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ggeun Shin
Sungkyunkwan University
研究室紹介
Professor Jeonggeun Shin'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Chinese philosophy, with a particular focus on the evolution of core concepts such as *xin* (the heart/mind), moral cognition, and emotional ethics in classical Confucian and Daoist thought. The lab explores the philosophical dynamics between virtue (*ren*), knowledge (*zhi*), and self-cultivation, especially in figures like Mencius, Xunzi, and Confucius, as well as in texts such as the *Analects*, *Mencius*, and *Zhongyong*. It investigates the tension between inner moral intuition and external rational judgment, particularly in the context of avoiding moral naivety ('foolish benevolence'). The lab also examines the role of emotion and expression in ethical self-mastery, especially in the context of political and social order.
Research Overview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Selected Papers
15맹자와 순자는 철학사의 라이벌이다. 둘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철학사에서 통상적으로 맹자와 순자의 차이를 성선과 성악의 대립 구도로 설명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부분적 대립일 뿐 전면적 대립이 될 수 없다. 둘 사이의 전면적 대립을 찾는다면, 그것은 두 사람이 지식(지려)을 본성의 내부로 포섭하느냐 외부에 두느냐에 있다. 맹자는 지식을 본성 안에 포섭해서, 사덕 또는 사단이 상호 협력하여 사람이 도덕 성공으로 나아가게 했다. 순자는 지식(지려)이 본성 밖에 있으면서 본성을 규제해서 사람이 도덕 성공으로 나아가게 했다. 이러한 본질적 차이는 두 사람의 수양 방법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맹자는 내면의 주시를 통해서 본성이 교란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순자는 개인의 탁월한 선택을 통해서 본성이 상황을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못하게 했다. 아울러 개인과 사회의 도덕화를 위해서 맹자는 性善이 聖人만이 아니라 井田制와 결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순자는 지식(정보)의 축적 속에 개인
서와 논어는 모두 선한시대의 문헌이다. 두 문헌은 각기 다른 사회적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 서는 씨족 유대를 근간으로 사회질서를 구축하는 반면 논어는 패권적 국가에 대응하는 인문적 가치를 질서확립의 원칙으로 세운다. 이러한 차이는 사람대우의 문제에서도 새로운 해결책을 강구하게 만들었다. 이에 대한 논어의 모색은 서(恕, 황금률)로 나타난다. 나는 이 서를 관용의 원칙으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그것의 정식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서(恕)가 자립적이지 못하고 도(道)나 인(仁)의 목적을 전제할 때 그것은 공동체에서 합의되는 도덕적 지반 위에서 열린 방법으로 도덕적 품성을 계발시킬 수 있다. 1) “인(仁)한 사람(또는 道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2) “내가 바라지 않는 것, 즉 당하고 싶지 않는 것을 남에게 부과하지 마라” 둘째로 서(恕)가 자립적일 때 사람이 진정성에 의거해서 다른 것이라고 배제되지 않은 채 합의 가능한 도덕적 관점을 만들어갈 수 있다. “내가 참으
이 글은 중국철학에서 감정이 갖는 지위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통속적인 동서 비교철학 또는 문화론을 보면 “서양은 지식, 동양은 감정”의 이분법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철학과 문화의 흐름이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 하나로 정리될 정도로 그렇게 단선적이지도 않고 또 간단하지도 않다. 내부적으로 다양한 대결과 상호 침투를 통해 ‘감정’에 주목하는 흐름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여기서는 바로 감정이 주류적인 흐름의 한 갈래로 생겨나는 과정, 즉 공자에서 맹자와 한비자를 거쳐서 『악기』와 「중용」으로 종합되는 귀결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감정은 전개의 방향성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성을 보이고 바로 그 특성으로 인해 사람의 내면의 자기 절제를 붕괴시키고 극단적으로 사회 질서와 정면으로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즉 가변성과 위험성으로 표상되는 감정관이다. 또 한 가지 더 있다. 감정의 표출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긍정과 부인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게 된다. 내면 정보의 노출로 표상
춘추말이나 전국시대에 이르러 심이 철학적 주제로 등장했다. 심 담론은 『맹자』를 1단계로, 「중용」을 2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 글은 1단계와 管子四篇(「內業」, 「心術」상⋅하, 「白心」)을 두 단계의 중간 단계로 설정하고자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공자를 거쳐서 楊朱에 이르러 心이 철학적 의제로 등장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이어서 맹자가 심을 도덕 행위의 근원으로 설정했지만 1단계에서 심과 욕망 사이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재연되는 지점을 해명한다. 마지막으로 관자사편에서는 이 문제를 심이 욕망과 연결되는 맥락, 도와 연결되는 맥락으로 구분하여 논의를 진행하는 측면에 주목해서 논의를 진행한다. 이를 각각 心欲과 心道로 구분한다. 이 구분법은 「중용」의 已發과 未發 논의의 선구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선진시대의 복잡한 心 담론을 체계적이며 발전적으로 읽어내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논어』 「雍也」24에 보면 仁者(君子)에 대해 “可逝也, 不可陷也. 可欺也, 不可罔也.”라는 문장이 나온다. 필자는 이 구절을 “仁者가 어떻게 오류의 가능성을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탐구해왔다. 仁者가 완전한 인격을 갖춘 도덕적 영웅이다. 仁者가 ‘不可罔’이지만 ‘可欺’가 되풀이된다면 멍청한 존재가 된다. 즉 仁者는 영웅이지만 역설적으로 멍청한 인물이다. “멍청한 仁者”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孔子는 仁과 知를 결합시켜서, 孟子는 性안에 惻隱之心과 是非之心을 포함시켜서, 荀子는 性밖에 비교 판단하는 知를 두어서 ‘멍청한 仁者’의 문제를 풀고자 했다. 한 제국의 董仲舒도 仁知의 결합만이 ‘멍청한 仁者’의 오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朱子는 「雍也」24의 주석을 달면서 仁者가 오류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하다. 이렇게 되면 仁과 知 사이에 묘한 긴장이 형성되게 된다. 이 글에서는 주자가 ‘멍청한 仁者’의 문제를
불교에서는 無我說을 주장한다. 존재는 五蘊의 일시적인 결합일 뿐 영원히 지속하는 실체로 고려되지 않았다. 소유의 주체가 없으니 자연히 無所有의 삶을 말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孔子와 莊子는 어떤 자아관을 가지고 있을까, 라는 물음에 회답을 찾고자 한다. 『논어』와 『장자』에 ‘無我’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공자와 장자는 자아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이 글에서는 我 · 己 · 吾 등의 일인칭대명사, 君子 · 小人, 眞人 · 聖人 · 全德之人을 중심으로 공자와 장자의 자아관을 재구성하고 있다. 공자는 사람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경향 또는 그런 경향의 人物[小人]을 대상으로 ‘無我’를 주장했다. 성왕의 경우에도 堯 · 舜 · 禹의 길이 같으면서도 다르듯 우리도 사람마다 제 색깔을 내면서 救世적 責任을 실현하기 위해 關係[連帶]의 집중을 도모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공자는 고유한 개인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有我論[有己論]을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장자는 책무의 윤리야
嵇康(223-262)의 「聲無哀樂論」은 秦客과 東野主人이라는 가설적인 주인공의 논쟁으로 구성되어있다. 진객은 ‘성유애락’을 옹호하고 동야주인은 ‘성무애락’을 옹호한다. ‘성유애락’은 소리(樂音과 자연음)와 感情·政治의 相通說을 긍정하는 것이다. 이에 맞서서 동야주인은 소리에는 듣기 좋고 나쁨의 ‘聲有善惡’을 긍정할 뿐 상통설을 부정한다. 우리는 논의 과정이 간명하고 진행되고 논쟁이 동야주인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으리라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성무애락론」은 그 속에 성인 존재의 긍·부정 그리고 심성·심형 관계에 대한 음악철학의 복합적인 특성이 내재되어있다. 이 글에서는 재구성의 방법론을 통해 진객과 동야주인이 절대음감의 소유자인 성인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心聲 相通說에 맞서 心聲 異軌說이 어떻게 논의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오늘날 학자만이 아니라 일반인도 ‘美學’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아울러 미학을 동양학의 다양한 사상가나 분야에 적용하여 여러 가지 造語를 하고 있다. 예컨대 儒家美學, 道家美學, 孔子美學, 莊子美學 등이 그 실례이다. 西洋에서 美學은 理性 認識에 대비되는 感性 認識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것은 이성과 감성 사이의 뿌리 깊은 대립을 반영하고 있다. 東洋의 知的 傳統에는 감성과 이성의 대립이 심각하지 않다. 그렇다면 “동양의 지적 전통에서 ‘美學’이 성립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 질문을 莊子에 한정해서 “莊子 美學이 성립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탐구하고자 한다. 장자는 자연의 전개 과정에서 感情 移入을 배제하려고 했고, 또 大와 小의 槪念雙에서 어느 한쪽의 규범성을 긍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기준에서 보면 단일한 학문적 규범을 전제하는 ‘莊子 美學’의 조어는 差異를 긍정하는 장자의 근본 정신과 합치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 莊子의 근본 정신과
동아시아 사람이라면 “세상사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을 즐겨 쓰고 그만큼 또 그 말을 쉽게 듣는다. 우리는 마음이 동아시아 철학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중요한 개념으로 간주되었으리라 예상한다. 마음이 동아시아 철학에서 핵심적인 개념이지만 맹자 이후에야 철학적 개념으로 정착된다. 이런 측면에서 맹자 이전의 마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공자의 마음을 대상으로 그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공자는 군자의 마음과 소인의 마음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 그 결과 다음의 여섯 가지 특성을 끌어낼 수 있다. 1. 마음은 쌓지도 감추지도 않는다. 2. 마음은 표정과 언행으로 그대로 옮겨진다. 3. 마음은 자립적 실체가 아니라 네트워킹 센터이다. 4. 군자의 흰 마음은 공공연한 지향이 있다. 5. 소인의 검은 마음은 사적이며 숨기는 지향이 있어서 그 속과 겉이 다르다. 6. 군자의 公心과 同心은 결국 無心과 같다.
이 논문은 氣철학자들이 우연성과 대결하는 양상을 살펴보는 데에 초점이 있다. 理철학에서 우연은 배제되어야 하는 영역이면서 가치의 경계를 넘어서 있는 지점이다. 기철학은 변화와 유동성을 그 특징으로 끌어안고 있으므로 우연성에 대해 리철학처럼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기철학자마다 우연성과 대결하는 양상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이 글에서는 논의의 대상을 董仲舒(B.C. 198-106)王充(27-100)王廷相(1474-1544)으로 한정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연성과 대결 과정에서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중서는 개방된 기철학을 주장하면서도 天意의 틈입을 통해 우연성의 문제를 타고 넘는다. 왕충은 자기 완결적인 기철학을 내세우면서 필연적으로 운명론을 통해 우연성을 끌어안게 된다. 왕정상은 氣化와 氣本을 나누면서 氣와 理가 상호 수렴되는 과정으로 우연성의 문제를 타고 넘는다.
공자는 공부에서 내재적인 열망에 따라 뜻을 세우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런 열망에서 배운 것은 사람이 삶의 다양한 분야에서 제자리를 잡도록 안내해준다. 열망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으려면 무지를 고통이 아니라 분노를 느껴서 해결해야 할 지적 자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은 이를 바탕으로 내재적 열망을 분출할 수는 있지만 독선과 독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공자는 好學과 전통 규범 그리고 사람다움 등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인간의 한계 안에서 확실성의 근거를 굳건히 세우고자 했다. 이러한 공자의 공부는 산파술, 자기 주도적 학습의 특성과 결합하여 평생 학습으로 이어졌다. 공자는 일찍이 인생을 15세, 30세, 40세, 50세, 60세, 70세 등 6단계로 나누어서 책임의 자각, 성장, 인격의 성숙 등을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공자의 6단계를 둘씩 묶어서 3단계로 압축해서 그가 말하는 공부와 교육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3단계는 15~30세의 뜻 세우기와 자리 잡
이 글은 추월론의 관점에서 인간이 도덕적 완성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동서 철학은 모두 사람이 지성, 의지, 실천에 근원적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 한계를 벗어나려는 열망을 품고 있다고 보았다. 이 열망을 현실화시키는 것과 관련해서 종래 초월론과 내재론 사이에 오랜 논쟁이 있어왔다. 여기서 필자는 초월론과 내재론이나 내재적 초월론을 대신해서 추월론을 통해 인간의 도덕적 성장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동아시아 철학사에 공자, 맹자, 주희, 정약용처럼 뚜렷한 특징을 가진 네 명을 대상으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이 글은 『四庫全書總目提要』(이하 『제요』로 약칭함)에 나타난 경학사과 학술사의 특징을 밝히는 데에 목적이 있다. 종래 『四庫全書』와 『제요』의 편찬은 소수의滿洲族이 다수의 漢族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사상과 문화 탄압을 실현하려는 맥락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 글에서는 『四庫全書』의 편찬을 현실의 정치 논리로 완전히 환원하여 설명할 수 없다는 가정 위에 서있다. 나아가 건륭제는 『사고전서』의 편찬을 稽古右文의 啓蒙的군주의 과업으로 이해했고 학자들은 학술적 자율성에 따라 편찬 작업에 참여했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밝히기 위해서 이글에서는 학문 외적 요소보다 『제요』의 내용 분석이라는 내적 요소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그리하여 『제요』가 시대적 제약을 받았을지라도 大公과 實用의 평가 기준에 입각해서 明體達用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