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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hun Cho

Korea University · 社会科学

研究室紹介

Professor Young-hun Cho's research lab specializes in East Asian historical studies with a focus on transnational and global perspectives, particularly the interplay between political, economic, and environmental factors in imperial China and its relations with Korea and Japan. The lab explores early modern East Asian diplomacy, maritime trade networks, ecological crises, and the historical impact of climate change and silver flows. It also investigates state formation, urban planning, and the role of capital cities—especially Beijing and Nanjing—within the Ming dynasty’s dual-capital system.

Ming dynastyEast Asian historyclimate changemaritime tradedual-capital system

Research Overview

Papers
30
Total Citations
100
Papers (5y)
8
Primary Field
社会科学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Publications per year (5y)
8total
2021
2022
2023
2024
2025
Citations per year (5y)
1total
20212022202320242025

Selected Papers

15
1
Article|25 citations·2013
『동아시아사』 교과서의 ‘은 유통과 교역망’ - 주제의 설정과 그 의미 -
조영헌

In 2007, the textbook entitled Tong Asiasa (East Asian History ) was introduced for use in a newly established high school elective course in history in South Korea. The course was offered to high school students starting in the first semester of the 2012 school year, and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the Tong Asiasa textbook, high school history programs adopted a curriculum composed of three components, “Korean History,”“East Asian History,” and “World History.” However, whether or not the text

2
Article|15 citations·2017
15세기 한중 관계사― 禮制的一元的 책봉ㆍ조공의 확립 ―
조영헌

This article mainly deals with 15th century’s sino-korean relations based on recent research as a founding stone for comprehensive reexamination of sino-korean relationship from 15th century to 19th century. In the beginning of 15th century, going through the chaotic and turbulent period of the latter of 14th century, so called ‘Ming Order’ which had functioned as a basic framework for Ming-Choson relationship was established. The sino-korean relationship was very closely linked with China(Yuan

3
Article|10 citations·2014
‘17세기 위기론’과 중국의 사회 변화 ―명조 멸망에 대한 지구사적 검토
조영헌

만약 17세기에 중국에서 발생한 ‘위기’의 결과를 명조의 멸망으로 삼는다면, 그 ‘위기’의 발단은 곧 명조 멸망의 발화점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명조라는 ‘생태계’가 무너지는 위기의 발원지는 어디에 있는가? 황제의 무능력인가? 관료들의 부패와 파벌주의인가? 농민반란인가? 외적의 침입인가? 전염병인가? 은 유입의 감소인가? 혹은 비정상적인 기후인가? 본고에서는 지구사적 연구방법론과 밀접하게 연관된 ‘17세기 위기론’에 주목하여, 그 두 가지 요소인 은 유입의 감소와 비정상적인 기후 변동이 명조의 몰락에 기여했음을 주장하는 최근의 연구사적 경향을 분석해보았다. 이를 통해 이 두 요소가 17세기 전반기에 광범위하게 발생했으나, 특별히 1630년대 후반에서 1640년대 전반기에 ‘동시적’이자 ‘집중적’으로 발생하면서 기존의 여러 불안정한 상황들을 더욱 악화시키고, 더 나아가 명조의 생명력이 임계점(tipping point)에 도달하는 데 기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명조의 몰락 과정

4
Article|10 citations·2015
海商 王直의 興亡과 徽州 네트워크
조영헌, 채경수
5
Article|9 citations·2008
北京 首都論과 大運河 - 明朝를 중심으로 -
조영헌
http://chinahistory.jams.or.kr/jams/co/download/popup/poDownload.kci?storFileBean.orteFileId=FI0002186823

都城所在地的选择及其建设,对每个王朝或政权都是至关重要的大事,它们也都有各自选择的标准和建设的过程。本稿是其中对于明朝北京都城建立的地理因素的研究,首先整理关于明代选择北京为都城的地理条件的各种言论,这样的言论背景下确立北京为首都地位的不简单过程,和对其意义的分析。 北京在元代成为了统治全中国的帝国首都,除明初的一定时期外,直到清末为止一直都处在首都的地位。其中,明代就是经历了从南京迁移到北京的迂回曲折过程,出现了比前后朝代更丰富的关于北京地理因素的言论。尽管持续提出了对北京的批判论,然而未曾影响到选定北京为首都的决议,其主要原因则是“有险可依”和“有水通利”的两个地理上的优势因素。第一,类似“以地为险”的长安的地理因素的“有险可依”,第二,类似“有四河以通漕运”的开封的交通因素的“有水通利”,则成为了支持北京首都论的两个有利条件。 但是,前者的因素(“有险可依”)是以1449年“土木之变”为契机,“北虏”以压倒性的南侵能力破坏明朝的防御能力,事实上其优势意味减少了。从而明朝中期再建的长城是对被称为“有险可依”的北京地理因素的人为性修补。另一方面因素(“有水通利”)不仅包括河运而且还有

6
Article|8 citations·2017
明 後期 月港 開港과 壬辰倭亂
조영헌

최근 임진왜란(임진전쟁, 1592-1598)에 대한 재조명이 國內外的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이 전쟁이 동아시아적 맥락, 혹은 地球史의 관점에서 볼 때에 의미 있는 國際戰爭으로 새롭게 주목받기 때문이다. 점차 임진왜란이 戰爭이 發生하게 된 背景과 戰爭으로 야기된 結果는 一國史的 시각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동아시아적 혹은 국제적 맥락으로 파악해야 하는 과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입장에서, 필자는 임진왜란의 국제적 맥락(혹은 계기)을 중국과 일본 사이의 경제관계, 혹은 동아시아 海洋貿易史의 관점에서 재조명하였다. ‘嘉靖大倭寇’를 진압하면서 1567년 시행된 月港 開港의 결과 전개된 ‘海上貿易의 許容’과 ‘日本의 排除’라는 모순적 상황, 하지만 그 속에서 포르투갈, 예수회, 스페인 등 다양한 국제적 매개자를 통해 오히려 활성화되는 中-日 간의 교역이 결국 직접 교역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일본의 불만을 누적시켰고, 이러한 상황이 임진왜란이 발생하는 國際的 契機

7
Article|4 citations·2016
正德帝의 南巡과 南京
조영헌

北京迁都以后,明代南京的地位发生了哪些的变化呢?本文为了更加具体的阐明明代的两京制下的南京的机能和历史的意义,侧重关注正德帝在北京和南京之间进行的南巡。 正德帝的南巡是明代两京制实行70余年后,唯一一次明代皇帝在两京间的巡幸。与国家安保相关,重视传统西北地区大部分臣僚们和固执考虑新的形成威胁的东南地区的皇帝之间出现了巨大的冲突。对上行和下行的路程中,皇帝的打猎、钓鱼,以及爱妾的同行,搜罗女性等等失德和过分自由放荡的游乐行为,以往的评价中通常会用“荒唐天子”来形容。 但是,在南京停留的8个月期间,正德帝的3次举动却和以往对他评价的形象相去甚远。第一,在朱宸濠叛军的目标据点南京长时间的逗留,都是使得不安的南方地区趋于安定的考虑。第二,在到达南京以前,正德帝下令“禁民间畜豬”。这比起说是从占术师们的姓名避讳论而言,更是为了顾及当时禁食猪肉的穆斯林们的一种措施。通过对穆斯林的怀柔政策,一方面是希望借此政策安抚穆斯林,是他们不要成为出现的在江南地区不安因素,防患于未然。第三,在南京期间,正德帝会见了第一次进入中国的葡萄牙使节团并允诺其可以进入北京城。这也同样解释了对异国和异民族的宽厚态度,以及避

8
Article|4 citations·2014
‘大運河時代’(1415-1784), 중국의 商業과 邊境 정책
조영헌

본 논문은 유럽의 ‘大航海時代(the Age of Maritime Expansion)’에 해당하는 15-18세기에 중국의 경제를 物資流通이라는 렌즈를 통해 새롭게 평가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를 위해 실험적으로 1415년부터 1784년까지의 370년을 ‘大運河時代’(the Age of Grand Canal)라는 분석의 틀(analytic frame)로 제시했는데, 이 시대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대운하시대’란 대내적으로 首都로의 국가적 물류 체계인 漕運이 북경과 항주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대운하로 일원화된 시기를 지칭한다. 즉 조운에 있어 海運이 금지된 시기이다. 둘째, 대외적으로는 他國과의 물류가 海禁 정책과 朝貢 체제의 기조 하에 밀무역 혹은 국가권력의 통제 하에 이루어지는 제한된 무역의 틀을 유지했다. 즉 국가 주도의 적극적인 대외 교류는 아니지만, 제한된 형식이나 사적인 방식의 대외 교류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대운하시대 중국은, 국가가 주도

9
Article|3 citations·2015
적수담(積水潭) (십찰해(什刹海))의 위상변화와 수도 북경(北京)의 상징성
조영헌
서울학연구

이 논문은 중국의 수도 북경의 역사적 의미를 검토하기 위한 일련의 연구 가운데 하나로, 積水潭 호수라는 도시 공간에 주목했다. 특별히 북경의 서북쪽에 위치한 積水潭(혹은 什刹海)의 기능 및 위상이 원조와 명조 사이에 어떻게 변화하는지와, 이러한 변화가 수도의 상징성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함께 검토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적수담이라는 호수는 원 대도와 명 북경에 동일하게 존재했으나, 적수담의 중심적 表象(representation)은 왕조 교체와 함께 크게 변화되었음을 확인했다. 우선 왕조 교체와 함께 도성의 구조가 변화했다. 즉 북경 성곽이 남쪽으로 약간 이동했고, 都城 안으로 진입이 가능했던 通惠河가 성곽 재건으로 인해 막혔다. 그 결과 大都에서 중심부에 위치했던 積水潭은 명 북경에서 서북쪽으로 위치가 변경되었고, 通惠河와 단절되어 漕運船의 북경성 진입도 불가능해졌다. 대신 명 북경의 積水潭은 성곽의 서쪽에 위치한 西山을 觀賞하는 遊覽地로유명해졌다. 首都로 物資를 집중시키는 중

10
Article|2 citations·2009
‘文明崛起’와 ‘제3세계’ - 2000년 이후 중국 고등교육의 세계사 인식 -
조영헌

与全球化时代相和谐的世界史的认知是对新的世界史的重视正在明显抬头,其主要的课题是以怎样的视角来克服所谓的“欧洲中心,中国副中心论”。本文针对这种意识问题观察了最近中国的高等教育界对世界史的认识及变化。本稿就这一主题进行了最基础的分析,首先将相关大学开设的世界史讲座与世界史教材的资料,在外形特征上进行了简略地整理,为日后能更深层地分析现在中国的高等教育界的世界史教育现状而提供帮助。 通过分析2000年以后的中国大学教育界的世界史讲座和教材中所出现的现象,可以看出世界史和中国史之间的区别在逐渐消失,这种变化说明中国对自己国家的历史和世界各国的历史已经有了很充足的研究人力和研究成果积蓄。[美] 斯塔夫里亚诺斯的≪全球通史≫及欧洲出刊的世界史教材中中国史比重都在逐渐增加,这种现象在中国高等教育界的世界史教材有着相似的特点。 分析其内容,可明显发现两个方面的特征。第一是,关注以文明为单位的“文明崛起”观念的盛衰过程,如由北京大学历史学科的12名教授共同执笔,馬克垚教授主编的≪世界文明史≫(北京大学出版社, 2004)中,最明显地体现了这一观念。第二是对第三世界发展中国家的历史的高度关心。在“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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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2 citations·2012
『金甁梅』를 통해 본 明末 臨淸과 大運河 유통망
조영헌

This paper seeks to define the geopolitical features and development process of Linqing(臨淸) of the Shandong province as an intermediary trade city along the Grand Canal in the late Ming mainly by analysis of the novel, Jinpingmei(金甁梅). In order to use the novel material which contains lively and somewhat exaggerative descriptions as the main source of analysis, I compared the contents of the novel with several materials regarding Chinese city and transportation history. After the reco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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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2 citations·2014
1848년 漕糧 海運의 중단, 敎案, 그리고 河運에의 ‘집착’
조영헌

This paper analyzes the sea transport of tribute grain, which was enforced in 1848, but was interrupted a year later. This analysis includes its background and the process of interruption, which allows us to examine the various forces responsible for its interruption even as the necessity for the sea transport gradually emerged. The 19th century has been known as ‘the Grand Canal crisis’ due to its serious problems connected with the Yellow River. The canal-grain transport system that properly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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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2 citations·2008
명청시대사 연구의 동향과 전망
조영헌
14
Article|1 citations·2012
청사공정 10년의 빛과 그림자
조영헌
http://www.nationsworld.kr/bbs/zboard.php?id=volume

This article is the study of The New Qing History Project, which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embarked on in 2002 and is expected to release in 2012. The New Qing History Project got attention for being the biggest Humanitarian and Social Science Project since the launching ofthe PRC in 1949. The biggest reason why PRC. launched The New Qing History Project in 2002 is because the Draft History of Oing (淸史橋) has been criticized for having many flaws. There were criticisms that the Draft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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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1 citations·2022
중국 대운하의 역사 기억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조영헌

장구한 역사를 가진 중국의 대운하 물류 시스템은 사실상 19세기 후반기에 막을 내렸다. 이후 1세기 이상 방치되어 있던 대운하가 2014년 6월 22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제38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원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를 부각하는 동시에, 얼마나 그 문화적 가치가 잘 보존되어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관리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증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른바 진정성(integrity)과 완전성(authenticity), 보호 및 관리 체계(protection and management requirements)에 대한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1세기 이상 방치되었던 대운하가 2014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고 중국 정부는 이를 통해 무엇을 기대했을까? 이는 직접적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프로젝트가

Research Areas

Ocean EngineeringSociology and Political ScienceAnthrop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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