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Im Baek
Yonsei University · 社会科学
研究室紹介
Professor Moon-Im Baek'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Korean cinema history, with a particular focus on the formation of early film spectatorship, the interplay between colonial modernity and national identity in silent and early sound films, and the cultural politics of visual media in colonial Korea. The lab investigates how foreign cinematic forms—especially American serial films—were localized in early 20th-century Korea, how spatial and gendered representations were constructed in nationalist and colonial-era films, and how film functioned as a site of public discourse and alternative public spheres through the interplay of visual, auditory, and performative elements such as the Byunsa (lecturer). The lab also explores the intersections of literature and film, particularly in the context of 1970s Korean cultural transformation and the rise of youth-oriented cinema.
Research Overview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Selected Papers
15본 논문에서는 1916~1925년 사이 조선에서 상영되었던 미국 연속영화(serial film)의 목록을 정리하고 그 상영방식을 분석함으로써 조선의 영화 관람성(spectatorship)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의 특성을 규명하고, 나아가 그것이 조선에서 최초로 제작된 영화로서 연쇄극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그간 조선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을 중심으로 하여 구성되었던 영화사의 한계를 보완할 뿐만 아니라 영화담론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에 외국 영화가 지녔던 문화적 위상을 재고하고자 하였다1916년부터 조선의 상영 프로그램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것은 미국 영화로, 그중에서도 미국에서 1910년대 초중반 인기를 끌었던 연속영화는 <명금(The Broken Coin)>을 시작으로 10년간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그 면모를 복원해 보았을 때, 양적으로는 같은 시기 미국에서 생산된 연속영화의 78% 정도인 총 155편 정도가 상영되었고 이는 유럽 주요 국가와 비교했을 때 2.6~
This paper focuses on the organization of the audio-visual field in Korean silent film theaters and on the ways the emergence of cinema audienceship (rather than spectatorship) is profoundly intertwined with the formation of an alternative public sphere. The important feature of Korean silent film audienceship is that the institution of film-viewing was overdetermined not only by visual elements but also by auditory elements the Byunsa[辯士] and audience altogether provided, so that the movie thea
이 글에서는 소설가 김승옥의 영화 각색 작업이 1970년대 문화지형에서 문학의 위상변화 및 문학과 영화가 맺는 관계의 변화와 관련하여 갖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젊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던 신진 소설가로서 김승옥은 1970년대 들어서면서는 당시 새롭게 등장한 ‘대중소설’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일에 전념하게 되는데, 이는 <영자의 전성시대>, <어제 내린 비> 및 <겨울여자>와 같은 ‘청년영화’의 흐름 속에 놓여있는 것이었다. 저널리즘의 확산 및 대중매체의 발달을 토대로 하여 형성된 도시 대중문화로서 대중소설과 청년영화는, 김승옥이라는 각색자를 매개로 하여 상호텍스트성을 통해 하나의 세대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이 시기 영화는 전시대의 ‘문예영화’와 달리 전통적이고 제도화된 작품이 아니라 젊은 독자들의 감수성을 담은 동시대 작품과 대화적 관계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형식이 아닌 이야기를 통해 대중성을 확보하는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김승옥은, 1960년대에는 ‘한글
본 논문에서는 초기 조선영화인 연쇄극에서 공간을 생산, 점유, 지배하는 양상을 고찰하였다. 사전에 촬영한 영화 장면을 연극 공연 도중에 상영하는 방식의 연쇄극은 실사(實寫)와 더불어 시작된 조선 최초의 영화들로, 그 구체적인 촬영 장소 및 조선인 배우의 출연을 주요한 ‘어트랙션’의 계기로 내세웠다. 이때 촬영 장소는 식민주의적, 근대적 공간 재편 과정에서 가시화된 관광명소들로서, 연쇄극은 이 장소들을 조선인 배우의 신체로 점유하고, “서양식” 액션 스펙터클의 무대로 재구성하며, 대중적 내러티브의 배경으로서 재의미화했다. 이로 인해 그간 서구 및 일본인들의 “이동하는 ‘사실적’ 응시”의 수단이었던 영화는 조선의 공간을 재탐색하는 테크놀로지로 전유된다. 연극의 극적 암시력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잉여로서 비난받거나 순수한 극영화로 가는 과도기의 ‘변태’적 과정으로 치부되었던 연쇄극은 날로 점증하는 영화의 대중성을 증거하는 것이었고, 조선에서 처음 영화가 제작될 때 ‘공간’ 감각이 가장 ‘해
이 논문에서는 최초의 상업용 극영화인 「춘향전」(1923)과 「장화홍련전」(1924)을 중심으로 하여, ‘식민주의 영화’와 ‘내셔널 시네마’의 표상 문제를 분석하였다. 이 작품들은 서구에서 유입된 낯선 테크놀로지로서 영화가 조선에서 처음으로 제작되기 시작할 무렵 관객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시각화함으로써 주목을 끌었다. 「춘향전」은 일본인 흥행사에 의해 일본인 관객을 대상으로 제작되었다가 조선인 관객에게 공개되었고, 「장화홍련전」은 ‘순수’ 조선인의 기술로 극영화를 제작한다는 뚜렷한 목적의식 하에 만들어져 조선인 관객을 위해 상영되었다는 차이점을 지닌다. 그러나 선행 양식인 식민주의 시각장르에서 스테레오타입과 심상지리를 통해 형성되었던 ‘조선(인)’의 표상은 이 영화들의 제작과 수용에 영향을 미쳤으며, 타자의 카메라에 매개되어 낯익고도 낯선 것으로 제시되었던 ‘조선(인)’을 감각적으로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남겼다. 또한 이 과정에서 ‘조선(인)’을 프레이밍할 때 가시화되어
지원병 제도가 실시된 이후 대중매체에서는 조선 남성이 일본 군인이 됨으로써 피식민자의 유약하고 여성화된 상태에서 벗어나 온전한 주체로 성장한다고 하는 젠더화된 표상이 생산되는 한편으로, 어머니와 아내(애인) 등 여성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한 수사학이 동원된다. 본 논문은 선전 극영화의 서사적, 스타일적 전략을 분석하는데, 특히 조선 남성이 지원병이 되기로 결심하는 동기와, 그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이 서사적, 정서적 정점을 이루는 순간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선전 극영화의 소재로 두드러지는 지원병의 문제는 국민정신총동원 운동 차원에서 조선연맹을 통해 청소년, 청년 및 가족(특히 주부 및 노인)을 대상으로 행해졌던 지원병제 선전활동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때 관람 동원의 주된 대상이었던 청소년, 청년 및 여성들에게 말을 걸 때 가장 설득력 있는 수사학과 테크닉을 필요로 했던 순간들은 분절화된 상징체계와 더불어 비분절적이고 탈육체화된 약호들을 통해서도 관객과 소통하고 있었다. 「
이 논문에서는 식민지 시대 영화비평이라는 글쓰기가 등장하고 정착하던 1925-1931년, 미국영화에 대한 담론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개되었는가 하는 점을 유럽영화 및 소비에트 영화에 대한 담론과 비교하며 분석하였다. 미국영화 담론은 영화비평이 등장하기 전 거의 30여년간 조선의 관객들이 관람해 왔던 영화들에 대한 취향 및 관점과 더불어 그것을 계몽하고 통제하려는 지식인 평론가들의 영화관을 추적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조선에 수입, 상영된 외국영화에 대한 기초 정보조차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며, 그에 대한 담론화, 이론화 양상에 대한 연구 역시 시작 단계에 있다. 이 논문에서는 식민지 시대 수입, 상영된 외국영화의 목록을 만들면서, 그에 대한 비평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분석하였다. 미국영화에 대한 논의에 집중했지만, 늘 유럽영화 및 소비에트 영화의 대타항으로서 미국영화가 담론화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유럽영화 및 소비에트 영화 담론과의 비교 속에서 그 맥락과 의미를 구
본 논문은 임화의 조선영화발달소사 와 조선영화론 (1942)을 중심으로 40년대초 영화사가 놓인 좌표 및 ‘예술성과 기업성’의 명제가 갖는 의미를 규명하는 것을목적으로 한다. 조선영화발달소사 는 1940년 무기명으로 발표되었던 조선영화발달사 를 초안으로 하였고, 1941년 동경에서 간행된 이치카와 사이(市川彩)의 アジア映画の創造及建設에 재수록 된다. 이 영화사는 넓게는 대동아공영권에서 ‘아시아 영화’를 기획한다는 제국의 프로젝트 하에 식민지 영화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조사와 정리가 벌어지던 상황 속에서 ‘조선영화’의 위상을 마련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좁게는 ‘최초의 문화입법’인 조선영화령 실시를 계기로 조선에서 영화의 ‘재출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 속에서 생산된 것이면서, 동시에 조선에서 그 문화적 위상이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는 영화에 대한 평론가 임화의 담론적 개입이다. 본 논문은 임화의 영화론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으로서 ‘예술성과 기업성’이라는명제가 변증법적 대립물로 상
본 논문에서는 버튼 홈즈의 여행기 「서울: 한국의 수도(Seoul: the Capital of Korea, 1901)」와 2004년 한국 영상자료원에 기증된 영화 <한국(Korea):Elias Burton Holmes의 기행기록영화>를 중심으로 하여, 미국의 여행 강연자 버튼 홈즈가 한국을 방문한 시기가 1901년이었음을 규명하고 또 영화를 촬영 및 상영한 맥락을 복원하며, 그의 여행기가 갖는 특징을 분석하였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 버튼 홈즈는 한국에서 최초로 영화를 상영한 사람이고, 최초로 영화를 촬영한 사람이다. 그의 서울 여행기는 1901년에 10권짜리 『버튼 홈즈 강연(Burton Holmes Lectures)』 전집의 마지막 권에 수록되어 있고, 여행 강연(travel lecture) 형식을 통해서도 세차례(1901년, 1913~1914년, 1922~1923년) 소개된다. 버튼 홈즈는 19세기에 한국을 방문했던 여타 서구인들(종교인, 정치가, 사업가 등)과 달리 순수 민간인
본 논문에서는 「조선영화론(1941)」에서 임화가 규명하려고 한 조선영화의 '예술'적 성격의 내용을 분석하면서, 그것이 조선영화령과 법인 조영의 설립으로 이어지는 전쟁기 영화 통제 상황에 대한 개입의 산물이었음을 규명하였다. 토키 시대에 들어서 조선영화의 예술적 가치가 운위되고 기업화가 추진되던 무렵, 조선영화령은 [국민문화의 진전에 자(資)키 위하여 영화의 질적 향상을 촉(促)하며 영화사업의 건전한 발달을 도모하는 것]를 목표로 내세우며 조선영화를 과거와 같이 소극적인 '취체'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인 '통제'의 대상으로서 선포했다. 여기에서 영화란 대중을 황국신민으로 계몽할 수 있는 '특수한' 기능을 가진 무기로 간주되었는데, 임화는 영화가 '특수'한 것이 아니라 문학 등 여타부문과 '마찬가지로' 예술이라고 하는 점을 규명하기 위해 조선영화의 "생성"에 있어서의 특성을 분석한다. 「조선영화론」은 첫째, 조선영화가 독자적인 예술장르로서 형성되었음을 설명하면서 초기에 제작이 부재했던
이 글은 1960년대 영화에서 멜로드라마 장르에 한(恨)이 결합되는 양상을 살펴본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역사 및 사회문화를 사적(私的)인 틀 내에서 정서적으로 구조화하는 상상력으로서 많은 영화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특히 1960년대 중반부터는 문학 담론에서 파생된 ‘한’ 논의와 결합한다. 하나는 한국적 가치를 심미화함으로써 영화의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문예영화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전래 괴담에서 ‘원한’이라는 코드를 부각시키려는 공포영화에서이다. 「갯마을」은 근대화와 산업화과정에서 사라져가는 가치들을 심미화된 노스탤지어적 시선으로 포착하는데, 이는 토속적 풍경의 시각화나 굿이나 민요의 청각적 이미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한편 「월하의 공동묘지」는 ‘신파’의 과잉된 특질들과 공포영화의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눈물’, ‘비명’과 같이 관객들의 신체적 반응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한풀이’를 부각시킨다. 문예영화가 순문학이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 ‘예술성’에 기대어 ‘한
Since the beginning of the twenty-first century, films based on the colonial period have consistently been produced due to two forces generated in the latter half of the ’90s. One is the flow within the humanities to reconstitute the colonial period with a perspective of cultural modernization spreading out to mass culture, and the other comes from the tendency to creatively narrate the national trauma that was evoked by the IMF crisis in Hollywood-style big-budget action blockbuster films. This
Korean cinema during the colonial era has become the subject matter of the most productive scholarship in Korean language over the last decade. Contemporary Korean scholarship on colonial cinema 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