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e-woo Ko
Seoul National University · 人文科学
研究室紹介
Professor Tae-woo Ko'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ecological and environmental history, with a critical focus on the intersections of colonialism, industrialization, and environmental transformation in modern Korea. The lab explores how state-led development projects in the colonial period (1910–1945) reshaped landscapes, displaced communities, and entrenched economic inequalities, particularly through infrastructure and resource extraction. It also investigates the historical roots of contemporary ecological crises by analyzing the 'Anthropocene' and 'Capitalocene' frameworks within Korean historical contexts. The lab emphasizes decolonial and anti-capitalist historiography, advocating for a 'negative universal history' that centers ecological coexistence over growth-driven modernity.
Research Overview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Selected Papers
15현재의 기후·생태위기는 ‘거대한 재난’으로서 인류 및 다른 생명체를 생존의 한계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한 한계 상황으로까지 이끈 ‘근대 문명’ 자체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20세기 한국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돌아보고자 한다. 먼저 위기 국면을 마주하며 새로운 역사철학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디페시 차크라바르티(Dipesh Chakrabarty)의 논의를 소개한다. 다음으로 최근 인류세(Anthropocene), 자본세(Capitalocene)의 관점을 20세기 한국 근현대사에도 접목해보면서 대가속의 주요 지표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개설서에서 나오는 인식의 한계를 짚으며 역사 인식을 제고할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끝으로 역사 인식의 제고를 바탕으로 ‘부정적 보편사(negative universal history)’의 한 방법으로 생태환경사(ecological and environmental history) 연구를 제언하고자 한다.
이 연구는 1930년대 중후반에서 1940년대 전반에 이르는 시기 삼척지역을 중심으로 한 강원도의 개발 과정과 그 특징 및 한계를 다룬 것이다. 1930년대 전반까지 강원도는 임업과 수산업, 광공업 등 개발할 여지가 풍부하지만, 교통 및 지리적인 한계에서 개척이 되지 않은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다 1930년대 중반 이후 강원도 지역은 교통 인프라 개선과 함께, 조선총독부의 농공병진 정책 추진 속에서 개발 가능성이 확대되었다. 동시에 중일전쟁 발발 후 일제가 자원 개발과 생산력 확충을 요구하는 시점인 1937년 강원도개발위원회가 개최되었다. 강원도개발위원회는 강원도가 더 이상 미개척의 영역으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이 천명된 회의였으며, 개발을 추진할 인물들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중첩된 공간이었다. 강원 개발계획이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난 지역이 삼척이었다. 무연탄 채굴과 화학공업, 시멘트공업이 추진되면서 삼척지역의 공업화는 급속도로 이뤄졌다. 그러나 삼척을 중심으로 본 강원지역의 개발,
이 글은 식민지 조선에서의 광범위한 개발 욕구(‘아래로부터의 개발’)가 진정과청원 등 주민들의 집합행동으로 발현된 상황을 ‘개발운동’으로 지칭하고, 그것의전개 과정과 성격을 1920년대를 중심으로 검토한 것이다. 1910년대부터 재조선인이 주축이 된 공직자와 자산가층에서 식민지 개발을 위한 주장과 운동을 전개했다. 집회·결사의 자유가 부분적으로 허용된 3·1운동 이후에는 조선인들도 더욱 개발에 본격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했다. 기성회, 번영회와 같이 각지의 발전을 목표로하는 사회단체가 연이어 탄생했으며, 일반 민중의 진정서가 관청으로 쇄도했다. 개발운동은 1910년대보다 1920년대에, 1920년대 전반보다 1920년대 후반에 훨씬 활발했다. 1920년대 후반 진정활동이 급증한 이유는 ‘산업제일주의’를 표방한조선총독부의 토목건축정책에 각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또한1920년대 개발운동은 공직자와 말단 행정가들이 지역을 대변하고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해야 한다는 분위기
Ecological and environmental history is an extended version of an environmental history that links with the concept of an 'ecological turn'. This signifies that human is deemed to be one of the chain in the ecosystem that coexists with the ecological environment. In other words, it rejects the human images that rule the nature and concurrently criticizes the capitalism of modern civilization which has faith in economic growth. This is a way to coexistwith the natural environment and mankind. Con
This paper examines the achievements and limitations of studies conducted in commemoration of the 2019 centennial anniversary of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and presents prospects for the direction of future research. On the occasion of the centennial, there was the establishment of data, including the March First Movement Database, and the excavation of new materials. The view that the Movement created crucial momentum for the transition from monarchy to republic was strengthened, a m
1930년대 중후반 조선 건설경기의 흥기는 식민지 토건업계에 기회가 되었다. 식민권력은 자신들의 통제 아래 늘어나는 공사를 적절히 소화하기 위한 강력한 토건업 단체가 필요했다. 그 결과 1936년 경성토목건축업협회(1940년 이후 조선토목건축업협회)가 설립되었다. 이전의 조선토목건축협회가 토건업자들의 이익단체였다면, 경성토목건축업협회는 식민권력과 유력 업자들을 매개하는 단체였다. 1937년부터 진행된 노동자 알선사업에서 보듯이, 협회를 매개로 하여 식민권력과 유력 토건업자 사이의 파트너십이 형성되었다. 식민권력은 일본 독점자본을 유치해 공업화를 추진하고 조선 남부의 ‘과잉’ 노동력을 북부로 수송해 개발정책을 원활히 추진할 수 있었다. 토건업자는 수급된 노동력으로 공사를 진행했고, 일본 독점자본은 그 구축된 기반 시설로 이윤을 추구했다. ‘국가-기업(업자) 개발동맹’의 형성이었다. ‘개발동맹’에 입각한 토건사업은 전쟁과 더불어 급팽창했다. 건설 붐과 함께 일부 조선인 토건업자들도 성장
This paper examined the perception and behavior people displayed toward the “North Joseon” region during the Japanese colonization period and aimed to identify its progress and limitations. The “North Joseon” region, which mostly referred to the Hamgyong Province in the early years of the colonization period, was perceived, unlike the south of Joseon, as a nearly inaccessible and undeveloped dark zone that had plentiful resources but was difficult to visit. However, the possibility of “developme
이 글은 시화호와 시화지구 개발이 초래한 환경오염과 개선 과정을 비판적으로조망하며,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공존할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77년수도권 인구 분산 정책의 일환으로 반월특수지역이 지정되었고, 1980년대 공업단지 확대와 간척농지 개발이 추진되면서 시화지구 개발이 본격화하였다. 이 개발은 ‘국토 개조’ 를 표방한 ‘하이 모더니즘’이 표출된 것이면서, 중동 건설경기 침체로 인한 국내 건설업체 부실을 만회하려는 전두환 정권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었다. 대규모 간척으로 주민 이주와 전업이 발생하고 갯벌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1994년 시화방조제가 완공되면서 군자만은 ‘인공 자연’ 시화호로 변했다. 그러나 반월공단의 폐수 방류와 생활하수 유입으로시화호는 ‘죽음의 호수’가 되었다. 생태 재앙이 발생하고, 공사 과정에서의 부실과 한국수자원공사 등 정부 기관의 무책임이 밝혀지면서 주민과 환경단체는 적극적으로 정부를비판하며 저항했다. 이후 2000년대 해수 유통, 하수처
건물의 사전 보수작업은 시설물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성능을 유지하고 향후에 발생할 수 있는 결함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과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효과적인 사전 보수작업 수행을 위해 보수작업이 필요한 대상을 명확히 선정해야 하며 이를 위해 작업 대상이 가지는 상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작업 대상의 성능 측정은 하나의 평가 기준에 대한 평가 보다는 여러 개의 평가 기준들을 동시에 고려한 평가가 측정의 정확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의사결정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측정값이 부정확한 평가 기준들이 존재할 수 있다. 이를 보완하고자 본 연구는 다양한 평가 기준을 이용한 사전 보수작업 대상의 성능 측정과 효과적인 작업 대상 선정을 위한 의사결정 지원 모델을 제시한다. 본 연구는 작업 대상 선정을 위한 평가 기준을 선정하고 기준별로 측정값을 종합하여 의사결정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건물의 상태 측정 시, 평가자의 주관적인
이 연구의 목적은 한국에서 환경오염이 본격적으로 대두하고 문제시된 1970년대에 주목하며 ‘비가시화’한 피해와 폭력, 재난의 문제를 ‘가시화’하는 데 있다. 특히 이 연구는 환경오염이 두드러진 지역 주민의 반공해운동을 조명하는 ‘공해의 민중사’를 지향한다. 한국의 환경오염 문제는 1960년대부터 두드러져서 1970년대 ‘재난’ 상황으로 확대되었다. 오염은 대도시 지역과 공업단지, 자원 채굴 지역을 중심으로 심해졌다. 오염지역 주민들은 공해 유발 업체를 찾아가 항의하고, 행정기관에 해결을 요청하는 진정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반공해활동의 증가에 대응하여 정부는 공해방지법 개정과 환경보전법 제정 등 제도를 개선했다. 그러나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공해방지 행정은 환경오염의 심화를 해소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이에 피해 주민들은 생존권 확보를 위해 공해소송을 제기했다. 공해소송은 사법계의 인식 변화와 함께 점차 피해배상이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손해배상 위주의 공해소송은 사후
화석에너지를 토대로 만들어진 현대문명은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 등으로 파생되는 각종 문제가 일어나고 지구 생태계와 인류 사회가 위협받게 되면서 그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자동차는 화석에너지 체제와 대량생산‧대량소비 사회의 상징으로서, 현대문명의 위기 문제를 성찰하는 데 적절한 대상이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한국에서의 자동차 소유 욕망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한국에서 다수가 자가용을 갖게 되는 ‘마이카 시대’의 기점을 살펴보았다. 자동차 등록 대수와 ‘마이카’ 담론 추이를 볼 때, ‘3저 호황’과 더불어 1인당 GDP가 급상승하고 자동차의 대량생산체제가 확립되는 1980년대 후반에 비로소 ‘마이카 시대’에 접어들었다. 197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의 자동차 소유 욕구가 시간이 갈수록 더욱 확산했고, 1980년대 들어서면 자동차에 대한 경쟁적이고 과시적인 소비 현상이 나타났다. 다음으로 자동차 소유 욕망이 함께한 자동차 보급은 사회 전반의 이동성(mobility)을 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