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요근 교수
Yo-Keun Jeong
서울대학교 · 사회과학
연구실 소개
정요근 교수의 연구실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지방 제도, 행정 구조, 공적 교통통신 시스템의 역사적 발전을 중심으로 연구한다. 특히 고을의 읍치 위치, 역(驛) 제도의 구성과 기능, 원(元) 침략기 동안의 제도적 변화를 실증적 자료와 문헌 분석을 바탕으로 탐구한다. 연구는 전통적 지방행정의 유형화와 지역 사회 기반의 기능적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고대에서 근대 이행기까지의 국가 기반 시스템의 변화를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연구 현황
연구 성과 추이
표시된 성과는 수집된 데이터 기준으로 산출되며,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요 논문
15Koryŏ’s postal station system had been independently operated for over two hundred years since the foundation of the dynasty. During the later half of the 13th century, however, the system was controlled by the Yüan government when Koryŏ fell to the Mongols(Yüan dynasty). Political control of the system became increasingly involved through large-scale projects driven by the Yüan government, such as Japanese expeditions and the delivery of grain to Southern China, Manchuria and Kor
The Growth of the Imjindo-ro(臨津渡路) Route and Its Influence during the Middle and Late Era of the Kory Dynasty
본 논문에서는 한반도 중부 지역의 8개 전통 대읍을 사례로 들어, 고려와 조선 시대 고을 관아가 있었던 읍치의 위치를 실증적으로 검토하였다. 문헌 자료와 고고 발굴조사 자료를 폭넓게 검토한 결과, 분석 대상 8개 고을의 읍치는 고려와 조선 시대 모두 동일한 장소에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읍치가 있던 장소는 다수의 인구가 거주하는 고을의 중심 도회지였다. 고을의 관아는 읍치의 중심 시설이었으며, 대읍의 읍치 지역에는 복수의 도회지 사찰이 건립되었다. 대읍 중에는 관아를 둘러싸는 읍성이 축조되는 곳도 있었지만, 읍성이 모든 대읍에 존재했던 시설은 아니었다. 읍치와 멀지 않은 곳에는 유사시 방어를 위한 배후성이 존재하였다. 배후성은 대체로 산 위에 축조된 산성이었으며, 읍치와의 왕래에 최소 2시간 이상 걸리는 먼 지점에 위치하였다. 한때 학계에서는 배후산성에 고려 시대 고을의 관아가 있었다는 산성읍치설이 제기되었으나, 본 논문의 논증 결과 고려 시대 산성읍치설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오류로
驛은 삼국시대 이래 전근대시기 중앙정부에 의해 운영되었던 핵심적인 공적 교통통신기관이었다. 이 글은 고려전기 역의 성격을 인적 구성의 측면과 지방 행정단위로서의 측면에 주목하여 파악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고려전기의 驛屬層은 신분적 측면에서 驛吏, 驛丁戶, 驛白丁, 驛奴婢 등으로 구분되었다. 그 중에서 역정호층은 急走나 轉運 등 역의 실무를 담당하였던 驛役의 핵심담당층이었으며, 사실상 역리층도 역정호층의 상층부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역의 기능이 온전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역정호층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으며, 국가에서 전국의 역을 규모에 따라 분류할 때에도 역정호의 인원수가 주요한 기준이 되었다.또한 역속층은 지역공동체적 기반 위에 존재하였다. 이러한 지역공동체적 기반은 역정호층을 역속층 내부로부터 안정적으로 수급하도록 하는 주요한 장치가 되었다. 또한 중앙정부는 역속층에 대한 신분적 차별을 공고히 하는 법제적 규정을 마련하여 역속층을 역에 세습적으로 긴박시키고자
원간섭기 원과의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고려의 역 이용수요는 급증하고 있었다. 이는 고려조정의 역로망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驛役 담당층의 역역 이탈을 야기하는 등 역로망의 안정적인 운영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였다. 그러므로 중앙정부에서는 역 이용자들에 대한 효율적 통제와 역역 담당층의 안정적 역역 수행을 위한 여러 조치들을 강구하였다. 역 이용수요를 억제하는 법규를 강화하거나, 按廉使 등 외관의 역 이용자에 대한 감시기능을 확대하기도 하였다. 또한 22역도제로 대표되는 기존의 역로망 운영에도 변화를 수반하여, 館驛使를 대체하는 程驛別監이 각 역도에 파견되었다. 그리고 정역별감의 편성단위나 관할구역은 안렴사의 관할인 5도의 하부로 편제되는 추세에 있었다. 한편 원간섭기 이후 역역 담당인원의 확보방식은 驛丁戶와 驛白丁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역역 담당층 확보방식 대신, 역 외부로부터 새로운 인원을 역역에 투입하는 방식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기한부 입역의 인원에서부터 역 인근 거주자, 征東行
본 논문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고려와 조선 시대 고을 편제의 연속과 변동을 분석하여, 고려 중기의 지방 제도 변동과 원 복속기 고을 읍격・관격의 변화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인구와 물산의 핵심 영역인 한반도 중서부와 남부 전체에서 12세기의 지방 제도 개편이 조선 시대 지방 고을 편제 단위의 기본 틀을 제공하였음을 논증하였다. 본 논문의 이러한 분석은 1018년에 제도적 완성을 이룬 고려 특유의 주현-속현 제도가 불과 1세기 남짓 지나지 않은 12세기에 상당한 수준으로 변형되었으며, 원 복속기에 이르러 사실상 해체의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려의 주현-속현 제도가 조선 건국 전후에 새로운 지방 제도로 개편되었다는 통설적 이해는 재고되어야 한다.
Digital map making method can contribute to restoring the late Joseon period’s elaborate local administrative map on the basis of literature materials such as a record on the total number of the late Joseon’s houses and population called ‘Hogu-chongsu’. The restoration of the late Joseon’s local administrative map also visually shows us highly accurate and detailed information on territories of a county surrounded by other counties called ‘Wolgyeongji’ in that period. The visual restoration of t
대표 연구 분야
정요근 교수의 연구를 Nubint에서 더 깊이 살펴보세요
이 연구실의 논문을 앱에서 열어 AI와 함께 읽고, 핵심을 요약하고, 내 글에 인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