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내현 교수
Nayeon Hyun
고려대학교 역사교육과 · 사회과학
연구실 소개
권내현 교수의 연구실은 조선시대 가족·친족 제도의 형성과 변화를 유교 이념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구조, 지방적·계층적 차이를 고려하여 다각도로 분석한다. 특히 양반 계층의 가계 유지를 위한 입양 제도, 평민층의 부계 가족 체계 수용, 그리고 사회적 신분을 초월한 ‘모방’과 ‘저항’의 양면성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사회의 정체성과 계급 구조를 탐구한다. 이는 전통 사회의 가족 제도를 단순한 유교적 이상론을 넘어 실질적 사회 실천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연구 현황
연구 성과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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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논문
15The Joseon people of the higher social stratum were much concerned about instituting the patriarchal family and establishing the order of kinship from the beginning of the dynasty. Adoption was one example of their efforts to settle down the family succession without much difficulties. In Danseong area of the Gyeongsang province the case of the adoption for family succession could be traced early in the 16th century. However, this new custom was yet to be instituted for the mighty clans until 17
The Nature of Household Registers and Household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New Points of Contention
Building up the tension between Ching and Chosun at the first half of the 17th Century, and Defense of Pyong-An Province
Marriage Aspect of Members of the Single-Lineage Village in the Late Joseon DynastyAndong Kwons' Case of Sindeung Myeon, Danseong Hyeon
한국사회의 부계 가족・친족 체계는 고대사회 이래 지속적으로 강화된 것인지, 아니면 양변적 친족 체계가 17세기 들어 부계 중심으로 전환된 것인지 논란이 있다. 이 논쟁은 제도와 관행 가운데 무엇을 우위에 두고 가족・친족 체계를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한편으로 한국학계는 일반적으로 부계 가족・친족의 형성, 확산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유교 이념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견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지역 양반층의 영향력, 경제력 하락과 일부 평민층의 성장과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을 경시하게 할 우려가 있다. 더구나 부계 가족・친족은 삼남으로부터 서북지역으로 확산되는 지역적 편차가 존재했으며 양반 지배층으로부터 평민으로 확산되는 계층적 편차도 존재했다. 특히 19세기 활발하게 전개된 평민의 부계 가족・친족 체계 수용은 양반 문화의 모방을 통한 사회적 성장의 방편이 되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부계 가족과 친족을 이해하는 몇 가지 요소를 통해 조선시대의 사회와 문화에
The lowborn people of the Chosŏn society strove both for resistance and imitation in order to promote their social status. As the contradiction of the yangban-centered ruling system intensified, they resisted collectively. On the other hand, they tried to improve their economic power by which means they were eventually able to imitate the internal and external conditions set for the status of the yangban class. With a great amount of time and effort required, the act of imitation was stimulated
The Support of P'yngan Province for Dispatching an Envoy to Qing Dynasty in the late 17th century and the early 18th century Kwon, Nae-hyun
"Chunhyang-Jeon": The Yangban Officials in the Joseon Dynasty
이 논문은 『단성호적대장』을 통해 17~19세기 기혼 여성의 지칭어 변화를 살펴본 것이다. 조선시대 기혼 여성은 최하층 노비가 아니라면 자신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드러내거나 사용하지 않았다. 노비가 아닌 기혼 여성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씨, 성, 소사로 지칭이 나뉘어져 있었다. 여성들의 지칭은 일차적으로 남편의 직역, 남편이 없는 경우에는 주호의 직역에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남성들이 자신들의 직역을 보다 상위의 것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지칭 역시 변동하고 있었다. 그러한 변동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그 방향은 상승이나 하강 혹은 하강 뒤 재상승이라는 다양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지칭은 때로는 남성의 직역과 상호 조응하지 않은 채 남성 직역이 가지는 사회적 위상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었다. 19세기 후반에서 말 사이에는 호적에 등재된 남성의 상당수가 유학 직역을 사용했던 것처럼 여성의 지칭 역시 씨로 수렴되면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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