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섭 교수
Hosseop Jeong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 인문학
연구실 소개
정호섭 교수의 연구실은 고구려사와 백제사의 고대 유적, 금석문, 묘지명 등을 중심으로 한 고고학적·문헌적 분석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고대 정치사와 다문화 사회의 형성 과정을 탐구합니다. 특히 고구려 왕릉, 벽화고분, 중국계 이주자들의 신분과 사회적 위치, 그리고 국경지대의 역사적 변천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문헌, 고고자료, 지리정보를 융합한 종합적 연구를 추구합니다. 연구는 고구려의 영역 확장과 다문화적 사회 구조, 상장례 제도 등 고대 국가의 정체성과 권력 구조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연구 현황
연구 성과 추이
표시된 성과는 수집된 데이터 기준으로 산출되며,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요 논문
15안악 3호분의 피장자가 동수 이외의 다른 인물로 설정하기는 어렵다. 덕흥리 고분의 진도 중국계 인물로 보인다. 우산하 3319호묘의 피장자 역시 동진 사람이었는데, 어떠한 연유로 고구려에 와서 활동한 사람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정황을 보면 고구려에는 상당수의 중국계 인물들이 반독립적인 상태로 혹은 고구려에 완전히 귀속되어 존재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4-5세기에 고구려에는 이들과 같은 존재들이 활발하게 활동한 것 같다. 아마 4-5세기는 동아시아에 있어서 격변기였다고 생각된다. 모두루총의 피장자 역시 모두루 이외에 생각하기 어렵다. 명문자료들을 볼 때 이들의 존재양식은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달리 나타나고 있다. 한편 고구려 벽화고분 내에 단편적으로 명문을 남기고 있는 10여기의 고분의 피장자의 신분도 일부는 추측이 가능하며, 그들의 신앙이나 내세관도 벽화와 함께 살펴보면 짐작되는 면이 있다. 최근 수릉이나 귀장 문제는 문헌기록도 소략하고, 무덤축조 시기를 정확하게
This study is a basic step for a synthetic examination of existing reports on the royal big stone-filed tombs in the region of Jian and then to understand the royal big stone-filed tombs of Goguryo by the forms and chronology of the royal tombs. This is basic study for burial site and master of the Goguryo stone-filed tombs Stone-filed tombs of Goguryo is consisted of four exterior forms (non-stylobate, fence, stylobate, stairway) and four interior forms (stone outer coffin, stone burial hole ,
고구려사와 관련하여 2000년대 이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이는 중국동북공정에 대한 영향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고구려사에 대한 관심도가증가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연구자의 수도 늘었고, 간행된 관련 자료도 증가했으며, 발굴 성과도 다수 제시되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구려사 연구가 질적·양적인 측면에서 진전과 도약이 있었고, 주제가 다양해지고 연구가 세분화되면서 쟁점 역시 심화된 측면이 있다. 특히 기존자료의 재검토와 신자료에대한 검토가 이루어졌고, 연구의 심화와 다각화가 나타났다. 특히 문헌과 금석문, 고고자료를 모두 활용하는 연구 비중이 상대적으로 증가하였다. 연구주제별로는 비문, 묘지명, 묵서명, 기타 명문자료 등 고구려 금석문과 관련한 연구가활성화되었고, 도성을 비롯한 공간에 관한 관심이 증가하였으며, 대외관계사연구와 함께 이와 연관되는 전쟁과 영역 연구가 두드러졌다. 고구려사 관련 연구자가 늘어났고, 고구려발해학회 등의 전문학회가 체계적으로 갖추어졌으
본 논문은 녹둔도에 대한 문헌기록을 검토하고, 이에 더하여 회화 및 지도자료, 그리고 지리적조사 성과를 활용하여 녹둔도농보의 위치를 밝히고자 하였다. 두만강 하구에 위치했던 녹둔도는조선시대 이래 국경의 군사 요지로서 관리되었다. 이른 시점부터 둔전이 설치되었으나 여진족과의 충돌 속에 운영이 정지되기도 했다. 16세기 중후반 둔전이 다시 설치되었고 이순신의 지도하에 높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녹둔도 전투 이후 다시 폐지되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녹둔도는 점차 청측에 연접하게 되었다. 조선은 자국의 영토로서 녹둔도를 확보하기 위해 여러 관리 방안을모색했으나, 둔전설치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리고 1860년대 이후 러시아가 영유권을 행사하게 되었으나 조선은 이를 돌려받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한편 녹둔도농보의 위치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문헌자료에 대한 엄밀한 재검토뿐만 아니라, 지도, 회화, 그리고 지리적 연구성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만 한다. 녹둔도는 인공적인 구조물을 상정해야하며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와 백제 유민 墓誌銘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주로 출자를 비롯한 정체성 문제, 그리고 당에서의 행적 등에 집중되어왔다. 그러나 묘지명의 내용이 단편적이라고 하더라도 묘지명을 당대인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사료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볼 필요성이 있다. 본고는 이러한 차원에서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 묘지명을 통해 관인으로 살았던 그들의 상장례를 집중해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喪葬令이나 喪葬禮와 관련하여 주로 賻物, 官給, 護喪, 解官, 勅葬, 服喪, 贈諡 등과 관련하여 검토하였다. 이들 묘지명에 단편적인 내용들을 통해서라도 상장례의 실상을 이해하고 당나라 관인들과의 차별성도 밝혀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당나라 관인으로서의 주류 사회에 동화, 편입되기를 갈구했던 존재들로 관품에 따른 상장령이나 황제의 조칙에 의한 상장례를 하였기 때문에 큰 차별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유민 연구가 정체성에 집중되고 있는 점은 민족주의적 입장
대표 연구 분야
정호섭 교수의 연구를 Nubint에서 더 깊이 살펴보세요
이 연구실의 논문을 앱에서 열어 AI와 함께 읽고, 핵심을 요약하고, 내 글에 인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