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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gyu Park

Korea University · 経済学

研究室紹介

Professor Hong-gyu Park's research focuses on the political thought, governance structures, and ideological foundations of Joseon dynasty rulers, particularly examining the interplay between Confucian ideals and realpolitik in early Joseon statecraft. His work explores the evolution of royal authority through figures like King Taejong and King Injo, analyzing how rulers balanced Confucian principles with pragmatic power politics, including the use of political 'shu' (techniques of rule), institutional reforms, and the legitimization of political upheavals. He critically examines the tension between public law and private sentiment, the role of moral legitimacy in regime transitions, and the adaptation of Song-Ming Neo-Confucian thought to political crisis and state-building.

Joseon dynastyConfucian statecraftpolitical legitimacyTaejongstate formation

Research Overview

Papers
48
Total Citations
193
Papers (5y)
7
Primary Field
経済学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Publications per year (5y)
7total
2020
2021
2023
2024
2026
Citations per year (5y)
27total
20202021202320242026

Selected Pa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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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rticle|23 citations·2006
태종과 공론정치: '유신의 교화'
박홍규, 이세형

본 논문은 태종조 공론정치의 모습을 확인함을 통해, 권력정치가를 넘어선 유가적 군주로서의 태종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태종이 태종 10년(1410년) 7월에 선언한‘유신의 교화[惟新之化]’에 주목한다. 유신의 교화를 기준으로 집권 전반기의 태종이 왕권강화를 목표로 한 권력군주이자 무가적 군주였다면 후반기의 태종은 전반기에 다져진 정치제도와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스스로가 쿠데타를 통해 부정했던 본래의 성리학적 정치질서로 복귀하려고 하는 유가적 군주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집권 후반기의 태종은 분명한 공론정치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세종조의 공론정치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태종조 전반기의 권력정치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지속된 조선의 제도화와 태종의 왕권강화정책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태종의 사례가 보여주는 공론정치와 왕권의 긍정적 관계는, 오늘날 주목받는 토의∙심의민주주의에서 리더십의 역할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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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18 citations·2006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의 권력정치: '양권'(揚權)의 정치술(政治術)을 중심으로
박홍규, 방상근

본 논문에서는 무인정변(1398) 이후 형성된 태종(太宗)집권기의 정치상황속에서 나타나는 권력정치의 모습을 한비자(韓非子)의 ‘술’(術)의 개념을 통해서 설명해보고자 한다. 즉 그의 통치에서 권력정치가 드러나는 이거이 부자 사건과 민씨 형제 사건, 그리고 심온 사건에서 태종은 한비가 말하는 ‘양권’(揚權)을 위한 정치적 ‘술’(術)을 사용했던 ‘법가적(法家的) 군주’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각각의 사건에서 태종이 어떻게 술(術)을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 속에서 술치(術治)가 어떤 모습으로 발현되고 완성되고 쇠퇴해 가는지를 분석한다.그러나 그의 권력정치는 숙청을 위한 숙청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 시기에는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유교적 정치이념과 프로그램의 제도화를 달성하고, 유교국가 조선의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그의 술치는 권력정치에서 출발하여 정권의 취약한 태생적 정당성을 극복하고 유교적 이념과

3
Article|17 citations·2023
When do homeowners feel the same as renters? Housing price appreciation and subjective well-being in South Korea
Woo Chang Kang, Sunkyoung Park
SJR Q1Cities
Economics and EconometricsEconomics, Econometrics and Finance
4
Article|10 citations·2007
정치가 태종의 사정(私情)과 왕권(王權)
박홍규, 이종두

태종은 반역사건들을 다루거나 정적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신하들과 공법(公法)과 사정(私情)의 논쟁을 벌였다. 이 때 신하들은 태종이 모든 사건들을 공법에 따라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다. 만약 태종이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면, 그는 신하들의 지지 속에서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태종은 사정(私情)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였으며, 직접 사정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태종은 사정이라는 신하들의 일관된 비판에 대해 다양한 대응방식을 보여주었다. 첫째, 태종은 왕실과 종친들에 대해서는 신하들의 강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정을 보였다. 이는 왕실과 종친의 단합에 기여하였다. 둘째, 태종이 자신의 행위를 사정 때문이 아니라 적절한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는 경우이다. 이 때 태종은 법의 원칙적인 적용보다는 정치적 결과를 계산하는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셋째, 태종이 사정을 정치적 수사로 사용하는 경우이다. 태종은 이를 통해 신하들이 공법과 같은 원칙에 충실한 것에 그치지 않고

5
Article|9 citations·2014
이귀(李貴)의 제도개혁론과 사공(事功)의 문제
박홍규, 박설수

본 논문에서는 인조 초기 제도개혁론자인 이귀(李貴: 1557~1633)의 제도개혁론을 다룬다. 반정 이후 인조정권은 산적한 과제들을 안고 있었다. 임진왜란과 광해군의 난정 이후 세수확보, 인구파악, 군적충원 등 조선의 기본적인 행정시스템이 붕괴상태에 이르렀고 설상가상으로 청과의 전쟁위기는 날로 심해져 재정압박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귀는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는 비상한 방법 즉 기존의 법질서나 관행에 구애받지 않는 과감한 제도개혁을 통해 나라를 되살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귀의 제도개혁안은 주자(朱熹: 1130~1200)와 대척점에 있었던 사공파 진량(陳亮: 1143~1194)과 문제의식과 해법 차원에서 유사한 것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사공파가 아니라 주자의 정치사상을 계승한 나라였으므로 이귀는 사공파의 논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는 없었다. 만약 조선의 정치가가 주자를 버리고 사공파의 후예로서 자처하였다면 그는 거의 정치적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었다. 따라서

6
Article|8 citations·2016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주자학적 정당성 검토
박홍규, 김기연

이 글의 목적은 맹자의 역위론(易位論)에 대한 주희(朱熹)의 해석을 바탕으로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정치적 정당성을 검토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존 연구에서는 전 임금인 광해군(光海君)의 대과(大過)만을 근거로 계해정변(癸亥政變)을 주자학적 명분을 따른 반정이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계해정변이 반정으로 정당화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대해 맹자의 역위론을 근거로 반정의 정당성을 검토한 계승범의 연구(2014)가 있으나, 계해정변의 주자학적 정당성을 맹자의 역위론에 따라 검토하는 작업은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연구는 오히려 주희가 지적하고 있는 잘못된 『맹자』 해석의 사례에 해당한다. 주희는 맹자의 역위론을 해석하면서 두 가지 조건을 추가적으로 제시했다. 하나는 “친척지현(親戚之賢)” 즉, 친척 중에 어진 자를 골라 새로운 임금으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삼인지심(三仁之心)”으로 귀척의 경이라도 역위를 행하기 위해서는 삼인의 마

7
Article|7 citations·2005
나카에 쵸민(中江兆民)의 평화이념과 맹자
박홍규

일본이 입헌군주제를 거쳐 민주제로 가느냐, 아니면 제국주의로 가느냐의 기로에 서있던 시기에 나카에 쵸민(中江兆民, 1847-1901)은 삼취인경륜문답(三醉人經綸問答)(1887)을 간행한다. 거기에서 그는 아마도 가장 일찍이 서구의 평화‘사상’을 일본에 소개하면서, 자신의 평화‘이념’을 제시하고, 나아가 당시 일본이 취해야 할(취할 수 있는) 외교의 방향을 개진하였다. 삼취인경륜문답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의 한 사람인 양학신사(洋學紳士)의 입을 통해 개진되는 쵸민의 평화론의 내용은 민주제․연방제․군비철폐론이라는 세 개의 중요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얼핏 보면 쵸민이 루소에서 칸트로 이어지는, 자유와 평화의 문제에 대한 근대 서구의 논의를 수용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자신의 평화론을 구상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쵸민의 사상형성에 동양의 지적전통이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쵸민의 평화사상을 동양적 사유와 관련하여 본

8
Article|7 citations·2008
정도전(鄭道傳)의 ‘재상주의론’ 재검토
박홍규, 방상근

기존의 연구에 의하면 정도전이 구상했던 통치체제는 주례를 모델로 하여 군주와 재상(신하)이 더불어 나라를 다스리는 군신공치(君臣共治)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내용은 주자의 ‘재상중심의 정치체제론’을 이어받아서 “왕은 관념상만 절대권을 가지고 재상을 임명하는데 그치고, 정치운영의 실권은 재상이 쥐고 통솔해야한다”는 재상(신권)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선행연구들이 말하는 ‘재상주의론’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이론의 측면에서 재상주의의 논거들을 비판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군신공치론’에 대한 재검토를 시도한다. 그리고 나서 정도전이 고려왕조를 타파하고 조선왕조를 세우는데 있어서 실제로 구상했던 통치원리가 무엇이었는가를 ‘유신(惟新)의 정치’를 중심으로 밝혀내고, 이를 현실정치 속에서 어떻게 실현해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조선왕조의 통치체제를 구상하고 실천해갔던 정도전의 정치이념에 관해서 재상주의론을 극복하고,

9
Article|6 citations·2007
정도전의 경제사상
박홍규

This article examines two aspects of Jeong Dojeon's economic thought. One is his views on Jeongjeon system with regard to land reforms during the late Goryeo Dynasty; the other is his economic thoughts reflected on Joseon gyeongguk jeon (Bu jeon), code of the early Joseon Dynasty. In so doing, I aim to illuminate the thinker-statesman's economic thought during the transitional period in which its focus shifted from the former to the latter. In order to expound thoughts of Jeong the thinker, I ma

10
Article|5 citations·2012
[중용](中庸)과 세종(世宗)의 정치: ‘구경(九經)’을 중심으로
박홍규

세종의 치세(1418-1450)는 우리나라 전 역사에서 가장 영광된 시대로, 세종은 ‘해동(海東)의 요순’또는 ‘동방(東方)의 성주(聖主)’로 평가받는다. 필자는 이러한 세종의 정치와 업적을 『중용 』 사상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원래 『중용 』은 최고 통치자인 군주를 위한 실천 서적이다. 세종은『중용 』의 이해와 실천에서 선대의 왕들과는 현격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종대에 수입․인쇄된 『사서대전(四書大全) 』, 『성리대전(性理大全) 』 등은 조선에서의 성리학 이해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세종은 한편으로는 직접 경연에서의 『중용 』 강독을 통해 중용의 원리를 강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 정치의 장에서 그것을 실천하였다. 본고에서는 [중용]에 등장하는 ‘구경(九經)’을 중심으로 『중용 』과 세종의 정치의 관계를 고찰하였다.

11
Article|5 citations·2011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일본주의’ 탄생의 조건과 과정
박홍규
아세아연구

Japan-centrism is seeing Japan as the center of the world, and claiming that Japan is superior to other countries. This form of Japan-centrism has developed into various shapes and forms from the ancient era throughout the medieval period until early modern ages, and was presented in the Kokugaku by Motoori Norinaga in late early modern ages. In this writing, it is seen that a systematic Japan-centrism was born under Norinaga’s Kokugaku, examining the various conditions and process during the pe

12
Article|4 citations·2006
King Taejong as a Stateman: From Power to Authority
박홍규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reconstruct the career of the third king ofthe Joseon dynasty, Taejong, as a successful statesman. Studies of Tae-jong have mostly been conducted by academic historians, with a focuson political history and institutional history. As a result, two differentimages of Taejong have been produced: one that describes him as theembodiment of power and the other as a Confucian king. I proposethat these two contrasting images of Taejong reflect his distinctivenessas compar

13
Article|4 citations·2012
옌푸(嚴復)와 번역의 정치: 『천연론』에 담긴‘천’개념을 중심으로
박홍규, 조계원

이 글의 목적은 토마스 헉슬리의『진화와 윤리』(Evolution and Ethics, 1894)를 번역한 옌푸의『천연론』(天演걩, 1898)을 중국의 전통적 사유와의 연속성 속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옌푸는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기초해 헉슬리를 비판하면서 진화론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전달하고 있다. 옌푸가 서로 모순되는 스펜서와 헉슬리의 주장을절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배경에 중국적‘천’(天) 개념이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옌푸는 자연 자체에 조화의 작용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유속에서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였다. 그는‘천’개념을 바탕으로 자연이 투쟁을 통해 변화하며 조화를 향해 발전한다고 보고, ‘적응’을 자연의 원리에 따르는 능동적인 행위라고 여겼다. 그리고 개인의 욕망을 긍정하면서 사회적 조화능력이 내재된‘천’안에서 개인과 사회가 상호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 옌푸는자연의 운행을 본받아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기 위한 자기발전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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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4 citations·2009
세종의 권력이양과 인시제의(因時制宜)
박홍규, 방상근

본 논문은 세종의 집권후반기에 나타난 권력이 양을 위한 논의를 법가적 인시제의의 개념으로 설 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세종은 재위 18년이 되는 병진년(1436년)의 정치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 해서 조선왕조의 창업이후 처음으로 섭정의 제도 화를 통한 정치적 안정성을 추구했는데, 이는 유교 적 정치이념과 갈등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본 논문 은 유가적 성군(聖君)으로 평가되는 세종이 유가 적 논리를 통해서도 대응하기 어려운 정치적 현실 에 직면했을 때, 시세에 따라서 창조적으로 대응하 며 새로운 전범(典範)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의 통치력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시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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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4 citations·2012
‘유교적 헌정주의’ 재검토 조선 초기 왕권의 정상화와 ‘헌장주의(憲章主義)’
박홍규, 송재혁
아세아연구

참여정부 이후 한국 민주주의에서 헌법의 문제가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부상함에 따라,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일각에서는 전통시대 조선의 정치사회가 장기간 성공적으로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를 헌정주의의 핵심적 가치들을 통해 설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기존의 연구자들은 이것을 ‘유교적 헌정주의(입헌주의)’로 개념화하고 있다. 서구 근대의 헌정주의는 “헌법을 통한 자의적 권력의 견제”에 핵심적인 가치를 두는데, ‘유교적 헌정주의’ 연구자들은 헌법과 유사한 기능을 가진 대체물들의 발견을 통해 이러한 헌정주의의 논의를 조선시대로 확장한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유교적 헌정주의’에 대하여, 조선의 정치체제가 확립된 시기, 즉 경국대전 체제가 성립하기까지 조선 초기의 정치적 맥락에 주목하여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이론의 측면에서 ‘견제’와 ‘균형’의 입장에서 서 있는 유교적 헌정주의의 논

Research Areas

Economics and EconometricsPolitical Science and Internation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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