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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Kel Lim

Sungkyunkwan University

研究室紹介

Professor Young-Kel Lim's research focuses on Korean literary and intellectual history of the Joseon dynasty, particularly the study of classical texts, Confucian thought, and the evolution of historical consciousness. His work explores the reception and interpretation of Chinese classical literature, the development of political and international thought in late Joseon scholars, and the critical analysis of historical manuscripts and personal writings. He also investigates educational materials in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especially the role of classical texts in modern curricula, reflecting a strong commitment to bridging historical scholarship with contemporary educational practice.

Joseon dynastyclassical Korean textsintellectual historyConfucian thoughteducational curriculum

Research Overview

Papers
11
Total Citations
7
Papers (5y)
8
Primary Field

Research Output Trend

Figures are computed from collected data and may differ slightly.

Publications per year (5y)
8total
2021
2023
2024
2025
2026
Citations per year (5y)
2total
20212023202420252026

Selected Pa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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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rticle|2 citations·2013
五洲(오주) 李圭景(이규경) 실학의 한 방향 -西勢(서세) 認識(인식)에서 국제통상론으로-
임영걸

李圭景(1788~1856)의 西勢 認識과 국제통상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적지 않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필자는 기존의 논저들이 이규경의 「斥邪敎辨證說」ㆍ「西洋通中國辨證說」ㆍ「與番舶開市辨證說」의 저술 연대 고증을 간과한 탓에 그의 서세인식의 변화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본고는 3개 텍스트의 저술 연대를 고증함으로써 그의 서세인식이 변화한 궤적을 재추적하고, 이에 따라 그의 국제통상론도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규경은 서세인식에 있어 李수光(1563~1628)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이수광의 영향으로 동서양의 왕래와 교류에 긍정적이었는데, 이는 그의 「서양통중국변증설」에 드러난다. 그는 1850년 이전에 저술한 「척사교변증설」에서 프랑스 함선의 무력시위를 목격하고 서양의 침략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적이 있으나, 1850년 이후에 저술한 「여번박개시변증설」에서는 그동안 있었던 동서양 사이의 마찰에 대해 서양의 입장을 옹호하며 서양과의 평화로운 무역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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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2 citations·2018
李睟光의 散文批評에 대한 一考 -唐宋古文의 愚劣批評을 중심으로
임영걸

본고는 李睟光의 芝峯類說 文章部에 보이는 唐宋古文작품의 우열에 대한 비평을 추려서 분석한 것이다. 우열에 대한 비평만을 추려서 고찰한 것은 우열의 판정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비평이라고 생각해서이며, 텍스트를 당송고문으로 한정한 것은 그동안 축적된 당송고문의 주석을 활용하여 조선 시대 독자와 현대 연구자 간에 존재하는 한문 이해력의 격차를 좁혀보고자 해서이다. 이러한 방법의 고찰을 통해 본고에서는 이수광이 당송고문 및 산문 작법에 있어서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준 세 가지를 도출할 수 있었다. 첫째, 문체 고유성이다. 이수광은 산문의 각 문체가 기원과 성격, 용도가 상이함을 인지하고 있었고, 각 작품에 그 문체의 성격에 걸맞은 작법이 사용되었는지를 비평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는 거시적으로는 형식과 내용, 미시적으로는 자구의 어조 등이 그 문체에 어울리는지를 따지고 있다. 둘째, 對句의 정교함이다. 이수광은 일찍이 막상막하로 일컬어지던 韓愈의 請上尊號表와 曾鞏의 賀熙 寧十年南郊禮畢大赦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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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2 citations·2024
魚叔權의 생애와 『稗官雜記』 성립 시기에 대한 고찰 — 魚叔權 年譜의 작성을 위하여 —
임영걸

본고는 魚叔權(1498∼?)의 『稗官雜記』와 기타 자료들에 보이는 어숙권의 행적에 대한 기록을 수합하여 그의 생애를 추적하고, 아울러 그동안 『패관잡기』 연구에서 잘 활용되지 않았던 柳希春(1513∼1577)의 『眉巖日記』의 기록을 참조하여 『패관잡기』의 성립 시기를 살펴본 결과물이다. 이러한 시도를 한 것은 『패관잡기』의 연구가 시작된 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연구의 기초라 할 수있는 어숙권의 생애에 대한 규명이 미흡하였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어숙권의 연보를 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 결과, 그의 연보를 다음과 같이 작성할 수 있었다. - 1498년(연산군4), 탄생하다. - 1522년(중종17), 黃海道에 반년 동안 머무르다. - 1525년(중종20), 吏文學官 시험에 응시해 2등으로 합격하다. 이때부터 崔 世珍(?∼1542)에게 몇 년 동안 吏文을 배우다. - 1533년(중종28), 5월, 賀節使를 따라 北京에 가다. 11월, 귀국하다. - 1536년(중종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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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1 citations·2016
조선 후기 『擇里志』의 읽기 방식 - 서발문 및 관련 저작을 중심으로 -
임영걸
어문연구(語文硏究)

본고에서는 『택리지』의 서발문 및 관련 저작을 수합하여 조선 후기 『택리지』 인식의 다양한 양상이 드러날 수 있도록, 저작을 내용과 저자의 소속 집단에 따라 세 부류로 분류해 보았다. ①李重煥 친인척의 서발문은 공통적으로 이중환의 고뇌와 저술 의도에 대해 추측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②洪重寅과 洪龜範의 「鄕居小誌」와 「觀擇里志書示我輩」는 당쟁의 폐해에 대한 고민이라는 『택리지』와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글임에도, 이중환이 제시한 삶의 방식을 자가당착이라고 비판하고 고향에서 원한을 피하며 소박하게 살 것을 제안하고 있다. ③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의 실학자인 丁若鏞과 李圭景은, 이중환이 암시한 당쟁의 폐해와 그에 따른 사대부로서의 고뇌에는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다. 대신 『택리지』에 담긴 정보를 정보 그 자체로 주목하고, 간략하게나마 자신의 지식으로 확충하려는 시도도 한다. 『택리지』를 정보서 내지는 실용서로 인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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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0 citations·2023
󰡔芝峯類說󰡕 소재 壬辰倭亂 기록에 대한 고찰 -筆記의 壬辰倭亂 기록물로서의 특성에 주목하여-
임영걸

본고는 李睟光이 저술한 筆記 『芝峯類說』에 담긴 임진왜란 관련 기록들을 고찰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고찰을 시도한 이유는, 필기인 『지봉유설』에는 임진왜란 기록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기 자료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종류의 기록들이 다채롭게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기는 일기 자료가 가지는 현장성과 즉시성은 없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수합한 다양한 견문과 정보를 종합하여 기록함으로써 일기 자료보다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존재한다. 본고에서는 필기의 이러한 특성에 주목하여 『지봉유설』에 수록된 임진왜란 관련 기록을 검토한 결과, 여타 임진왜란 관련 일기 자료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세 가지 종류의 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봉유설』에서는 임진왜란의 전체적인 경과를 요약한 기사와 전쟁의 승패 요인을 분석한 기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수광은 전쟁 초기 朝鮮의 연이은 패전의 요인을 훈련과 인력 확보 등 평소의 전쟁 대비가 미비했다는 점과 일본군이 鳥銃을 효과적으로 운용한 것에서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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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0 citations·2023
李睟光의 順天府使 재임 시절과 『芝峯類說』
임영걸

본고는 李睟光의 순천부사 재임 시절(1616~1619)의 행적과 『芝峯類說』에 수록된 順天 관련 기사들을 고찰한 결과물이다. 필자는 그동안 『지봉유설』이 1614년에 완성되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그 이후인 이수광의 순천부사 재임 시절의 견문이 『지봉유설』에 반영되어 있다는 것에 착안하여 이러한 고찰을 시도하게 되었다. 특히 『지봉유설』에 수록된 순천 관련 기사들을 열람하며 그가 순천부사로 있으면서 편찬한 순천의 邑誌 『昇平誌』와 참조함으로써 그의 순천에서의 견문이 『지봉유설』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수광은 光海君 정권과의 불화를 피해 순천부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丁酉再亂 최대의 격전지였던 순천은 그가 부임하였을 때는 전란이 이미 지나가고 평화를 되찾은 상태였다. 그는 순천의 아름다운 경관을 시로 노래하여 文人으로서의 면모를 뽐내는 한편, 지방관으로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며 정유재란으로 파괴된 八馬碑를 중건하여 현재까지도 순천의 상징적인 문화재로 남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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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0 citations·2024
2022 개정 중학교 한문 교과서의 漢詩 비중 축소에 대한 교원들의 의견 조사
임영걸, 장현곤

본고는 2022 개정 중학교 한문 교과서의 한시 수록 현황을 조사하고, 현직 중등학교 교원들에게 이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조사를 실시한 것은, 2015 개정 중학교 한문 교과서에 비해 한시의 비중이 대폭 준 2022 개정 중학교 한문 교과서에 대한 교육 현장의 의견을 수집해보고자 해서이다. 2022 개정 중학교 한문 교과서 11종 가운데, 한시를 전혀 수록하지 않은 교과서가 4종, 두 구절씩 자른 한시 한두 수를 수록한 교과서가 6종, 온전한 한시 한 수 이상을 수록한 교과서는 2종이다. 이는 평균적으로 3편 내외의 한시가 수록되어 있던 2015 개정 중학교 한문 교과서에 비해 대략 3분의 1로 줄어든 수치이다. 새 교과서의 한시 비중 축소에 대한 의견을 현직 중등학교 한문 교원 1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유효한 표본 109명을 추려내었다. 이중 약 33%(36명)가 한시 비중 축소가 타당하다고 답하였고, 약 67%(73명)가 한시 비중 축소가 부당하다고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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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0 citations·2024
朝鮮時代 從政圖 놀이의 향유와 관련 詩文들에 대한 고찰
임영걸

본고는 우리 선조들이 조선시대에 즐긴 놀이인 從政圖 놀이에 대한 기록과 종정도 놀이를 소재로 창작한 문학 작품을 수합하여 검토하고 분석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연구를 시도한 것은 기존 연구들의 자료 수합이 미흡했던 데다, 특히 종정도 놀이를 소재로 창작한 시문들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은 탓에 우리 선조들이 종정도 놀이를 즐기며 가졌던 사유를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구의 결과 종정도 놀이가 조선시대 내내 널리 향유되었음을 확인하고 우리 선조들이 종정도 놀이를 즐기며 얻은 사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종정도 놀이는 종이에 격자를 긋고 각 칸에 관직의 이름을 적어놓은 뒤 주사위를 굴려 얻은 끗수에 따라 자리를 옮겨 다니며 먼저 최고 관직에 도착하여 은퇴하는 이가 이기는 놀이로, 오늘날의 말판놀이와 비교해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규칙을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 관직의 특성을 반영한 규칙을 설정하여 놀이가 단조로워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고,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승진을 어렵게 설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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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0 citations·2025
申命圭의 『默齋記聞錄』 一考-성립 과정의 고찰과 내용의 개괄적 검토를 중심으로-
임영걸

본고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申命圭(1618∼1688)의 『默齋記聞錄』의 성립 과정을 고찰하고 그 내용을 개괄적으로 검토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연구를 시도한 것은 『묵재기문록』이 지금까지 심도 있게 연구되지 못한 것이 『묵재기문록』에 접근하기 위한 기초적인 연구가 미비했기 때문이라 생각해서이다. 연구의 결과, 『묵재기문록』의 가필 흔적, 原소장자 등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하고 대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신명규는 그는 그가 사망하는 해인 1688년까지 『묵재기문록』의 저술을 이어가다 그가 죽은 뒤에는 그의 막내아들 申鐔(1662∼1715)에 의해 가필이 이루어졌고, 그 뒤 후손 누군가에 의해 정리가 되어 현재의 규장각본 『묵재기문록』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추정된다. 규장각본 『묵재기문록』은 본래 그의 6대손 申錫老(1753∼?)가 소장하던 것이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수집되었고, 해방 후에 서울대학교로 옮겨졌다. 『묵재기문록』에는 총 259항목의 기사가 수록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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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0 citations·2026
어숙권(魚叔權)의 문학․외교 실무적 역량과 신분적 한계 -재능과 부조리 사이의 간극을 중심으로-
임영걸

본고는 어숙권(魚叔權, 1498~?)의 내면을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부’, ‘신분의 제약과 부조리 앞에서의 고뇌’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탐구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시도를 한 것은 기존의 연구가 그의 역량과 고뇌를 막연하게밖에 설명하지 못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패관잡기(稗官雜記)󰡕와 기타 자료들을 꼼꼼하게 읽어본 결과, 그의 능력의 구체적인 면모와 신분적 제약 속에서 그가 느꼈던 고뇌를 조명해 낼 수 있었다. 어숙권이 󰡔패관잡기󰡕에 기록한 일화와 비평, 그 외의 인물들이 남긴 문헌에 실린 일화나 증언을 통해, 그가 한시(漢詩)와 고문(古文)의 감상에 깊은 이해가 있었고, 창작 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스스로도 자신의 문학적 능력을 자부했음을 알 수 있다. 또 그는 외교 실무 면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지녀, 통사들 못지않은 어학 실력과 전문적인 이문(吏文) 작성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패관잡기󰡕에서 그의 외교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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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0 citations·2021
연세대학교 소장 『晩悟漫筆』의 작자에 대한 고찰
임영걸

본고는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에 소장된 『晩悟漫筆』의 작자를 밝히고 그의 가계와 일생을 개략적으로 고찰한 결과물이다. 그동안 『만오만필』은 筆寫記에 따라 작자가 安廷燮(1591∼1656)으로 알려졌으나 필자는 『만오만필』에 그가 사망한 뒤의 사건들이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고 작자를 밝히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결국 『만오만필』에 기록된 작자 자신과 선조들에 대한 정보와 그의 스승이었던 安鼎福(1712∼1791)의 『順菴集』에 수록된 작품 수 편을 참조하여 『만오만필』의 작자를 鄭顯東(1730∼?)으로 밝혀낼 수 있었다. 정현동은 자는 龍卿, 호는 晩悟堂이다. 1730년에 태어났으며 『만오만필』에 1812년에 남긴 기록이 있는 것을 볼 때 적어도 이때까지는 생존해 있었다. 그의 친가인 東萊鄭氏는 몰락한 南人 집안으로서 본래 대대로 서울에 살았으나 그의 부친이 武科를 포기함에 따라 田莊과 先塋이 있던 廣州의 慶安面으로 내려와 살게 되었고, 그의 외가인 德水李氏는 西人 명문가로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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