 그리고 유교 사상이 정치 이데올로기로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다룹니다. 또한 가의와 같은 한대 사상가의 인성론과 제도론을 출토문서 자료와 결합해 재구성하며, 전통 사상의 체계화 과정을 고찰합니다. 근대 중국 사상사의 전환기에서 사상사 연구의 방법론적 전환과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의 영향까지 포괄적으로 연구합니다.
연구 현황
연구 성과 추이
표시된 성과는 수집된 데이터 기준으로 산출되며,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요 논문
15‘西狩獲麟’이란 『춘추』 哀公 14년의 경문으로, 필시 당시로서는 흔히 볼 수 없던 모습의 동물을 우연히 포획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양전』의 저자들은 『춘추』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이 경문을 가지고 공자의 『춘추』 저작 의도를 설명했으며, 나아가 이를 漢朝의 受命改制와 연결하여 논의하였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공양학은 전한 초중기의 顯學이 될 수 있었고, 微言大義를 표방했던 공양학에서는 곡량학이나 좌씨학보다 활발하게 획린과 공자의 『춘추』 저작 의도를 논의할 수 있었다. 전한 중후기 이후 동한에 이르기까지 공양학 외에도 많은 한대의 춘추학자들이 獲麟과 공자 및 『춘추』의 문제를 현안과 관련하여 다양하게 논의하게 되었으며, 이 문제는 양한 시대 춘추학의 담론에서 중요한 계기를 이루었다. 본고에서는 한대 춘추학자들의 대표적인 획린 해석을 살펴봄으로써 당시의 경학이 얼마나 시대적인 상황, 특히 정치적인 상황을 민감하게 반영하면서 자기 변신을 꾀하였는지 하는 궤적을
이 글은 1890년대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약 120년 정도의 시간을 통하여, ‘사상’ 및 ‘사상사’라는 용어와 관념을 둘러싸고 어떠한 중요한 논의들이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을 과제로 삼으려 한다. 중국사상사 연구의 영역에서 나타났던 중요한 현상들을 대체로 시간적 추이에 따라 서술하되, 중요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담론이나 대표적인 연구자들의 사례를 들어, 백여 년에 걸친 중국사상사 연구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첫째, 청일전쟁의 패배 이후 전통적 학술 연구의 풍토에서 근대적 학문 체계를 수용해가는 과정에서 ‘국학’의 이념이 부각되었다. 둘째, 1920~30년대에는 서양철학의 개념이 소개, 도입되어 많은 지식인들의 주목을 받았고, 중국철학사 연구의 전범이 만들어졌으나, 동시에 철학(사)보다는 사상(사)라는 용어의 적합성이 고려되기도 하였다. 셋째, 마르크스주의는 1920년대에 이미 중국사상사 연구에 수용되기 시작했으나 1950년대로부터 80년대까지는 본격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의하여 전통 중
賈誼는 서한 文帝 시기의 뛰어난 문인이자, 당시의 대내적, 대외적 정치 문제에 대해 예리한 진단과 대책을 제시했던 정론가다. 기존의 연구에서 가의는 한 제국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던 사상가라고 평가되어 왔으며, 또한 그의 사상은 醇儒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유가를 중심으로 하면서 법가나 도가, 황로학 등 다양한 사상이 혼융된 것이라고 이해되어 왔다. 가의가 한 제국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면, 그의 사상 역시 당시까지의 사상을 그저 반복하기보다는 새로운 제국 질서의 구축에 합당한 체계를 구성하고 있으리라는 것이 본고의 문제의식이다. 가의의 저작 여부가 문제시되었던 『가의신서』의 「道術」․「六術」․「道德說」이라는 세 편의 자료는 최근 출토문헌의 연구 성과에 힘입어 대체로 가의의 사상이라는 것이 인정되었다. 본고는 이 세 편을 주요 자료로 하여 가의의 우주관과 윤리관이 공히 德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논했으며, 六藝를 한 제국 지배와 수성을 위한 제도 및 사회 윤리의 근간에
It is well known that Hu-Shi(胡適) gradually abandoned the term ‘history of philosophy’ and began to use the term ‘intellectual hoistory’ from the late 1920s. I don’t think it is just a shift from philosophy to thoughts. It is more appropriate to say that Hu’s view has expanded from history of philosophy to cultural history or the history of religions. Hu’s study of the Han Confucianism is the result of exploring the theoretical aspects and social role of the Confucianism as a religion. Hu-Shi did
馬王堆의 「帛書五行篇」에 이어 또 다시 郭店에서 「帛書五行篇」과 같은 내용의 「楚簡五行篇」 및 「六德」편 등의 儒簡들이 출토되자, 가의가 초 지역에 머물 때 이들 초간과 접하게 되었으리라는 추정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배경으로 본고는 가의의 인성론에 대해서 역시 이들 공맹지제의 유자들이 펼쳤던 인성론과의 연관 하에 고찰한 것이다. 가의는 인성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서술한 적도 없고, 일관성 있는 사고를 펼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의의 저작 속에서 성에 관하여 언급한 대목을 살펴보면, 가의는 ʻ生之謂性ʼ이라는 선진 사상가들의 일반적인 입장을 답습하고 있으며, 그의 성 개념에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생명현상의 다양한 양상, 즉 형색이나 그 기능, 욕구, 자질 등이 두루 포함된다. 가의가 性보다 習을, 또한 性보다 勢를 더 중시하는 점은 性과 習의 관계 및 性과 勢의 관계를 언급하는 郭店 儒簡 「性自命出」의 사고와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또한 가의가 德의 六理
청말 민국 초에 유교 전통이 본격적으로 도전받는 상황에서 유교의 기원을 추구하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胡適의 「說儒」는 그 가운데에서 많은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반향을 일으켰으며, 胡適 자신도 매우 자부하던 작품이었다. 胡適은 章太炎의 「原儒」라는 짧은 문장으로부터 계발을 받았으며, 거기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유교의 기원과 성격에 대한 주장을 펼쳤다. 胡適은 ‘儒’의 字意를 『說文解字』로부터 도출했던 「原儒」의 아이디어를 수용하였고, 나아가 『周易』 전체의 저자를 殷의 遺民이라고 함으로써 儒와 儒의 문화 전체를 殷의 遺風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았다. 미국 유학 시절부터 기독교를 접하고 기독교 성서를 읽었던 胡適은 직, 간접적으로 유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는 관점에서 유교를 설명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망국의 히브리 민족들이 메시아를 갈망하였듯이 殷의 유민도 殷을 부흥시킬 성인의 출현을 기대하였는데, 공자가 바로 그 성인의 역할을 감당했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호적은 『詩經』과 『左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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