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ung-Kun Song
Sungkyunkwan University
研究室紹介
Professor Byung-Kun Song'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economic and social history, with a focus on the Industrial Revolution in 19th-century Britain, agricultural transformation, financial crises, and transnational labor migration. The lab explores institutional developments such as parliamentary enclosure, the delayed adoption of joint-stock companies, and the socio-economic impact of financial panics like the South Sea Bubble. It also investigates migration patterns, particularly Korean emigration to Hawaii in the early 20th century, within the broader context of global capitalism and forced globalization. The lab emphasizes interdisciplinary, micro-historical analysis using archival data and quantitative methods to reassess long-standing historical narratives.
Research Overview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Selected Papers
15농업혁명에 대한 최근의 연구를 살펴보면 삼분제의 성립이나 경작규모의 확대와 같은 사회적 및 제도적 변화로부터 생산성으로 논의의 초점이 이동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학자들에 따라 ‘혁명적’ 농업변화의 시기를 서로 다르게 설정하였다는 점도 눈에 띤다. 그 결과 예전과 달리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가 더 이상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 연구는 위의 기간이 여전히 학문적으로 중요성을 평가받아야 할 시기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이 기간에 기술진보가 농업생산을 증대시켰고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의 대두로 농업부문에서 노동력이 감소될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의회 인클로저가 이 시기에 변화를 이끈 핵심적인 제도적 추동력임을 밝힌다. 기존의 ‘자발적’ 인클로저와 달리 의회 인클로저의 결정적 특징은 ‘강제성’에 있었다. 이 연구는 그간의 연구들이 의회 인클로저의 결정요인으로 중요시했던 몇몇 변수들―문자해독률과 도회지 여부―을 열린교구-닫힌교구 모형을 이용하여
공업화의 전개와 기업규모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영국경제는 19세기 중반까지 유한책임제에 기반을 둔 주식회사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이 연구는 주식회사의 도입이 지연된 이유에 대한 주장들을 살펴보고 그 타당성을 논의한다. 주식회사 건립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주식회사 건립이 얼마나 성사되었으며 건립된 기업들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유지되었는가를 탐구함으로써, 부실한 성과가 주식회사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야기하였다는 점을 보인다. 또 당대의 여론주도층이 주식회사도입에 반대한 근거가 무엇인가에 대해 분석한다. 그리고 1850년대 이후 주식회사 도입으로 정부가 정책을 선호하게 된 배경과 사회적 호응이 뒤따른 사정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19세기 영국 경제가 주식회사제도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는 사회의 현실적 수요에 법조계가 늑장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주식회사제도의 도입이 지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완고한 신뢰가 일정한 역할을 했으며, 보다 중요하게는 주식
이 논문은 1903-1924년에 하와이로 이주한 한국인 이민자에 대해 분석하였다. 하와이로의 이민은 1차 세계화시대의 대규모 국제적 노동이동 추세에 한국도 보조를 같이 했음을 보여주며, 또한 최초로 국가에 의해 공식적으로 허용된 이민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녔다. 이 논문은 하와이 이민이 전개된 과정과 요인에 대한 연구를 종합하여 이 이민이 지니는 특질을 분석하였다. 특히 조선, 하와이, 일본, 미국의 상황과 정책이 상호작용한 측면을 강조하였고, 순수한 이민자 배출요인-흡인요인 분석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양상이 관찰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민의 추이, 이민의 규모, 이민자의 특성, 이민사업 추진과정상의 특징, 이민 중단의 이유 등을 검토함으로써, 하와이 이민을 강제적 세계화라는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1720년 발생한 남해회사 거품은 지난 2세기를 거치면서 비이성적 투기를 대표하는 사례로 널리 이해되었다. 그러나 실제 남해회사의 사례는 비판적 평판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본 연구는 남해회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연구 성과들을 반영하여 역사적 재평가를 하고자 한다. 우선 남해회사는 통상의 현대적 민간기업과는 달리 정부가 주도한 민관 합작 프로젝트로 탄생했다. 중상주의적 경제 환경과 설립목적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거품의 실체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둘째, 주가의 급변동은 남해회사에 고유한 현상이 아니었다. 영국 및 주변국들의 금융혁신과 대서양무역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결과였다. 셋째, 남해회사 주식에 대한 투자를 비이성적 과열이라고 보기 어렵다. 거품에 ‘올라타는’ 합리적 투자자와 남해회사의 노예무역 실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마지막으로, 당시의 비판과는 달리 월폴이 주도한 사후처리 과정은 대체로 긍정적인 성과를 냈다. 여론의 공분과 금융제도에 대한 과도한 규제 도입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이 연구는 산업혁명이란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터넷 백과사전들의 수록 방법과 내용 및 관심범위를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인터넷매체가 영국사 연구와 교육에 활용되기에 적합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가를 평가하였다. 먼저 저자, 자료의 연결성, 보완성, 그림/표/연표의 수록여부, 참고문헌 등 자료의 기본적 특성에 대해 각 자료별로 조사하였다. 다음으로는, 산업혁명의 내용 중 기술진보와 사회적 효과에 관해서는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자료가 양호한 평가를 받았다. 산업혁명의 연속성/단절성, 전제조건, 생활수준 등 쟁점이 되어왔던 주제에 관한 조사에서는 전반적인 논의수준이 낮고 관심의 쏠림현상이 두드러졌다. 마지막으로 최근의 연구동향을 반영한 세계화적 관점, 수요부문의 역할 그리고 재산권/법치주의 등의 세 주제에 관해서는 자료별 편차가 크게 나타났다.산업혁명과 같이 개념이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관련연구가 장기간 축적된 주제에 대해서조차 인터넷백과사전들은 매체의 장점을 활용하는 측면에서나 내용
18-19세기 굴뚝청소 아동의 재해는 강렬한 인상에 비해 연구가 적게 진행된 주제였다. 이 연구는 굴뚝청소 아동의 작업 중 사고와 직업병을 당시의 조사 자료와 통계를 통해 살펴보고 이를 현대 산업재해와 직업의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논하였다. 첫째로 교구도제 제도라는 고용 관행과 아동들의 구체적 노동조건 및 재해의 성격과 요인들을 분석을 하였다. 음낭암을 포함한 여러 재해에 대한 동시대인들의 분석과 진단을 살펴보고,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해 권고되었던 처방과 청소도구의 사용과 같은 제도적 개선책에 대해 논의하였다. 둘째, 동시대인들 특히 굴뚝청소 장인, 의사, 개혁운동가, 반개혁인사 등이 지녔던 인식과 태도를 검토하였다. 굴뚝청소에 아동 고용을 금지하자는 주장의 근거를 살펴보고, 반개혁파는 이와 같은 전면적 개혁을 피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택했는가를 논의하였다. 마지막으로, 개혁운동의 전개과정을 고찰하였다. 개혁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하여 개혁가들이 활용한 방법들을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19세기 전반은 직종의 분화가 급속히 진전된 시기이기도 한데, 이 시기 직종별 재해위험도에 관해서는 다양한 직종을 망라하는 연구가 극히 부족하다. 이 논문은 1851년 직종센서스의 실명자통계를 주 분석대상으로 하고 1840년대 의회보고서를 참고하여 각 직종의 실명위험도를 추정하였다. 직종센서스의 실명자통계가 지니는 여러 특질을 밝히고, 특히 일부 항목이 직종이 아니라 가족관계나 재산소유상태에 따라 구분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응답이 조사시점 기준인지 과거 경력기준인지 불확실하다는 점이 야기하는 분석상의 난점을 논의했다. 이러한 자료의 성격상 정확한 실명률을 측정하는 것이 어려운데,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지표를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논하였다. 그리고 그 지표를 기준으로 직종별 실명위험도를 구해 상호 비교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연구결과 음악교사, 동광부, 석탄광부, 채석공, 마부, 여성모자제조공, 면직공 등이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 결과를 18
영국이 세계 최초로 산업혁명을 경험하게 된 이유에 관해 그간 많은 연구와 논쟁이 이루어져 왔다. 이 논문은 기존의 연구들을 대표하는 세 접근법, 즉 영국 예외주의적 설명, 생산요소 상대가격 설명, 산업계몽주의 설명을 대상으로 하여 연구와 논쟁의 진행과 성과에 관해 재조명하였다. 사회문화적 요인을 강조하는 영국 예외주의적 접근법은 기준이 주관적이며 국제적 비교가 어렵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생산요소의 상대가격이 기술진보의 속도와 방향을 결정했다는 접근법은 일반화에 유리하고 국제적 비교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영국을 이은 유럽의 후발공업국들에 관한 설명력은 미흡하다는 한계를 지닌다. 석탄의 매장과 국제무역망의 장악을 강조한 포메란츠의 연구도 세계적 맥락에서 영국이 유리했던 요인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의 경험을 설명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산업계몽주의는 범 유럽적인 계몽주의 사조의 연장선에 산업혁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영국은 지식과 기술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This paper examines the practice of letting plots of land to the agricultural laborers in the early nineteenth-century England. It criticizes the most influential works on this subject, and suggests ways to reconcile the disagreements among them. Most significantly, it distinguishes between allotments proper and potato grounds and emphasizes that this distinction brings a fundamental change to the existing interpretations of the level of allotment rents and the geographical distribution of allot
How Were English Localities Governed in the Eighteenth and Early Nineteenth Centuries? ―The Role and Importance of the Petty Sessional Division―
T. S. 애슈턴의 『산업혁명: 1760-1830』은 1948년에 출간된 이후 영국의 산업혁명에 관한 권위 있는 분석서로서 명성을 유지해 왔다. 무엇보다도 지난 70여 년간 수많은 경제사학자들에게 산업혁명을 이해하는 기본 틀을 제시해왔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최근 번역본의 출간을 계기로 애슈턴의 주요 주장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검토하였다. 특히 그의 주장이 산업혁명 논쟁사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어 온 두 측면, 즉 생활수준 논쟁과 기술진보의 원천에 초점을 맞춰 의의와 한계를 논하였다. 애슈턴은 자료의 제약, 분석방법의 한계, 관련 분야의 지식 부족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경제사 논쟁 구도에서도 여전히 의미가 큰 논의를 펼침으로써 산업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특질을 밝히는 데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