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승 교수
Yenseung Lee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연구실 소개
이연승 교수의 연구실은 고대 중국의 종교사상과 유교의 근대적 재구성에 초점을 맞추며, 특히 유교가 종교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고 변화시켜 왔는지에 대한 철학적·역사적 분석을 중심으로 한다. 유교의 초월성, 종교적 정체성, 그리고 근대 유교의 종교화 과정을 다각도로 탐구하며, 서양과 중국어권 학계의 유교 연구 동향과의 교류를 통해 보편적 종교전통으로서의 유교의 이해를 심화하고자 한다. 특히 구한말 지식인의 사고사상과 유교의 정치적·종교적 해석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두드러진다.
연구 현황
연구 성과 추이
표시된 성과는 수집된 데이터 기준으로 산출되며,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요 논문
15구한말 유학계에서는 기존의 전통적 지배이념이었던 유학을 전면적으로 개혁하여근대종교화하려는 흐름이 나타났는데, 이병헌(1870-1940)은 그 가운데 캉여우웨이(康有爲)의 금문경학에 기반을 둔 공교운동을 전개했던 인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필자는이병헌의 유교론은 그가 금문경학 연구에 몰두하기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서, 구한말 일제 식민지배에 처한 지식인의 고민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병헌은 서구의 문물과 사상에 대하여 배타적이기보다는 소통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타종교 전통들,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종교란 구세(救世), 즉세상을 구원하는 것이고, 유교란 바로 공자의 가르침(敎)인데, 공자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교주이므로 유교는 종교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오직 공자의가르침이 담긴 경서의 해석에 입각하여 유교의 신도(神道)를 부각시킴으로써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상식적 견해를 불식하려 했다. 유교를 공자의 敎라고 규
This paper discusses the issues regarding the Sino-Jesuit figurists of the 17th century, and especially their understandings of Confucianism. Figurism can be said to be the interpretation method of Chinese Classics, trying to show that one could find 'signs'(figurae) referring to God's revelation. Accommodationism, in other words, adaptation to Chinese culture was the evident missionary policy of the Jesuits since the end of the 16th century, and it can be said that they were successful in comm
‘西狩獲麟’이란 『춘추』 哀公 14년의 경문으로, 필시 당시로서는 흔히 볼 수 없던 모습의 동물을 우연히 포획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양전』의 저자들은 『춘추』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이 경문을 가지고 공자의 『춘추』 저작 의도를 설명했으며, 나아가 이를 漢朝의 受命改制와 연결하여 논의하였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공양학은 전한 초중기의 顯學이 될 수 있었고, 微言大義를 표방했던 공양학에서는 곡량학이나 좌씨학보다 활발하게 획린과 공자의 『춘추』 저작 의도를 논의할 수 있었다. 전한 중후기 이후 동한에 이르기까지 공양학 외에도 많은 한대의 춘추학자들이 獲麟과 공자 및 『춘추』의 문제를 현안과 관련하여 다양하게 논의하게 되었으며, 이 문제는 양한 시대 춘추학의 담론에서 중요한 계기를 이루었다. 본고에서는 한대 춘추학자들의 대표적인 획린 해석을 살펴봄으로써 당시의 경학이 얼마나 시대적인 상황, 특히 정치적인 상황을 민감하게 반영하면서 자기 변신을 꾀하였는지 하는 궤적을
고대 중국에는 왕이나 황제가 일정한 나이에 이른 선별된 노인들에게 구장을 하사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를 왕장제(王杖制)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지팡이를 하사했으며, 또 왜 하필 비둘기 형상으로 장단을 장식했던 것이었을까?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하여 답하고자 한다. 먼저 지팡이를 하사하는 이유에 답하기 위하여 여러 고대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지팡이의 상징들을 살펴보았는데, 지팡이의 가장 뚜렷한 상징적 의미는 ‘권위’로서, 한어(漢語)로는 ‘권장(權杖)’이라는 말로 개괄한다. 전사(前史) 시대 중국의 여러곳에서도 다양한 장두식과 권장들이 발굴되었는데, 그 중 비둘기 모양의 장두식은 다수를 점한다. 다만 특정한 권위를 의미했던 권장이 곧바로 왕장의 전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감숙성의 무위(武威) 일대에서 왕장과 관련된 한간(漢簡)들이 출토되면서 한대 왕장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진한 시대의 다른 죽간들 및 전세(傳世) 문헌의 관련 내용들과의 비교 연구를 통하여 왕장제의
고대 중국에서 피를 사용하는 의례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뉘는데, 첫째는 혈제(血祭) 로서 주로 종묘나 교제 등에서 제사 지낼 때 피를 바치는 것이고, 둘째는 회맹이나 맹세에 피를 사용하는 것이며, 셋째는 바로 본고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흔례(釁禮)의 경우다. 아마도 은·주 시대로부터 이어져왔으리라 추정되는 흔례는 시행하는 대상이 다양하기때문에 일정한 형태로 이루어진 의례라 볼 수 없고, 따라서 다양한 흔례의 양상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비로소 흔례의 성격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기존의 성과를 토대로 흔례 전반에 대하여 고찰하되, 특히 희생제의와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고자 하였다. Ⅱ장에서는 흔(釁)이라는 글자가 ‘씻는다’라는 기본적인 의미로부터 점차 제의적 맥락에서 무언가 상서롭지 못한 것을 떨쳐내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나아가 피를 바르는대상 그 자체를 신성하게 만든다는 함의를 내포하게 되었던 과정을 추적해보았다. Ⅲ장에서는 다양한 흔례의 대상을 건축물에 대한
이 글은 서구학계에서 이루어진 유교 연구의 역사를 통하여, 유교를 하나의 종교적 전통으로서 이해해왔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본고에서는 종교적 전통으로서의 유교 담론을 중심으로 서구의 유교연구사를 살펴보면서, 먼저, 유교가 세계종교의 하나로 이해되는 과정, 둘째, ‘축심 시대’에 이루어진 ‘정신적 돌파’가 갖는 ‘초월성’에 주목하면서 유교의 초월성에 주목하게 된 상황, 셋째, 북미에서 신유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유교의 종교성 및 초월성에 대한 연구가 다각화되었던 양상, 마지막으로 현대신유학에서 유교의 ‘내재적 초월성’이라는 명제를 제기한 이래 지금까지 이루어진 찬반의 논의들을 다루었다. 이를 통하여 유교가 세계종교의 하나라는 보편적 이해가 이루어진 이래, 유교의 종교성에 대한 서구학계의 연구는 주로 초월성에 대한 관심으로 인하여 촉발되어 일반화되었으며, 나아가 심화되고 또 중국어권의 학자들과 이론적인 교류와 소통이 진행되어 왔음을 확인하였다.
이 글은 1890년대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약 120년 정도의 시간을 통하여, ‘사상’ 및 ‘사상사’라는 용어와 관념을 둘러싸고 어떠한 중요한 논의들이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을 과제로 삼으려 한다. 중국사상사 연구의 영역에서 나타났던 중요한 현상들을 대체로 시간적 추이에 따라 서술하되, 중요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담론이나 대표적인 연구자들의 사례를 들어, 백여 년에 걸친 중국사상사 연구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첫째, 청일전쟁의 패배 이후 전통적 학술 연구의 풍토에서 근대적 학문 체계를 수용해가는 과정에서 ‘국학’의 이념이 부각되었다. 둘째, 1920~30년대에는 서양철학의 개념이 소개, 도입되어 많은 지식인들의 주목을 받았고, 중국철학사 연구의 전범이 만들어졌으나, 동시에 철학(사)보다는 사상(사)라는 용어의 적합성이 고려되기도 하였다. 셋째, 마르크스주의는 1920년대에 이미 중국사상사 연구에 수용되기 시작했으나 1950년대로부터 80년대까지는 본격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의하여 전통 중
Xin(心), often translated into 'mind-heart' is a major problematique in traditional Confucian discourses. In this paper, I tried to examine Dong Zhongshu's usage of Xin(心). Firstly, I explain that Dong Zhongshu, the typical Han Confucian scholar discussed the mind-heart(心) in the context of cosmology. Secondly, I pointed out that in Dong's theory of self cultivation, the mind-heart and the body could be transformed into each other. Dong said that there were two ways of self cultivation : cultivat
賈誼는 서한 文帝 시기의 뛰어난 문인이자, 당시의 대내적, 대외적 정치 문제에 대해 예리한 진단과 대책을 제시했던 정론가다. 기존의 연구에서 가의는 한 제국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던 사상가라고 평가되어 왔으며, 또한 그의 사상은 醇儒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유가를 중심으로 하면서 법가나 도가, 황로학 등 다양한 사상이 혼융된 것이라고 이해되어 왔다. 가의가 한 제국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면, 그의 사상 역시 당시까지의 사상을 그저 반복하기보다는 새로운 제국 질서의 구축에 합당한 체계를 구성하고 있으리라는 것이 본고의 문제의식이다. 가의의 저작 여부가 문제시되었던 『가의신서』의 「道術」․「六術」․「道德說」이라는 세 편의 자료는 최근 출토문헌의 연구 성과에 힘입어 대체로 가의의 사상이라는 것이 인정되었다. 본고는 이 세 편을 주요 자료로 하여 가의의 우주관과 윤리관이 공히 德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논했으며, 六藝를 한 제국 지배와 수성을 위한 제도 및 사회 윤리의 근간에
It is well known that Hu-Shi(胡適) gradually abandoned the term ‘history of philosophy’ and began to use the term ‘intellectual hoistory’ from the late 1920s. I don’t think it is just a shift from philosophy to thoughts. It is more appropriate to say that Hu’s view has expanded from history of philosophy to cultural history or the history of religions. Hu’s study of the Han Confucianism is the result of exploring the theoretical aspects and social role of the Confucianism as a religion. Hu-Shi did
馬王堆의 「帛書五行篇」에 이어 또 다시 郭店에서 「帛書五行篇」과 같은 내용의 「楚簡五行篇」 및 「六德」편 등의 儒簡들이 출토되자, 가의가 초 지역에 머물 때 이들 초간과 접하게 되었으리라는 추정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배경으로 본고는 가의의 인성론에 대해서 역시 이들 공맹지제의 유자들이 펼쳤던 인성론과의 연관 하에 고찰한 것이다. 가의는 인성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서술한 적도 없고, 일관성 있는 사고를 펼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의의 저작 속에서 성에 관하여 언급한 대목을 살펴보면, 가의는 ʻ生之謂性ʼ이라는 선진 사상가들의 일반적인 입장을 답습하고 있으며, 그의 성 개념에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생명현상의 다양한 양상, 즉 형색이나 그 기능, 욕구, 자질 등이 두루 포함된다. 가의가 性보다 習을, 또한 性보다 勢를 더 중시하는 점은 性과 習의 관계 및 性과 勢의 관계를 언급하는 郭店 儒簡 「性自命出」의 사고와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또한 가의가 德의 六理
이 글은 19세기 중국에서 활동했던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알렉산더 윌리엄슨의 대표적인 저작인『격물탐원』에 대한 연구로서, 특히 기독교적 교리에 입각한 전통적인 유교의 중요 문제들 가운데 인간의 몸과 본성에 대하여 고찰해보았다. 한자문화권에서 心이란 물질적인 신체기관으로서의 心과 心氣 및 그 신체적 기능을 비롯하여 心의 다양한 작용, 즉 이성적인 사려와 감성적인 정서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그러나『격물탐원』에서는 신체기관으로서의 심장과 마음에 대하여 똑같은 心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양자를 서로 다른 범주에서 논의하고 있다. 또한 인간 존재에 대한 설명에서는 전통적 인간 이해에서 별로 중시되지 않았던 ‘뇌’와 ‘영혼’이 ‘심장[心]’과 더불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반면 마음[心]과 관련되어 있는 본능과 감정, 욕망과 인지 등의 작용은 상제가 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하여 설계한 도구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19세기 후반 중국에서 활동했던 대부분의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윌리엄
아네사키 마사하루(姉崎正治, 1873~1949)는 뛰어난 인도학자이며 불교학자이자, 일본 종교학의 창시자 혹은 확립자라고 평가된다. 본고에서는 그의 ‘신종교’ 이론과 그 실천적 양상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종교학의 한 측면을 조명하였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신종교와 ‘신종교’를 혼효하여 사용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가야기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나는 신종교와 ‘신종교’를 구분하여, 아네사키의 ‘신종교’에 관하여 탐구하였다. 이 글에서 말하는 ‘신종교’란 당시 일본이 처했던새로운 역사적 상황에서 요구되는 이상적인 종교이자, 과학적인 지식과도 조화를이룰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였다. 이는 메이지 20년대에 나타난 종교계의새로운 경향과 이념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주로 지식층의 지지를 받았다. 아네사키의 ‘신종교’ 이론은 〈메이지 30년사〉의 제7편인 <종교>에서 전개되었다. 그는 메이지 시대의 특수한 역사적, 문화적 상황에서 ‘신종교’가 요구되는것이라고 설명한다. 아네사키는 ‘일본의 종교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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