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석윤 교수
Moon Suk Yoon
경희대학교 철학과 · 사회과학
연구실 소개
문석윤 교수의 연구실은 조선 성리학의 도덕 철학과 실천 이론을 중심으로, 다산 정약용, 율곡 이항재, 퇴계 이황, 성호 이준재, 위암 이선 등 주요 사상가들의 도덕적 자아, 마음론, 실천 철학을 비교·분석함으로써 유교 철학의 실천적 정신을 재해석하고자 한다. 특히 도덕적 주체성, 인식과 덕성의 관계, 성리학 내부의 이론적 갈등과 논쟁을 중심으로 한 철학적 분석을 통해 전통 사상의 현대적 함의를 탐구한다. 연구는 전통적 유교 사상의 이론적 깊이를 넘어서, 서양 철학 및 근대 사상과의 대응 구조를 모색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연구 현황
연구 성과 추이
표시된 성과는 수집된 데이터 기준으로 산출되며,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요 논문
15다산은 당대의 도덕-실천의 위기를 감지하고 그를 극복하는 것을 자신의 주요한 과제로 삼았다. 그는 당시의 도덕 이론의 빈곤에 도덕-실천의 위기가 있다고 보고, 그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도덕 이론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산이 극복의 대상으로 삼은 당대의 도덕 이론은 주희(朱熹)의 견해를 정통으로 이해하는 조선성리학(朝鮮性理學)의 도덕이론으로서, 마음을 존재론적으로 한편으로는 기(氣)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여 도덕을 자연적 능력의 일종으로 보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이(理)에 종속된 것으로 봄으로써 도덕에서의 개인적 주체의 역할을 약화시키는 문제점이 있었다. 다산은 마음을 기(氣)와 분리시켜 자연적 능력의 차이를 초월한 신(神)적 기원과 속성을 가진 구체적 실체로 이해하고, 또한 그 내부에 절대적인 도덕적 가치의 내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이(理)와 기(氣) 양(兩) 방향의 규정으로부터 도덕 실천을 해방시켜, 도덕 실천을 개인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
巍巖 李柬은 湖洛論爭 形成期에 南塘 韓元震과 치열한 論辨을 전개함으로써 湖學 측의 관점이 형성되고 정리되는 데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그가 취한 논지들은 대체로 洛論的 성격을 띤 것이었지만, 洛學 내부에서 활발하게 논의된, 未發에서 知覺의 有無 문제나 未發에서의 工夫의 가능성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巍巖에게 중요했던 것은 미발에서의 궁극적 체험 자체가 아니라, 本心이 本體를 순수하게 구현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것을 현실세계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오직 그렇게 할 때 實事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理氣同實, 心性一致’라는 명제로 요약하였다. 性 즉, 理를 실현함에서 心의 실천에 대한 강조는 巍巖의 未發論 더 나아가 그의 思想 전반이 가지는 분명한 특징이다. 그것은 또한 栗谷의 實踐精神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退溪의 『聖學十圖』 修正은 第4圖 「大學圖」의 原圖인 陽村 權近의 「大學之圖」에 대한 것, 第6圖 「心統性情圖」의 原圖인 程復心의 「心統性情圖」에 대한 것, 그리고 그 中圖와 下圖에 해당하는 퇴계 자신의 그림들에 대한 것, 第7圖와 第8圖의 자리바꿈 등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수정에 관해 검토함을 통해 우리는 퇴계가 『성학십도』에 기울인 공력과 정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으며, 『성학십도』가 단순히 기존의 선현들의 설을 집성하여 편집한 것이 아니라 퇴계 학문의 精髓가 결집되어 있으며, 퇴계가 그를 통해 자신의 보편적인 학문의 이상을 제시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우리는 『聖學十圖』 定本의 구성을 위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퇴계의 수정 의견이 가장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이, 海州本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星湖 李瀷은, 畏庵 李瀷의 「堂室銘」에 대한 비판을 통해, 心은 心臟과 연속성을 가지며 동시에 그를 초월해 있는 神明이라고 파악하였다. 그는 畏庵이 天地의 神 혹은 神明과 인간의 神明을 동일한 것으로 봄으로써, 인간의 도덕적 주체로서의 心이 구체적인 신체에 기반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성호는 도덕적 주체로서의 우리의 心은 먼저 신체에 기반을 둔 개체적인 것이며, 동시에 심장의 범위를 넘어서서 신체 전체와 관여하며, 더 나아가서는 외부세계 전체를 그러한 신체적 동일성을 바탕으로 수용하고, 또한 자신의 도덕적 자각에 기초하여 반응하는 인간적 감응 활동의 중심 혹은 주체인 神明라고 보았다. 성호는 인간이 草木이나 禽獸, 天地 등 여타 존재와 구별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성호의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인 성리학 내부의 미진한 관점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하면서 형성된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또한 당시 새로
問目은 질문 항목을 의미하는 것으로 問目과 그에 대한 答書는 學習的이거나 論辨的 수준에서 이루어진 書面 對話라고 할 수 있다. 그를 통해 우리는 당사자들의 주요한 이론적 실천적 관심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栗谷은 1558년과 1570년 세 통의 問目을 退溪에게 보냈다. 그 問答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한편으로 청년기에서 장년기에 걸치는 시기의 율곡의 관심과 생각에 접근해 볼 수 있으며,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것이 퇴계의 관점 및 생각과 어떻게 다른 가하는 데 대해 알아 볼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그러한 작업을 통해 율곡이 도덕 실천에서 認識 모델을 취하고 있는 반면, 퇴계는 德性 모델을 취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율곡의 인식 모델이 도덕적 善의 보편적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라면, 퇴계의 덕성모델은 도덕적 善의 철저한 體認과 體化를 결과하고자 하는 데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율곡과 퇴계 사상의 특징적
A Study of the Debate on Human Nature (人物性同異論辨)between Yi Kan (李柬) and Han Wonjin (韓元震)
본성[性]과 마음[心]과 성인(聖人)은 맹자 도덕론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본성은 곧 ‘도덕 생명’으로서, 자연적으로 혹은 하늘로부터 자연 속에로 부여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연적 혹은 생물학적 생명’과 구별되지만, 그것을 배제하거나 초월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전인적 생명에서 생물학적 생명과 도덕 생명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으며, 도덕은 그러한 전인적 생명의 중심으로서, 인간의 생물학적이고 심리적이며 사회적인 전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런 점에서 맹자는 ‘확장된 자연주의’를 표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자연 생명이 성장하는 것처럼 도덕 생명도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자연적으로 혹은/그리고 적절한 수양의 노력을 통해 형성되고 성장한다. 바로 그때 본성은 개별적 덕성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마음이 등장하는 것은 이 맥락에서이다. 마음은 인간의 인지적이고 실천적인 능력으로서 사유하며, 추리하고, 이미 알고 있고 행하고 있는 것
송대(宋代) 도학(道學)이 성립되면서, 문집(文集)은 단순히 개인적 창작 모음집이 아니라 도학적 진리를 담고 있는 경전적(經典的) 성격을 지니게 되며, 한편으로 그것을 지지하는 문인(門人)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게 한다는 공적(公的) 의미를 얻게 되었다. 즉 적어도 그 문인 집단 내부에서는, 마치 경전(經典)이 그러하듯이 제자들의 공의(公議)를 수렴한 정전(正典)의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문집인 『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은 우리나라에서의 문집 편성에서 그러한 도학적 전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논문에서는 1600년 초간(初刊) 된 후, 1843년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중간(重刊)되고, 1869년에 이르러 문집 범위를 넘어서서 퇴계의 저작들과 관련 자료들 전체를 모은 전서(全書)의 체제로 편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대폭산거(大幅刪去)와 전고수록(全稿收錄)이라는 두 가지 편집 방침의 대립과 절충이라는 관점에서 검토하여 보았다
惺齋 宗家에 보존되어 온 惺齋手筆 『退溪先生書』는 퇴계가 惺齋 琴蘭秀(1530-1604)에게 보낸 書簡과 詩들을 성재 스스로 작성 날짜순으로 정리하고 淨書한 자료로서, 퇴계 사후 문집 편성 작업이 시작되었을 때 납본되었다가 中草本이 편성된 후 다시 성재 종가로 반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이후 수차례에 걸친 퇴계 저작의 定本 편성 사업에서 母本의 역할을 한 中草本 『退溪先生集』의 편성을 위한 祖本으로 활용되었으며, 또한 특히 續集의 편성에서는 底本의 역할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해당 자료에서 퇴계 저작의 원형에 가장 근접한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으며, 아울러 문집의 中草本 편성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이후의 定本들의 편성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깊이 할 수 있다. 더욱이 그에 수록된 시 3首는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逸詩라는 점에서 그것의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하겠다.
By showing its organic linkage between theories of human nature and governance, this article illustrates that the Huainanzi is a scripture that holds a systematic and unique theory. The ideal governance of the Huainanzi is mystical transformation (shenhua 神化), i.e. the Daoist concept of non-action (wuweizhizhi, 無爲之治). Rule by simple Confucian rituals is not at odds with mystical transformation. However, mystical transformation does not include the rule by rituals. Moreover, excessively complicat
Through his essay 「Questions on the “Haoran Chapter” of Mencius」(浩然章質疑), Ouam(尤庵) Song Siyeol(宋時烈:1607∼1689) stressed the centrality of Xin(心) in constructing the self-identity as a Confucianist in his period, so to speak, Shidafu(士大夫). According to him, Xin(心) has the governance-priority over the Qi(氣) and generation-priority to Yan(言: language), and has infinitude in its originality. Song Siyeol suggested that in such perspectives Xin could be construed as Li(理). Song’s this suggestion provo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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