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하 교수
Eunha Oh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연구실 소개
오은하 교수의 연구실은 식민지와 반식민주의, 성별과 권력의 정치를 중심으로 문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언어의 힘과 책임을 탐구합니다. 특히 사르트르의 정치적 글쓰기와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서사가 사회적 억압을 어떻게 도전하고, 언어가 어떻게 권력과 고통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는지를 분석합니다. 문학이 단순한 표현을 넘어 실천이 되기 위한 조건, 즉 독자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중심으로 연구합니다.
연구 현황
연구 성과 추이
표시된 성과는 수집된 데이터 기준으로 산출되며,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요 논문
7알제리전쟁 시기 사르트르가 쓴 반식민 논설은 “자기 시대를 위해 쓰기”라는 자신의 원칙을 전적으로 관철한 글들이다. “식민주의는 시스템”이라는 말로 그는 식민주의의 경제적 토대와 경제로만 환원되지 않는 행위자의 문제를 동시에 강조한다. 인종주의를 관찰할 때 잘 드러나듯 식민자와 피식민자는 ‘식민주의적 실천’과 더불어 매 순간 다시 생성되고, 이를 통해 식민주의 시스템은 개별 식민자들 안에 구현된다. 개별 행위자들이 매번 실행하면서 그들의 지위를 재확인하고 사회경제적 관계를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고문이라는 경악스러운 행위 역시 일탈이 아니라 알제리전쟁의 가장 깊은 진실을 나타내는 현상이다. 사르트르가 칼처럼 펜을 휘두르는 대상은 적이 아니라 ‘우리’, 무기력에 빠진 프랑스인들이다. 그는 방관하는 우리 역시 공모자라는 자각을 불러일으키며 서구인들의 내적 모순을 고발한다. 역사 속에서 전개되고 역사에 작용하는 행동으로서 ‘프락시스의 문학’을 추구한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주장은 『상황,
『사건』은 아니 에르노가 20대 초반 겪은 임신 중절 시술의 기억을 되살려 쓴 글이다. 1960년대 당시 낙태는 불법이었고, 여성들은 사회적 억압과 법적 금지 속에서 침묵해야 했다. 침묵을 종용하는 진술 억압을 뚫고 경험을 직접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성취이자 투쟁이 되었다. 낙태합법화 운동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1971년의<343인 선언>이 실명으로 낙태사실을 고백한 것처럼, 에르노도 자신의 고백을 낙태를둘러싼 법적, 사회적 금기와 맞서는 사회적 고발로 만드는 전략을 쓴다. 『사건』의 서술은 흔히 임신중지에 따라오는 감정이라 생각되는 수치, 슬픔, 죄책감 등을 드러내지않음으로써 감정 각본을 거스른다. 희생자로 자처하지 않기 위해 자부심을 표현하고, 고통받고 재생산하는 몸을 통해 자기 경험을 집합적 차원으로 확대하고, 수치에서 벗어나려는 작가적 수행을 한다. 개인적 경험의 진술에 집중함으로써 사회적 문제제기를 하는 에르노의 태도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들
본 연구는 식민주의에 대해 쓴 사르트르의 정치적 글들, 특히 식민지 출신 지식인들의 책에 붙인 서문을 그 자신의 문학론에 비추어 읽어보려는 시도이다. 수용자의 지위를 ‘호소로서의 글쓰기’라는 제안을 통해 작품을 함께 완성하는 자로서 복원한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이론은 식민자와 피식민자로 양분된 분열된 대중을 대해야 하는 반식민주의 논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사르트르는 언젠가 가 닿아야 할 ‘잠재 독자’와 지금 여기서 글을 읽을 ‘실제 독자’를 구분하고, 실제 독자에 대한 고려를 우선시한다. 그는 반식민주의 서문의 ‘실제 독자’에서 피식민자와 식민주의자를 제외하고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자유주의적 유럽인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식민자 집단에 속하는 작가는, 자신도 공유하는 자기 집단의 불편한 의식을 ‘우리’에게 비춰주면서 우리 스스로의 해체를 촉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문 집필자로서 자기 역할은 피식민자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의 글을 유럽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스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을 위해 쓴 사르트르의 서문은 폭력을 옹호하는 논리 못지 않게 폭력적인 표현 방식 때문에도 비판을 받았다. 텍스트의 폭력성을 낳은 원인으로 알제리전쟁 자체의 폭력성, 상황의 변화에 따른 정치적 전략의 변화,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자체의 과격함의 영향과 파농의 요구 반영 등을 꼽을 수 있다. 반면에 파농 서문의 공격적 어조를 말의 무력함에 대한 절망에서 나온 것으로 읽거나 행동의 부재를 말의 과격함으로 과잉보충했다고 보는 견해도 많다. 사르트르 스스로 말의 힘에 대한 회의감을 자주 토로했다는 사실이 이런 해석의 근거가 된다. 전략인가, 절망의 산물인가? 이 두 요소는 모두 ‘수치’라는 정서와 연결된다. 노골적이고 거친 말은 독자에게도, 또 그 말을 한 사람 스스로에게도 수치심을 안긴다. 사르트르는 독자의 무관심과 수동성을 깨뜨리기 위해 거친 언어를 사용했고, 그러면서 그들과 스스로를 동시에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이 때의 언어는 도구이되 급박한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산문적 언어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유리’ 비유는 문체의 효과를 통해 추구해야 할 가치로서 투명성을 강조하지만, 이는 언어 자체의 투명성에 대한 단순한 신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건네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놓인 유리는 화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순수한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는 매개와는 다르다. 유리-말은 관통되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수동적 이미지가 아니라 스스로 움직여 햇빛을 통과하는 능동적인 이미지로 묘사된다. 언어는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육체라는 한계 속에서 자기방어나 공격의 도구로 작동한다. 이때 투명성은 고정된 속성이 아니라 달아나는 유리처럼 말이 시선을 스쳐 지나가는 찰나에 발생하는 순간적인 효과다. 언어로 구축된 작품이 도구이자 무기가 된다면 이 무기를 실제로 휘두르는 주체는 작가가 아니라 독자이며, 작품은 독자가 사용하는 동안에만 그 효력을 획득한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에 대한 비평은 종종 엠마 보바리를 소환하며, 작가를 여성인물로, 창작을 개인적 경험의 토로로 환원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여성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와 성적 고백에 대한 선입견이 결합해 이 작품에 대한 폄하를 초래한다. 여성이 욕망을 표현하는 일의 위험성은 작가에 대해 외설적이라는 비난과 용기있다는 찬사를 동시에 불러온다. 작가는 이 글이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처럼 경악과 당혹을 자아내길 원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도발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열정 자체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여성 스스로 표현하는 쾌락은 기다림과 상상에서 비롯되며, 상대 남성은 중심적이지 않다. 화자는 수동적인 로맨스 소설 속 전형적인 여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열정의 수동성을 적극적으로 원하고 구성하며, 나아가 그 열정을 글로 씀으로써 주체의 위치를 점유한다. 에르노는 열정을 정당화하지 않고 단지 제시하기 위해 여성적이고 사적인 일상의 기호들을 작품에 삽입한다. 이러한 기호들의 상투성은 열정
본 논문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독해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온 제4장 「1947년 작가의 상황」의 문제의식을 출발점으로 삼아 사르트르의 언어관을 재검토하고자 한다. ‘말이 병들었고 그것을 치료해야 한다’는 그의 언어 인식은 20세기 초 언어의 혼란과 그에 대한 문학적 대응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언어의 위기 앞에서 많은 작가들이 언어 자체의 파괴를 통해 새로운 표현을 모색했으나, 사르트르는 이러한 시도를 언어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보고, 제2차 세계대전의 체험을 통해 자각한 말의 윤리적 책임을 근거로 비판했다. 그는 언어를 개인의 소유물이나 정복의 도구로 여기던 관점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관계를 매개하는 집합적 수단으로 재정의하며, 이 이행을 작가의 성숙으로 제시한다. 언어의 회복은 기만적 신화를 걷어내는 정화 작업과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의미를 새롭게 확장하려는 시도를 동시에 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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