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찬 교수
Young-chan Oh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교육과 · 사회과학
연구실 소개
오영찬 교수의 연구실은 조선총독부박물관과 식민지 시대 고고학 자료의 성격을 분석하며, 특히 위만조선과 낙랑군의 역사적 정체성 및 고고학적 실체에 대한 재고를 중심으로 한다. 한국 고대사의 서사가 식민지 과학과 식민지 정책에 어떻게 편입되었는지를 고찰하며, 유물의 출처, 진위, 분류 체계를 통해 식민지 시대의 과학적 기록 방식과 역사 서사의 문제를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특히 고고학적 유물의 수집과 관리 과정을 통해 식민지 지배의 문화적 기제를 분석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연구 현황
연구 성과 추이
표시된 성과는 수집된 데이터 기준으로 산출되며, 일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요 논문
15This article examined late Joseon dynasty research perspectives and works of the Sirak scholars on Han commanderies of Korean ancient history. At the advent of the early Joseon dynasty, in the context of the unilineal system of Korean ancient history, Han commanderies were perceived as "Old Joseon-Han commanderies-Three Hans-Three Kingdoms". However, after the second Manchu invasion of Korea occurred in 1636, the historical legitimacy theory was introduced in the writing of the history books, an
본고는 위만조선의 재인식과 위만조선 고고학의 성립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위만조선 고고자료의 공백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위만조선은 조선 후기 正統論的 역사 체계 하에서는 왕위를 찬탈한 僭國이자 簒賊의 존재였다. 하지만 개화기에 들어 근대 국민국가와 연계된 민족이라는 실체가 서서히 자각되면서 위만조선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林泰輔의 『朝鮮史』에서 비롯된 식민사학의 세례 이후, 1907년 白鳥庫吉은 위만조선을 식민지로 파악하였는데, 당시 무차별적으로 도입된 ‘식민지’ 개념은 이후 식민사학의 근간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 위만조선 고고학은 그 자체 내지 고조선 문화의 견지에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낙랑군 사회의 토대이자 출발점으로 이해된 것이었다. 당시 非漢式 문화인 세형동검문화를 漢系 문화로 해석하면서 위만조선의 고고학 문화로 오인하였는데, 이러한 인식은 이원적 종족구조론의 주된 근거가 되었다. 이원적 종족지배 구조를 갖춘 위만조선에 부합하는 고고학적 실체를 찾으
This paper is a new review that aims to examine early material culture of Korea related with Wiman Joseon and Nangnang(Ch. Lelang) commandery, which is based on what was unearthed in the southeast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the areas of Jinhan-Byeonhan. Headed by the artefacts founded at Yeongcheon Eoeundong site in 1918, Japanese scholars in the colonial period considered the Han Chinese style artefacts in Jinhan-Byeonhan as decisive evidence of the advanced Han Chinese culture being diss
본고는 1884년 한국을 여행하면서 지석묘를 조사하고 삼국시대 토기를 수집한 윌리엄 고우랜드(William Gowland, 1842–1922)라는 인물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1842년 영국 더람에서 태어난 윌리엄 고우랜드는 1872년 明治政府의 초빙을 받아 化學冶金方兼造幣長官 고문으로 활약하면서, 1888년까지 16년간의 일본에 체재하면서 406기의 횡혈식 석실분을 조사하고 140기의 약측도를 남겼다. 그의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조사와 연구는 당시 수준으로서는 높이 평가할만한 것이었다. 고우랜드는 1876년 출간된 헨리 지볼트(Henry von Siebold)의 저서에서 일본 민족의 기원과 고대 문화가 한국과 직접 관련되었을 가능성을 주장한 데 영향을 받아, 1884년 한국으로 조사 여행을 오게 된다. 고우랜드의 주된 관심은 일본 고대 문화와 연관된 한국의 고고학 유적과 유물에 있었는데, 경기도 포천에서‘솔모로(Tsolmorro)’라는 곳에 소재한 지석묘를 조사하고 도면과 기록을 남기
이 논문은 조선총독부박물관의 개관 전후 소장품의 형성과정과 그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초기 소장품은 크게 네 부류로 구분이 가능하다. 먼저 박물관 소장품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외부 기관으로부터 인수한 유물이다. 대표적으로 조선주차군사령부 및 병기창으로부터 인계받은 고병기류를 들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조선총독부 내 타 부서에서 자체 소장하고 있던 유물을 총독부박물관으로 인계한 경우이다. 세 번째로는 조선총독부의 업무 수행과정에서 취득된 유물이 총독부박물관의 설립에 따라 소관 업무와 함께 이관된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박물관 개관 이후 개인으로 받은 기증품이 있다.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와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 구하라 후사노스케(久原房之助)의 중앙아시아 컬렉션 기증품이 있었다. 총독부박물관에서는 개관 전후 박물관의 소장품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일본 근대 초기 문화재 분류인 ‘고기구물’을 근간으로 한 도쿄제실박물관 열품의 세부적인 분류와 기준을 참고로 하였던 것으
낙랑군 유적에서 출토된 봉니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수집품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된 99건197점, 1935년 낙랑토성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후 도쿄대학에 남겨진 15점, 그리고 1937년과 1938년 두 차례에서 걸쳐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구입한 9점이 전해진다. 낙랑 봉니는 1919년 최초 확인되었는데,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정식 발굴품이 아니라 식민사학의 불순한 의도 하에 조선총독부박물관 주도로 수집되었기 때문에 진위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계속적으로 확인된 봉니들도 대다수가 발견품으로 신고되어 입수되었거나 고미술상을 통해 구입된 발견품이어서 진위의 논란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1930년대 위당 정인보는 '낙랑 봉니 위조설'을 제기하였고, 해방 이후 고조선의 재요녕성설에 입각한 북한 학계에서도 '낙랑 봉니 위조설'을 다시 주장하였으며, 1980년대 일본 학계의 반론이 이어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봉니의 진위는 印文의 내용과 印式의 시대적 특징, 인문의 관명과
본고는 일제강점기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칠기의 조사 및 연구 현황과 식민지주의와의 연관성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1909년부터 낙랑고분이 발굴되면서 소량의 칠기 편들이 출토되었으며, 대량의 완형 칠기가 출토된 것은 1916년이다. 이 해에 발굴조사된 석암리 9호분에서 이미 기년명 칠기가 출토되었으나, 발굴자는 이를 인식하지 못하다가, 1924년 석암리 고분군 발굴 이후에야 기년명 칠기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1931년 남정리 116호분에서 유명한 채회칠협이 출토되는 등 일제 강점기에는 낙랑고분에서 다량의 칠기가 출토되었고, 대다수는 조선총독부박물관을 거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일부 칠기들은 일본, 미국 등지의 개인이나 박물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낙랑고분 출토 칠기에 대한 연구는 주로 중요 칠기 유물이 발굴된 직후에 집중되었는데, 1924년 평양 석암리 고분군과 1931년 남정리 116호분의 발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칠기의 명문 연구를 통해 제작
This paper examines the process of acquiring the collection at the Museum of Joseon Governor-General in 1915-1916. The early collections can be divided into four categories; The first is artifacts from the outside institution such as Japanese Military Command at Joseon. The second is what has been stored along with the works having been performed by some sections in Joseon Governor-General. The third is the outputs of the academic research projects of relics by some sections which were given to
This study reconstructed the change of the permanent exhibitions of the Museum of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and examined how the colonial museum represented the history through the display. <BR> First, new research material, 『Joseonseohwagogimulmoglog(The List of Paintings and Calligraphic works and Antiques in Joseon)』 that could restore the first permanent exhibition in 1915 and the exhibitions until 1918 was introduced. In the first permanent exhibition of 1915 when the museum open
본 연구는 세계유산의 교육적 가치를 재확인하면서 창덕궁과 경주 양동마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기반 현장체험학습 사례를 중심으로 세계유산의 교육적 활용방안을 소개하고자 한다.BR 세계유산의 등재와 보존에 기울이는 노력에 비해 세계유산을 대상으로 한 교육적 활용은 미진한 편이다. 유네스코 차원에서 세계유산교육(WHE, World Heritage Education)은 1990 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세계유산에 대한 효과적인 교육 방법 중 하나는 학습의 대상이 되는 현장에서 학습자가 분명한 동기와 목적의식 가지고 사고하여 직접적인 경험을 통하여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현장체험학습이다. 현장체험학습에서 제한된 시간 내에 효율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본고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를 활용한 교육에 주목하였다.BR 스마트 폰이나 테블릿 기기 등 모바일 기기가 교수 학습 도구로서 각광을 받고 있지만, 모바일 기기에서 상용 중인 대부분의 어플리케이션들은 완성형, 비현장성,
본고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에 대해 ‘기능적 출처’의 개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분류 체계와 분류 기호를 제시하였다.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조선총독부에 소속된 기관이므로조선총독부 공문서 체계에 부합되고 편입이 가능하도록 문서 분류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점, 기능적 출처주의에 입각하여 총독부박물관의 조직과 기능에 부합하는 분류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점,그러한 분류 체계에 기반하여 체계적이고 간명한 분류 기호가 부여됨으로써 문서의 검색과 활용에편의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This paper seeks to understand how the diverse historical views on Wiman Joseon were formed and evolved, as well as what caused these changes in perspective. In particular, it focuses on how conceptions of Wiman Joseon influenced research and the interpretation of archeological materials following the establishment of modern historical studies. The traditional understanding of Wiman Joseon in early Korean history changed with the emergence of the modern Korean nation from the late nineteenth c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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