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owon Cho
Yonsei University
研究室紹介
Professor Hyowon Cho'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critical theory, political theology, and the intellectual history of 20th-century German thought, with a particular focus on the intersections of law, religion, and philosophy. The lab explores the legacies of key figures such as Carl Schmitt, Franz Neumann, and Gershom Scholem, examining their complex relationships with nationalism, Zionism, and modernity. It also investigates the philosophical underpinnings of political anthropology, irony, and hermeneutics, especially through the lens of thinkers like Hans Blumenberg and Jacob Taubes. The lab’s work is characterized by interdisciplinary inquiry, combining political theory, religious studies, and cultural critique to analyze the enduring tensions between tradition and modernity.
Research Overview
Research Output Tr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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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Papers
6비판이론으로 잘 알려진 프랑크푸르트학파에는, 사뭇 아이러니하게도, 나치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였던 칼 슈미트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두 명의 법학자가 속해 있었다. 프란츠 노이만과 오토 키르히하이머가 그들이다. 본고는 이 두 명의 법학자 중 첫 번째 인물인 노이만의 파란만장한 지적, 실존적 여정을 스케치하려는 목표로 집필되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념에 크게 경도됐음에도 불구하고 노이만은 젊은 시절 슈미트에게서 얻은 이론적 통찰의 영향력을 끝내 초극하지 못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하고 다시 대서양을 횡단하여 미국에 정착한 다음, 그곳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뉴욕 ‘사회연구소’와 미연방 전략사무국을 위해 활동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컬럼비아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부임한 후 때 이른 죽음을 맞기까지 실로 오랜 세월 동안 노이만은 슈미트의 정치 이론을 마치 그림자처럼 달고 다녔다. 이 사실은 그의 주저인 베헤모스에 의해 여실히 증명된다. 나치 정권의 부당성과 부조리를 고발하기
게르숌 숄렘은 종교사, 종교 사회학, 종교철학 분야를 아우른 20세기의 한 거장이다. 이 글은 독일 교양인이자 시온주의자이며 또한 유대 민족주의자라는 정체성을 지닌 숄렘의 삶을 지성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려 한다. 첫째, 숄렘의 삶은 독일 유대주의 역사에 대한 사상적-학문적 투쟁이었다. 그런 숄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두 인물이 있는데, 마르틴 부버와 발터 벤야민이 그들이다. 문화적 시온주의를 견지한 부버와 달리 숄렘은 언어적 시온주의를 주창했으며, 시온주의에 거리를 두었던 벤야민에게 가장 깊은 정신적 친연성을 느꼈다. 그러나 숄렘과 벤야민은 메시아주의에 관한 견해에서 크게 대립했다. 이는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 즉 기독교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숄렘의제자였던 야콥 타우베스는 벤야민을 사도 바울의 계보에 속하는 인물로 보았지만, 숄렘은바울 대신 17세기 거짓 메시아 사바타이 츠비와 그의 사도 가자 출신의 나탄에 주목하여유대 민족의 선차성을 고집했다. 평생에 걸쳐
오도 마르크바르트는 독일어권 국가 바깥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철학자다. 그러나 그의 이른바 ‘보통주의’ 철학은 지난 수십 년간 유행했던 많은 거대 이론에 견주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매력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마르크바르트 철학의 핵심 개념은 ‘땜질’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의 사상을 ‘땜질 이론’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땜질 이론은 우연의 우선성을 근본 전제로 삼는 이론이다. 그의 사유의 출발점은 근대 초기의 주요 의제 중 하나였던 변신론이다. 변신론의 수용 및 극복을 첫 번째 과제로 설정하여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마르크바르트는 근대 철학의 진짜 문제는 역사철학이라는 인식에 도달한다. 역사철학은 변신론의 필연적 귀결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르크바르트는 근대의 여러 주요 철학자뿐 아니라, 동시대의 멀고 가까운 동료들의 사유를 다각도로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사유를 부단히 땜질해 나갔다. 이때 그에게 가장 요긴한 이정표 가 되어준 인물은 요아힘 리터와 헬무트 플
제3제국의 패망 이후 역사학자 프리드리히 마이네케는 괴테 문화의 재건만이 독일의 살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법학자 칼 슈미트는 20세기 전반기의 독일 정신사를 “괴테에서 횔덜린으로의 이행”으로 규정하면서 이 결정적인 이행에 동참하지 않은 독일 유대인을 비판한다. 이렇듯 상반된 두 관점을 배태시킨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함의를 자세히 궁구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다. 슈미트는 괴테를 숭앙하는 “낡은 교양”의 대변자로 유대 신학자 프란츠 로젠츠바이크를 지목한다. 그런가 하면, 슈미트가 보기에 과거 같은 나치당원이었던 마르틴 하이데거는 비록 “낡은 교양”으로부터는 탈피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교양”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그저 횔덜린의 시에 매몰되어 있었다. 그 원인은 하이데거가 “1840년경 발견된, 그러나 또한 새롭게 인식된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슈미트는 키에르케고르와 브루노 바우어에 의해 개시된 “새로운 기독교”를 괴테적 “낡은 교양”의 실질적 대안으로
While enduring a bitter time after the German defeat in the Second World War, Carl Schmitt, in spite of his old age, undertakes the transition from political theology to political anthropology. This implies that the old Schmitt wanted to resume the study of ‘hydraulics’ in the metaphorical sense as the German poet Hugo Ball had characterized what the young Schmitt had done with his books and writings published in the 1920s. At the root of this transition lies the question of irony that has been
From the early 1960s to the mid-90s there exists in (West) Germany a unique research group called Poetik und Hermeneutik. This group traverses the heterogeneous borderlines between disciplines, generations, and nation-states. It thereby produces radically new discourses and creates a novel culture of research. To this academic avant-garde belong the philosopher Hans Blumenberg and the political theologian Jacob Taubes. Over the three decades the members of Poetik und Hermeneutik had instigated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