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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헌 교수

Yong H. Kim

한양대학교 철학과 · 사회과학

연구실 소개

김용헌 교수의 연구실은 조선 유학사의 이론적 전개와 도학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중심으로, 사림파 도학의 정체성과 그 계승·비판 구조를 깊이 있게 분석한다. 특히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등 핵심 인물들을 통해 도학이 어떻게 정치적 실천과 일상적 수련으로 확장되었는지를 다루며, 퇴계학파와 율곡학파 간의 이론적 갈등을 통해 유학 사상의 정체성과 이론적 다원성을 탐구한다. 또한 16세기 유학의 이론적 대립과 실천 정신의 결합을 통해 조선 전기 유학의 이념적 기반을 재구성한다.

사림파 도학유학 사상사도학의 역사적 형성퇴계학파김종직 계승론

연구 현황

논문 수
22
총 인용 수
88
최근 5년 논문
7
주요 분야
사회과학

연구 성과 추이

표시된 성과는 수집된 데이터 기준으로 산출되며,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5개년 연도별 논문 게재 수
7총합
2015
2016
2020
2022
2025
5개년 연도별 피인용 수
3총합
20152016202020222025

주요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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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21·2011
도학의 형성, 점필재 김종직과 그의 문생들의 도학사상
김용헌

정몽주에서 조광조에 이르는 조선 도학의 도통은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사림파의 도학이 자기 완결적으로 존재했다기보다는 일정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음을 뜻한다. 조선 초기에는 하나의 도학만이 존재하지 않았다. 도학이 사림파의 도학으로 단일화 되는 것은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다. 김종직 역시 사림파 도학의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그렇다고 도학이 그에게 완성된 형태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선의 도학은 김굉필·정여창 단계에서 김종직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내용을 채웠고, 그 다음 세대로 전승을 거듭하면서 심화되어 갔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이해이다. 김종직의 문도들, 특히 김굉필·정여창에게 두드러졌던 『소학』 실천은 사림파 도학의 형성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소학』 실천은 도학의 수신적·일상적 실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도학의 치인적·정치적 실천은 조광조 및 기묘명현들에 의해서 전면화 되며, 도학의 궁리 공부는 이언적·이황·기대승·이이 등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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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16·2008
퇴계학파의 여헌 장현광 비판에 관한 연구
김용헌

이구, 유원지, 이현일, 정시한, 그리고 이익은 퇴계학파의 저명한 학자들로서 이이의 학설뿐만 아니라 장현광의 학설을 비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장현광 비판에서는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첫째, 그들은 이황의 리기호발설이 주희의 학설을 계승한 정론이라고 확신하였다. 둘째, 그들은 리기호발설에 준거해서 이이의 기발일도설을 리기일물설로 규정하고 비판하였다. 셋째, 그들은 장현광의 학설이 이이의 학설과 다르지 않다고 규정하였다. 넷째, 그들이 장현광의 학설을 비판했던 것은 이황의 학설을 지킨다는 의미가 있었다. 정리하자면, 장현광의 학설이 이이와 같다고 규정함으로써 비판의 근거를 확보했다는 점은 위 다섯 학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들의 이이 비판이 그러했던 것처럼 장현광에 대한 비판 역시 이황의 학문을 옹호하고, 나아가 퇴계학파의 학문적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의식과 맞물려 있었다. 이런 점에서 유원지, 이구, 이현일, 정시한, 이익의 장현광 비판은 율곡학파와 벌인 이론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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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12·2011
조선전기 사림파 성리학의 전개와 특징
김용헌

조선 초기의 사림파는 김굉필‧정여창 등에게서 보이듯이 『소학』에 근거한, 엄격한 자기 규율에 충실함으로써 도학의 본래적 가치를 회복하고자 했다는 특징이 있다. 중종 대 들어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기묘사림들이 추진했던 일련의 정치적 개혁은 『소학』 정신의 정치적 실천이었다. 16세기는 조한보‧이언적의 무극태극논쟁, 이황‧기대승의 사단칠정논쟁, 이항‧김인후‧기대승의 태극논쟁 등 다양한 이론적 논쟁이 등장함으로써 이론의 다양화와 발전이 가능해진 시기이다. 이 시기는 학자들이 상호 비판을 통해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게 됨은 물론 자신의 학설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론의 대자적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16세기는 주희의 성리설이 정통으로 확립되어가던 시기이기도 한데, 여기에는 이황의 역할이 컸다. 그는 서경덕의 기본체론, 나흠순‧이항의 이기일물론, 육왕심학과 같은 비주자학적 성리설에 대해 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결국 인륜을 잃어버리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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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8·2009
권상하의 이기심성론과 사상사적 의미
김용헌
동아시아문화연구

권상하는 이이의 기발일도설, 송시열의 화이론을 이어받아 한원진의 인물성이론·미발유선악론이 확립되는 데 관절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한원진은 구분, 즉 사람과 금수의 구분, 유교와 불교의 구분,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을 강조했다는 특징이 있다. 한 마디로 한원진은 구분을 절대화하고 그 구분에 상하의 수직적 질서를 부여하였다. 권상하 역시 이이의 기발일도설과 송시열의 화이론을 결합시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원진과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만동묘를 세운 것이나 허형의 출처를 비판한 것 등은 춘추대의론에 바탕을 둔 그의 이념적 지향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송시열이 그에게 완성할 것을 부탁한 『주자언론동이고』가 한원진의 손에서 완성되었듯이 춘추대의론의 이념에 걸 맞는 이론의 체계화 역시 한원진의 손길을 기다려야 했다. 역으로 말하자면 한원진의 방대하고 정교한 이론적 체계화는 권상하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이와 송시열을 계승하여 호학의 이론적·정신적 정체성에 초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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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5·2004
조선 후기 실학적 자연관의 몇 가지 경향
김용헌

As Western sciences-especially astronomy-were introduced to the late Chosǒn society, there had been several changes in the Neo- Confucian view of Nature. The criticisms against the traditional view of Nature were mostly made by scholars of Practical Learning (Sirhak). Characteristics of Sirhak’s View of Nature in the late Chosǒn Dynast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ly, The world of nature was separated from the realm of human beings. This means a denial of thoughts which emphasized the c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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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5·2010
여헌 장현광 성리설 연구의 쟁점과 과제
김용헌

Jang Hyeongwang is one of the prominent confucian scholars in Chosun Dynasty. Jang Hyeongwang belonged to the Toegye School. Nevertheless his theory of Li and Ch`i(gi), what is called li-gi-gyeong-wi-seol in some respect, was not similar to Toegye's but to Yulgok´s. So, after 1920s, the philosophy of Jang has been studied by many modern Confucianism researchers. Roughly speaking, many researchers' arguments have been focused on two main issues. On the question of where Jang`s theory stands bet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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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3·2008
졸재 유원지의 심성론과 퇴계학설 옹호
김용헌

유원지는 이황의 사단칠정설이 적확하고 올바른 견해로서 전대의 성인들이 전한 핵심을 얻었으며 주희의 설과 합치된다고 확신하였다. 심지어 이황의 리기호발설이 “이전의 성인에게 질의해도 의심이 없고 백세 동안 성인을 기다려도 의혹이 없다”라고까지 하였다. 동시에 그는 그 시대의 학문 경향에 대해 이이가 이황의 학설을 비판하고 성혼이 이이를 따름으로써 이설이 만연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유가의 도에 누가 됨이 이미 극에 달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론은 수수방관해서는 안 되고 잘못을 바로잡을 방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폭넓게 말하자면 유교의 도를 구하고, 작게는 이황의 학설을 지키는 것이 그의 철학적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유원지는 이이의 학설을 여러 측면에서 비판하였다. 그 비판들의 주된 초점은 이황의 리기호발설에 대한 이이의 비판을 재비판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사단을 칠정의 일부로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반드시 기를 리로 인식하는 데 이르게 되고, 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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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3·2006
活齋 李구의 張顯光 성리설 비판
김용헌

이구(李, 1613-1654)는 이이와 장현광의 학문을 심도 있게 비판한 퇴계학파의 탁월한 이론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리와 기의 분별을 끊임없이 강조했으며, 나아가 인심과 도심, 사단과 칠정,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성이 명백히 구분된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본연의 성-사단-도심’을 리의 계열로 ‘기질의 성-칠정-인심’을 기의 계열로 이분하고 그 경계를 분명히 한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을 리의 계열과 기의 계열로 이분한 것은 이구의 심성정설이 갖는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장현광의 리기설, 사단칠정설, 인심도심설은 그 두 계열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학설이다. 왜냐하면 장현광의 학설 역시 이이의 학설과 마찬가지로 리와 기를 일물로 여기는 기학이기 때문이다. 장현광의 학설에서는 리와 기, 도심과 인심, 사단과 칠정이 뒤섞이게 되며, 이는 곧 기에 의한 리의 혼란, 나아가 악에 의한 선의 소멸로 귀결된다. 이구가 리와 기는 하나의 존재[一物]가 아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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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3·2014
16세기 조선의 정치권력의 지형과 퇴계 이황의 철학
김용헌
http://web.kmu.ac.kr/actakoreana/

퇴계 이황은 봉성군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럼에도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신진 사류들이 이황을 종주로 삼은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째, 그가 훈척 세력에 맞선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가졌기 때문인데, 그것은 그가 중년 이후 현실 정치에서 떠나고자 했던 일관된 의지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황이 반복적으로 벼슬을 버리거나 받지 않은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과 염증, 나아가 저항의 표시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둘째, 이황이 젊은 사류들과 역사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인데, 그는 무오사화는 물론 기묘사화 역시 현인과 군자가 화를 당한 사건으로 규정하였다. 이는 그가 신진 사림들과 사림이라는 정치적 기반을 같이하면서 정치적 동류의식을 공유했음을 함축한다. 셋째, 그의 학문적 성취 때문인데, 그의 학문적 성취는 한 마디로 사설邪說을 억누르고 정학正學, 다시 말해 주자학을 뿌리내리게 했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이황은 다양한 저술 작업을 통해 상산학, 양명학,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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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3·2004
조성기의 이기심성론-김창협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김용헌

이 논문은 조성기의 리기심성론을 살펴보고, 그것이 김창협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핀 논문이다. 조성기는 마음의 작용 형식을 ‘기발리승’이라고 하여 이이의 견해를 따르고 있으나, 동시에 도심과 인심을 ‘리승기이동’과 ‘기우리리발’이라고 하여 이황의 호발설을 동시에 인정하였다. 그의 이러한 이중성은 리의 위상을 높이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리에 능연, 필연, 당연, 자연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리가 기에 의존하는 무능력한 존재가 아니라 기의 청탁을 극복할 수 있는 적극적인 힘을 갖는 존재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천지만물의 다양한 변화 현상은 실제로 기의 움직임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리의 유행이고 발현이라고 이해하였다. 김창협 역시 리의 지위를 고양시키려는 조성기의 문제의식을 공유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식은 훗날 낙학의 인물성동론이 형성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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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3·2010
장현광 성리설의 연원에 대한 고찰 − 나흠순 성리설과의 관련을 중심으로 −
김용헌

나흠순의 이기일물론과 인심도심성정설은 장현광의 성리설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장현광의 경위설은 리기불상리의 원칙에 충실하다는 점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나흠순의 이기일물설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장현광의 이기경위설은 나흠순의 이기일물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장현광이 리와 기가 두 가지 존재가 아님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이론체계에서 리와 기는 내용적 일치의 관계에 있지 않다. 둘째, 장현광의 철학체계에서 최고 범주는 어디까지나 리라는 점이다. 그의 이기론이 지닌 이러한 특징은 나흠순의 이기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면모이다. 장현광이 도심을 성, 인심을 정으로 본 것은 나흠순의 인심도심성정설의 영향이 분명하다. 다만 그는 체는 용을 겸할 수 있다는 논리로 도심이 미발뿐만 아니라 이발도 겸한다는 논리를 펼쳤기 때문에 그의 인심도심설이 나흠순의 설의 단순한 답습이라고 하기 어렵다. 더욱이 공과 사를 기준으로 도심과 인심을 구분한 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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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2·2015
蛇梁鎭倭變과 退溪 李滉의 和親論
김용헌
퇴계학보

조선 전기 일본에 대한 조선 관료들의 인식은 적대적인 인식과 현실적인 인식이 공존했고, 그 결과 왜인들에 대한 정책은 강경론과 온건론이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량진왜변(1544) 직후에 대마도와 외교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단절론과 경고에 그치자는 신중론이 맞섰던 것이나 1545년 대마도주의 강화 요청에 대해 거절하자는 반대론과 허락하자는 찬성론이 대립했던 것도 두 가지 인식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대일관계에서 강경론은 본질적으로 왜인들이 대의를 어겼기 때문에 대의에 의거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대의론(의리론)이 그 기저에 자리하고 있었다. 반면에 온건론은 비록 왜인들이 대의를 어겼을지라도 현실적으로 그들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현실론에 기초해 있었다. 李滉은 왜인을 우리보다 열등한 오랑캐로 인식했고, 그들의 변란도 당연히 옳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그럼에도 그는 대마도주의 화친 요청을 받아들이자는 화친론을 주장했다. 화친을 거부하면 왜구의 난동을 초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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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2·2013
율곡 이이의 동북아 인식과 21세기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
김용헌
율곡학연구

2013년 8월 현재 동북아는 여러 힘들이 충돌하는 장이면서 경제·문화의 측면에선 화해와 협력, 나아가 상생을 위한 공동체 담론들이 성숙되어 가고 있다. 미국의 전통적인 동북아 전략은 동북아는 물론 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지속시켜 나가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체제를 미국과 중국이 균형을 이루는 새로운 체제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최근 일본의 대외 전략에서 두드러진 것은 미일 동맹체제의 강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우경화와 군사대국화의 경향이다. 더욱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조치, 그리고 개성공단 가동 중단 등 경색된 남북 관계는 해법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율곡 이이가 제시한 대외 정책의 두 기준은 권(權)과 의(義)이다. 권으로써 변화에 대처하고 의로써 일을 처리한다면 나라를 다스리기가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것이 율곡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권은 때에 따라 중을 얻는 것[隨時得中]이고 의는 일처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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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1·2002
活齋 李?의 二元的 心性情說
김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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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인용수 1·2022
이간의 이기동실‧심성일치론과 임성주의 비판
김용헌
율곡학연구

이간은 미발일 때 심체가 순선하다고 여겼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선한 본성에 근거해서 인간의 고귀함을 확보하는 것은 원리의 수준이지 실사(實事)가 아니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것이 이기동실·심성일치이다. 이 원칙을 근거로 이간은 미발일 때 심·기가 순선해지고 그 안의 성·리도 온전히 드러난다는 미발심체순선론을 역설했다. 그러나 그의 미발론은 기와 상관없이 리의 보편성이 모든 사물에 관철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한 인물성동론과 어긋난다는 문제가 있다. 이 어긋남을 정확하게 간파한 사람이 임성주이다. 이간이 미발론을 통해 인간의 심·기가 성·리의 순선을 온전하게 구현해내는 심성일치의 경지를 염두에 두었다면, 임성주는 기와 리, 심과 성이 언제나 일치해 있는 상태라는 것에 주목해, 그 상태를 이기동실·심성일치로 규정했다는 특징이 있다. 요컨대 임성주는 현실적으로 기와 리, 심과 성의 어긋남을 용인하지 않았고, 따라서 선한 본성은 반드시 담일청허(湛一淸虛)의 기와 통일되어 있다고 여겼다.

대표 연구 분야

Cultural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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