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린 교수
Rin Hong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과
연구실 소개
홍린 교수의 연구실은 유교 사상사와 전통 공부론을 중심으로, 특히 주자학의 학문 철학과 실천 철학의 양면성을 탐구한다. 주로 오징, 왕양명, 호상학, 권근 등 주요 사상가들의 사유를 통해 지행일치, 도통론, 예의의 본질 등 유학의 핵심 문제를 재해석한다. 특히 정주학과 육학의 갈등 구조, 공부론의 역사적 변천, 의례와 질서의 철학적 기능을 분석하며, 전통 사상의 현대적 재해석을 추구한다.
연구 현황
연구 성과 추이
표시된 성과는 수집된 데이터 기준으로 산출되며,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요 논문
7원대 유학자 오징(吳澄)은 주희의 사전제자이지만 주륙화회 혹은 육학에 귀의했다는 평 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 근거는 그가 주희 후학들의 도문학 학풍을 비판하고 존덕성을 강 조했다는 것이다. 오징이 육구연에 대해 수차례 호의적으로 언급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학파적 정체성 및 공부방법론을 변경했다는 근거가 되기는 부족하다. 그가 주희와 육 구연에 대해 논하면서 진지와 실천을 강조한 대목은 주륙화회의 대표적인 근거이지만, 이 는 전형적인 정주학적 선지후행의 구조를 견지한 것으로, 주희 후학들의 지행분리와 대비 되는 육구연의 실천적 기풍에 호감을 표시했을 뿐이다. 또한 오징이 강조한 존덕성 공부는 육구연이 비판한 정주학적 주경공부라는 점에서 존 덕성 공부를 강조했다는 것은 육학에 귀의한 근거가 될 수 없다. 오징은 표면적으로만 주 경공부를 강조했던 것이 아니라 공부의 세부항목에서도 정주학적 공부방법을 계승했다. 대표적인 것이 미발시의 정제엄숙과 이발시의 성의(誠意)
유학의 본령은 실천에 있고, 따라서 지행일치 문제는 유가 철학사상의 주요 쟁점이었다. 왕양명(1472-1528)은 정주학 전통의 학인들의 지식을 추구하는 공부가 도덕실천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하는 점과 본래의 심성수양지학의 취지를 급속히상실하고 속학으로 전락했던 점을 비판했다. 다만 “앎”을 비근하고 일상적인 도덕실천을 위한 앎과 복잡하고 난해한 도덕 판단과 관련된 앎으로 나누어 볼 때 정주학은 전자를, 양명학은 후자를 더 중시하는 특징을 보였다. 육왕학적 지행관으로 경도된 것으로 알려진 오징은 실제로는 여전히 정주학의 자장 속에서 격물공부의 본래취지를 회복할 것을 요구했다. 그가 비록 표면적으로는 정주학 전통의 학인들의 지행불일치의 문제를 여러 차례 비판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주학적 지행관 및 그로부터 비롯된 격물치지 공부방법을 옹호했으며, 정치와 교화를 담당할 주체인 사대부들이 광범위한 도덕지식을 축적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오징이 격물공부를옹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
오늘날 주자학은 여전히 이기·심성론을 위주로 진행되고 있고, 이는 서양철학의 형이 상학, 존재론, 인식론의 틀에 맞추어 동양철학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던 현대 신유가의 노력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전통시대 사상가들의 개념과 명제를 형이상학과 인식론으 로 구성하는 철학적 작업은 그들이 처했던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단 장취의와 오독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지성사와 예학 등 주자학에서의 역사적 연구는 개념과 명제를 통해 제시했던 표면적인 의미 뿐 아니라 여기에 함축된 문제의식과 지향점 을 확인하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 국내 지성사 연구들은 정주학의 출현을 요청했던 사대부들의 정치·사회·문화적 정 체성과 “학문”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들은 여러 주자학 연구들이 간과하고 있 는 “누가, 왜(무슨 문제로 인해, 무엇을 하기 위해)”라는 문제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주자 예학은 주자학적 이상의 실현방법과 공부론의 현실적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80년대 이래 문화심리학에서는 한국 특유의 심리현상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 중 체면, 눈치, 의례성, 권위주의 등은 그 연원이 유교문화의 “예”와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지목되었다. 다수의 연구자들은 이와 관련하여 외면적 형식주의와 허식성, 억압적 질서의 옹호 등 역기능을 부각시켰으며, 이들이 기존의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질서를 옹호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비판이 예의 변질에 대한 것이라면 타당하지만, 이것이 곧 예의 본래 취지라고 한다면 이는 상당한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상고시대 예는 제의에서 기원하여 사회 전반의 행위·통치 규범으로 확대되어 사실상 오늘의 법률에 해당하는 구속력을 가졌다. 예에서 서열관계가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목적은 질성의 회복과 유지에 있었으며, 이는 예가 가지는 강자에 대한 제약과 약자에 대한 보호의 기능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 제4장에서는 이 점을 논증하기 위해 상급자와 강자가 일치하는 경우와 불일치하는 경우 예
호상학은 그 철학사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호상학의 핵심 공부론인 찰식과 함양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여전히 엇갈리고 있으며, 특히 호상학의 함양공부론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에 본 논문은 실천 문제를 중심으로 호상학의 찰식-함양 공부의 실제 취지에 대한 해명을 시도했다. 호상학은 자체적으로 체계적인 서술을 남기지 못하고 비판자인 주희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주희의 비판을 토대로 하되, 이를 거울 삼아 호상학의 본래 취지와 (주희의 비판을 초래한) 실제 양상을 구분하여 호상학의 공부론 구조를 탐색했다. 우선 찰식과 관련하여, 호상학자들이 본체를 인지적 인식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또한 이 자체를 공부의 종지로 여기지도 않았다. 찰식이 중요한 까닭은 양심의 발현을 자각적으로 포착하고 선을 실천할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찰식과 더불어 함양(존양)이 공부의 항목으로 제시되었던 것에서 확인될 수 있다.
권근은 같은 시기 활동한 정도전과 비교하여 군권과 서열질서를 옹호했다는 평가와, 상대적으로 온건하지만 경연 및 간관 제도 등 군권에 대한 견제장치를 설치했다는 평가를 모두 받고 있다. 본고는 『주역천견록』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가 국정운영 주도권의 소재를 확정하기보다는 군신관계의 다양한 상황에 따른 유연한 지침을 내리고 있다고 평가한다. 우선 유약한 군주의 경우 강명한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신하에게 과도한 주도권을 내주어서는 안 되고, 강명한 신하들 역시 유약한 군주라고 해서 넘보아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특히 강명한 군주가 재위할 시 군주를 범하려는 시도는 도덕적 오명과 일신상 불행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군주가 신하를 높여야 하며 신하는 두려움과 조급함을 참고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군주를 거부하는 주체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러한 군신조화는 안민이라는 유가의 정치적 이상을 추구할 때에만 정당화됨을 강조했다. 권근의 군신공치론
오징은 주자학과 상산학을 절충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지만, 실제로는 주자학의 격물치지 공부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학자이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학기」 편을 격물치지 공부 과정으로 이해했던 주해에도 잘 드러나 있다. 오징은 주희 후학들이 심성수양의 학문으로서의 격물치지의 취지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비판하고, 그 원인으로 과거시험을 위한 사장지학을 지목했다. 물론 현실적으로 학문과 관료 선발이 분리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따라서 그는 「학기」 편에 대한 주해를 통해 관학 교육 과정을 관료로서의 직분을 강조하고 학생들의 자득을 유도해가는 단계적 과정으로 설명했다. 우선 만 6세부터 14세까지의 소학의 과정에서부터 다양한 경전에 대한 독서와 그 의리에 관한 토론, 그리고 이것을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 및 이러한 노력들의 결과로 획득되는 의리에 대한 이해 등을 강조했다. 이는 이후에 전개될 본격적인 격물공부의 토대로 설명되었다. 그리고 15세 이후의 대학의 과정에서는 소학의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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