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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보 교수

Sungbo Kim

연세대학교 사학과 · 사회과학

연구실 소개

김성보 교수의 연구실은 한국 현대사의 정치·사회적 갈등과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언어, 교육, 인식의 변화를 중심으로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히 남북 분단 구조가 언어적·정신적 개념까지 영향을 미친 방식, 전쟁과 계획경제 속에서의 농촌 공동체 변화,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의 인간개조 이de올로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사 연구에 비판적 사고를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비판적 한국학'의 시도이기도 합니다.

남북 분단인간개조언어정치비판적 한국학전후 정체성

연구 현황

논문 수
35
총 인용 수
124
최근 5년 논문
9
주요 분야
사회과학

연구 성과 추이

표시된 성과는 수집된 데이터 기준으로 산출되며,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5개년 연도별 논문 게재 수
9총합
2020
2021
2022
2023
2025
5개년 연도별 피인용 수
3총합
20202021202220232025

주요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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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52·2009
남북국가 수립기 인민과 국민 개념의 분화
김성보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resulted in not only the political, economic and social divisions, but also the language and concepts divisions. Each nation tends to avoid certain words, just because they are used in the other nation. The representative example is the term ‘Inmin(人民)’. It is just a daily word meaning ‘people'. Soon after the Korean Restoration of Independence from Japan, however, the left and North Korea called the subject of the establishment of the nation as ‘Inmin’.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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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8·2005
洪以燮의 한국근현대사 인식
김성보
5
논문|인용수 6·2008
전쟁과 농업협동화로 인한 북한 농민생활의 변화
김성보

This article positively illustrates the change of rural community and peasantry in DPRK going through war and agricultural collectivization during the 1950s. Agricultural collectivization in North Korea was developed on the basis of wartime mobilization. The background of collectivization was collective labor expanded by war. The subject to promote collectivization positively was also a group of veterans or victims of war. Through this, socialistic farm village had the significant feature of qua

8
논문|인용수 4·2014
1960년대 남북한 정부의 '인간개조’ 경쟁
김성보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에 남북한 정부는 본격적인 산업화 경쟁을 벌이면서 국민을 그에 적합한 인간으로 개조하려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북한은 당과 인민에 충성하는 공산주의인간형을 주조하고자 하였고, 남한은 근대화의 역군을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은 북과 남이 각자 냉전형 반미/반공주의 인간을 만들어내는 작업과 긴밀히 연관되어있었다. 두 정부는 상대측의 인간개조를 비난하였다. 북한은 남한의 군사정권이 벌이는 인간개조 정신혁명은 일본이 식민지지배를 할 때 채택한 국민총동원 방식을 모방한 것으로서, 인민의 민족적, 계급적 각성을 마비시키고 반공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에 불과하다고 비난하였다. 반면 남한은 북한의 노동 동원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무시하는 비인간적 착취에 다름 아니라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상호 비난에도 불구하고 막상 남북의 두 정부가 추구하는 인간개조의 논리는 깊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었다. 북과 남은 모두 일반 대중의 불로의식을 비판하면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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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4·2016
연희전문학교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 기초 연구 - 기독교계 사립 전문학교로서의 특징과 관련하여 -
김성보

이 논문은 연희전문학교 졸업생들의 일제하․해방 후 진로를 조사한 기초 연구로서, 기독교계 사립 전문학교가 근현대 한국의 고등인력 양성과정에서 어떤 위치와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파악함을 목표로 한다. 연희전문학교 졸업생들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졸업 이후 유학의 길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특이 이들은 미국 유학을 선호했다. 이들의 미국 유학은 일본 제국주의가 강요하는 식민지적 근대성에 맞서서 서구적 근대성을 직접 수용하게 함을 가능하게 하였다. 다만 연희전문학교 출신들의 일본 유학도 식민지 기간에 점차 증가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라는 현실 속에서 일본과 미국의 관계가 나빠질수록 미국 유학은 축소하고 일본 유학이 늘었다. 졸업생들은 일제 강점기에는 금융업․상업 등 경제 분야에 진출하는 경향성이 크게 높았으며 그 다음으로 기독교계 사립학교의 교사가 되는 등 교원 진출의 비중이 컸다. 관리로의 진출 비중이 매우 적은 점이 경성제국대학이나 보성전문학교 졸업생들의 진로와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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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4·2018
21세기에 돌아보는 1945년 한반도의 지정학
김성보

이 연구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정책을 지정학적 관점에서 검토하고, 해방 당시 한반도의 정치인, 지식인들이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했는지 중도파, 우파, 좌파 별로 살펴보았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끝나는 시점에 소련은 러일전쟁 실패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다시는 한반도가 소련 침략의 근거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 한반도 문제 개입의 정당성을 찾았다. 전후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은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여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안을 작성하고 연합국들의 동의를 얻어냈다. 해방 시점에 한국인들에게는 지정학적 국제감각을 기본으로 하면서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전후 대두하게 될 이념과 체제의 갈등을 조정·극복할 수 있는 이념적 융합 능력이 요청되었다. 그러나 해방정국에서 중도파, 우파, 좌파는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읽어낼 지정학적 안목이 부족하거나 그 안목이 있더라도 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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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3·2011
비판적 한국학의 탐색 - 한국학과 사회인문학의 대화 -
김성보

This Paper aims reconstruct Korean Studies by the name of 'Critical Korean Studies'. The most serious problem of present Korean Studies is the lack of critical consciousness. Korean Studies inside of Korea are confined to discourse of Orient-centric peculiarity and the area of Humanities. Korean Studies outside of Korea are confined to discourse of Euro-centric universality and the area of the local studies in social sciences. I have been trying to find way of recovering critical consciousness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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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3·2015
1946년 여름 슈티코프 보고서와 북한의 국가 토대 형성
김성보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무기한 휴회에 들어간 지 한 달 뒤인 1946년 6월, 소련대표단 단장 슈티코프는 소련 지도자 스탈린과 외무상 몰로토프에게 「조선에서의 소미공동위원회 활동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 첨부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명의의 결의 초안은 7월에 대부분 채택된다. 소련주둔군과 북한 지도부는 남한에서 ‘반동’에 맞서는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북한에서 중요산업 국유화, 군사력 강화, 각급 인민위원회 선거 등 국가의 토대를 만드는 개혁조치들을 단행했다. 1946년 여름을 경계로 국제적 협상과 타협에 의한 단독정부 수립의 길은 사실상 차단되었으며, 이를 대신해서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한반도민 스스로 떠안게 되는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 북한에서의 군사력 강화는 만주에서 열세에 놓인 중국 공산군의 피난처를 제공하고 이들을 적극 후원할 후방 기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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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1·2017
Cracks and Conversion of Anti-communism in Korea After the Korean War
Seongbo Kim
THE YEOKSA AND SILHAK
Sociology and Political ScienceSocial Sci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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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1·2009
내재적 발전과 국제적 소통의 관점에서 본 한국근현대사
김성보

오늘날 한국 사회는 세계화와 분단의 조건 속에서, 민족 정체성과 함께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갖추는 개방적인 자세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한 자세를 뒷받침하는 역사의식을 모색하기 위해 필자는 ‘내재적 발전’의 관점과 ‘국제적 소통’의 관점을 접목해보았다. 한국은 중국, 일본, 미국 등 중심부 국가들에게서 선진 문명을 수용하면서도 이 국가들에 흡수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리고 한국은 세계의 또 다른 국가들과 수평적인 교류와 소통을 하며 자신의 문화를 더욱 풍부히 해왔다. 근대 이후에 한국인들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약소 피억압민족들과 연대감을 가지며 서로 소통하였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기 위해 사회주의나 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하는 지역․인물들과 활발히 교류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한국인들은 동아시아적 전통인 유교적 공공성과 집권적 국가, 균등사회의 지향성을 견지하면서 새로운 국가 건설의 방략을 모색해왔다. 이러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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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1·2017
전후 한국 반공주의의 균열과 전환
김성보

한국전쟁을 겪은 이후 1950년대에 한국의 반공주의는 외면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작동했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균열로 인해 반공주의가 국민적 통합의 기제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였음이 확인된다. 이 글은 1950년대 한국 반공주의의 균열 양상을 세 가지 층위에서 분석했다. 첫째 층위는 정부가 주도한 반공주의 선전과 탈이념적 사회현실 사이의 균열이며, 둘째 층위는 서구중심의 진영담론과 반서구적·민족주의적 담론 사이의 균열이다. 그리고 세번째로 반공권위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사이의 균열이 있었다. 1950년대의 한국사회는 전쟁의 체험 속에서 반공과 냉전에 휘말려 들어가면서도, 그 안에서 반공주의를 주체성의 회복과 동양적 가치의 실현, 민주주의의 확장 등 다양한 각도에서 구성해가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전후의 반공은 냉전, 친미, 자본주의, 국가폭력 등으로 닫힌 반공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이 경합하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반공이었다. 다만 반공주의의 3층위에서의 심각한 균열은 이 이

대표 연구 분야

Sociology and Political ScienceCultural StudiesAerospace Engine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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